2024년 2월 20일 화요일

에든버러 세계선교대회(Edinburgh Conference, 1910년 6월 14-23일) - 윤치호 참석

에든버러 세계선교대회(Edinburgh Conference, 1910년 6월 14-23)

 
국제선교협의회(IMC, International Missionary Council)1921년에 설립되었지만 그 뿌리는 19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그것은 또 윌리엄 캐리(William Carey)에게로 거슬러 올라간다.
 
윌리엄 캐리는 1793년에 인도에 건너가 선교사업에 현대적인 자극을 준 지 오래지 않아 그는 선교사들간의 협력의 필요성을 생각하고 1810년에 케이프타운에서 선교사회의를 개최할 것을 제안했다. 다양하게 전개된 협력의 노력은 비기독교국가들에서 활동하고 있던 여러 선교회의 대표들이 영국 에든버러에서 열린 전세계 선교사 회의에 참석한 1910년에 그 절정에 이르렀다.
 
1961년 인도의 뉴델리 대회에서 결국 합쳐지게 된 교회의 3가지 흐름인 신앙과 직제(일치), 생활과 사업(봉사), 국제선교협의회(증거)는 직접적으로 에든버러 대회에서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또한 에든버러 대회에서는 비가톨릭교회들과 비희랍정교회 교회들 안에 존재하는 차이점들을 존중하고 인정하자는 자발적인 의사가 표현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이 대회에서는 초교파적이고 국제적인 협력관계 속에서 크리스챤이 함께 일하고자 하는 열망이 진술되었다. 이 일을 수행하기 위해서 계속위원회(Continuation Committee)가 설치되고 회장은 모트(John R. Mott), 서기에는 올담(J. A. Oldham)이 선출되었다.
 
존 모트는 에딘버러 선교사대회를 성사시키기 위해 280km를 여행하였는데 그 거리가 자그마치 지구를 68바퀴나 돌 정도였다고 한다. 모든 교회와 선교단체가 더 이상 경쟁하지 않고 서로 연합할 것을 당부하기 위해 그는 인도, 중국, 일본, 브라질, 남아공, 호주, 뉴질랜드 등지를 방문하였고, 한국 역시 두 번이나 방문하였다. 특별히 19071월부터 4월까지 한국을 방문하면서 평양장대현교회에서 열렸던 평양대부흥운동을 경험할 수 있었다. 세계복음화를 위한 연합과 일치의 정신은 마침내 1910614일부터 23일까지 스코틀랜드 에딘버러에서 세계선교사대회가 열림으로 모트의 비전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참석한 대의원도 1,200명이 등록하여 성황리에 개최되었고, 선교회나 선교단체도 무려 160개나 참석하여 큰 호응을 보였다. 감사한 것은 한국대표도 15명이나 참석해 초기 한국교회의 선교를 상세하게 보고하기도 하였다.
 
1910년 에딘버러 선교사대회의 주제는 이 세대 안에 세계복음화”(The Evangelization of the World in this Generation)이다.
 
개회식은 1910614() 저녁에 대회의장인 어셈블리 홀(Assembly Hall)에서 성대하게 열렸다. 이곳은 교회가 서있고, 신학교가 세워진 곳이기에 의미가 더욱 깊은 곳이었다. 대회장인 버레이의 발포가 홀에 들어서자 세 명의 연설자들도 함께 뒤 따랐다. 대회장은 신사여러분, 저는 위대하신 왕으로부터 한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여러분들도 의심할 바 없이 위엄과 존경하는 마음으로 메시지를 받으시길 바랍니다라고 선포하자 대회는 시작되었다. 대회장이 왕으로부터 받은 메시지를 전달할 때에 모든 사람들이 일어섰다: “왕께서는 저로 하여금 오늘 에딘버러에서 열리는 세계선교사대회에 깊은 관심을 표시하신다는 것을 여러분에게 전달하라고 하셨습니다왕의 메시지가 전달된 이후에 세 명의 연설자, 즉 대회장, 캔터베리의 대주교, 로버트 스피어(Robert E. Speer)가 연설을 하였는데 대회장인 버레이의 발포는 선교사대회 기간 동안 무엇보다도 일치(unity)가 필요함을 역설하였다. 더욱이 개회식 때 특별한 사항이라면 독일 식민성(植民省)이 에딘버러 대회에 보낸 메시지이고, 그 다음은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루즈벨트가 에딘버러대회 의장에게 보낸 편지이다. 루즈벨트 대통령 역시 일치를 촉구하였다: “기독교 사역을 확장하기 위하여 크리스천간의 연합 정신은 교리의 차이점으로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교리의 차이점으로 더 많은 어려움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교리의 차이점이 우리의 사역을 방해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곧 발견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성공을 기원합니다.”
 
이 대회는 당시의 상황에 비추어 보아 선교적인 노력을 검토해 보기 위해 소집된 평의회로서 특히 세계복음화의 이상을 제시한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 국제선교협의회의 창설과 에든버러 회관의 개관을 통해서 이 대회는 선교협회들 간의 보다 긴밀한 협동을 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많은 기독교단체들과 약 160여개의 선교단체 또는 선교협회의 대표로 파견된 약 1,200명의 인원이 참가하였다. J. R. 모트가 이 위원회의 의장이었으며 J. H.오울덤이 이 대회의 대회장이었다.
 
1910년 영국 에든버러에서 개최된 제1차 회의에는 피선교국의 회원국에서 제외되었고 다만 초청형식으로 참가하였는데, 한국에서는 윤치호 박사가 참가했다. [한국대표로 참석한 사람은 아담스(James E. Adams), 에비슨(O. R. Avison), 버크몰(H. O. T. Burkmall), 푸트(W. R. Foote), 포사이더(W. H. Forsythe), 게일(James S. Gale), 질레트(P. L. Gillett), 해리스(M. C. Harris), 존스(George Heber Jones), 녹스(Robert Knox), 마펫(S. A. Moffett), 레이드(W. T. Reid), (Alex F. Robb), 언더우드(H. G. Underwood), 윤치호(T. H. Yun)이다.]
 
이후 1921년에 정식 발족하면서 피선교국의 신생교회도 참가할 수 있도록 되었다. 그후 1928년 예루살렘에서 개최된 선교협의회에는 우리나라에서 신흥우ㆍ양주삼ㆍ정인과ㆍ김활란ㆍ노블(W. A. Nobble)ㆍ마펫(S. A. Moffett, 마모삼열) 등이 정식으로 참석하게 되었다.
 
[참고]
기독교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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