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2월 15일 목요일

명동성당(종현성당)

명동성당(종현성당)

 
신앙의 연속성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현재의 명동 본당과 직접 관련이 되는 신자 집단은 박해가 끝난 다음에 형성되었다. 당시 한국 천주교회를 이끌어 간 사람은 1882년에 보좌 주교로 임명되었고, 1884년 리델 주교의 사망으로 제7대 조선교구장에 오른 블랑(요한) 주교였다.
 
18836월부터 본격적으로 부지를 매입하기 시작한 블랑 주교는 18896월까지 30여 차례에 걸쳐 지금의 명동 성당 구역과 같은 넓은 부지를 매입하는 데 성공하였다. 본래 이곳은 조선 시대 때 북단재혹은 종현으로 불리던 곳으로 목멱산(木覓山, 즉 남산)에서 뻗어내린 여러 언덕 줄기 가운데 하나였고, 행정 구역상으로는 남부 명례방 종현계(鐘峴契)의 종현동과 이웃의 명동에 속해 있었다. 또 북단재가 속한 목멱산 줄기에는 언덕을 넘어다니는 세 개의 길이 있었는데, 이들은 위로부터 윗재ㆍ중간재ㆍ아랫재로 불리었으며, 이 가운데 종현 언덕은 중간재에 해당하였다. 이곳에 부지를 매입하는 사이에 1886년 한불조약이 체결되고 이듬해 비준을 거쳐 효력을 발생하게 되자, 블랑 주교는 성당 부지 매입을 파리 본부에 보고하는 한편 188712월부터 정지작업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188810월에는 처음으로 2층 목조 건물을 완공하고, 나가사키에서 서울 정동으로 옮겨온 성서 활판소를 다시 이 건물로 이전한 뒤 코스트(Coste, 高宣善) 신부에게 맡겼다. 한편 조선교구의 경리를 맡고 있던 프와넬(빅토리노) 신부는 돌우물골(石井洞, 현 소공동 인근)에 있던 경리계를 1885년에 새문안으로 옮겼다가 1887년에 종현으로 옮기고 코스트 신부와 함께 생활하였다.
 
그러나 명동 대성당(1977년에 사적 제258호로 지정) 건립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당시 외무 독판이던 조병직은 이를 제지하려고 하였다. 그러므로 18881월 정부의 이름으로 성당 대지의 소유권을 억류하고 나섰고, 블랑 주교가 그 부당함을 항의함으로써 종현 성당 대지 분쟁이 발생하게 되었다. 이때 조병직은 명동 대지가 국유지임을 주장하면서 역대 임금이 영정을 모신 영희전(永禧殿, 현 저동 소재)의 수호신을 어지럽히는 일이므로 불법이라고 하였지만, 실제로는 천주교에 대해 좋지 않은 편견을 가지고 성당 건립을 방해하려고 한 것이었다. 이후 사건은 플랑시(Planch, 葛林德) 프랑스 공사의 중재로 2년이 지나 1890년 초 정부에서 명동의 대지 문권을 교회측에 되돌려 줌으로써 끝이 나게 되었다.
 
그 동안 블랑 주교는 코스트 신부로 하여금 대성당과 용산 신학교, 장차 건립할 약현 성당의 설계를 맡도록 하였고, 그는 중국 기술자들을 초청하여 우선 1889년에 주교관 겸 경리부로 사용할 2층 건물(현 명동 주교관 앞 건물)과 수녀원, 고아원 건축에 착수하여 이듬해 98일 우선 고아원 겸 수녀원을 완공하였다. 그러나 블랑 주교는 고아원과 주교관이 완공되기 바로 전인 18902월 병사하였고, 그 뒤를 이어 제8대 조선교구장에 임명된 뮈텔 주교는 1891419일 주교관 강복식을 집전하고, 이에 189258일 명동 대성당 정초식을 거행하였다. 이후 대성당의 완공을 위해서는 종탑 건립(1897), 바닥의 타일 주조, 천장의 아치형 공사, 스테인드 글라스, 제대 설비(1898), 성 베네딕도상과 예수 성심 제대 제작 등 어려운 일이 많았고, 그때마다 새로 기술자를 부르거나 외국에서 자재를 들여와야만 하였다. 또 설계와 공사 감독을 맡아 다시 23개월 간 노력해야만 하였다. 그리고 1898년에는 마침내 종탑 45m, 길이 69m, 너비 28m의 삼연(三緣) 고딕 양식의 대성당을 완공하여 517일에 지하성당에서 처음으로 미사를 봉헌하였고, 성신 강림 축일인 529일에 한국 교회의 주보인 원죄 없이 잉태하신 성모 마리아를 또한 종현 성당의 주보로 하여 축성식을 갖게 되었다. 본래 이 주보는 제2대 조선교구장이던 앵베르 주교가 1838년에 조선교구의 주보로 허락해 줄 것을 교황청에 요청하여 1841년에 교황 그레고리오 16세로부터 허락을 얻은 바 있었다.
 
[참조] 한국가톨릭대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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