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2월 28일 수요일

영락보린원(永樂保隣院) - 기독교사회사업기관

영락보린원(永樂保隣院)

 
기독교사회사업기관. 서울 용산구 후암동 370번지 소재.
 
1939
 
  • 19395월 평북 의주에서 한경직 목사에 의해 설립되었다.
  • 1938년 신의주제2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있을 때, 한 청년이 긴급하게 찾아왔다. 한경직은 그 청년과 함께 철로변의 다 쓰러져가는 오두막집을 방문하였다. 그곳에 폐병말기인 아버지와 철길에서 다리가 잘린 여덟 살의 가엾은 복순이라고 하는 소녀를 만났다. 그 후 소녀의 아버지를 병원에 입원시키고 최선을 다해 병간호를 잘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다음해 사망하였다. 그 후 고아가 된 복순이를 도와주면서 1939년 신의주보린원을 설립하게 되었다. 한경직은 그때부터 고아원의 명칭을 이웃을 돌본다는 의미의 보린원(保隣院)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 당시 신의주 제2교회 담임목사 한경직은 교회 인근에서 불구의 불우한 소녀를 돌보는 기회를 통해 고아사업을 결심하였다. 이에 신의주지역 기독교인 독지가 백지엽 장로, 김응락 집사 등의 도움을 받아 고아원을 마련하고 2명의 고아를 수용하였다. 그후 수용 고아의 수가 계속 증가하자 신의주시에서 10리쯤 떨어진 남신의주면에 면소유 땅을 불하받고 역시 독지가들의 도움을 받아 벽돌로 새 건물을 짓고 고아원과 양로원을 함께 운영하였다. 이때의 이름은 보린원이었다.
 
1942
 
  • 한편 일제말기 교역중지 조치를 받은 한경직 목사는 1942년경부터 해방당시까지 이 고아원의 원장으로 고아사업에만 전념하였다.
 
1947
 
  • 해방후 한경직 목사가 공산당의 추적을 받아 월남하자 고아원은 폐쇄되고 그 원생들은 흩어져 역시 월남하였다. 이들을 서울에서 다시 만난 한목사는 고아사업의 재개를 시도하였고 김치복 장로의 주선으로 일제시 한국고아의 아버지로 불리던 일본인 소다(曾田) 옹이 운영하던 겸창보육원 자리(후암동)를 인수받았다. “1947년 후암동으로 이전한 영락보린원(永樂保隣院)의 설립장소는 일제강점기에 가마쿠라(鎌倉)보육원이었다”(영락보린원 홈페이지).
  • 신의주보린원의 재건을 위하여 한경직은 서울시 중구 충무로에 보린원을 재건한 후 공간이 좁아 용산구 후암동 적산가옥으로 비워있던 가마쿠라 보육원자리로 옮길 것을 제안받아, 고아원을 하던 자리에 다시 고아원사업을 한다는 명분으로 그 땅을 인수받게 되어 194711월에 이전하였다. 1947년 서울보린원으로 명칭변경, 다시 시작한 고아사업은 입소자가 급속하게 증가하기 시작하였다.
 
1948
 
  • 1948517일에는 미군정청으로부터 시설인가를 받았다.
 
1949
 
  • 명칭을 서울보린원이라 하였다.
 
1953
 
  • 기독교아동복지회에 가입하였고 사회복지법인의 법인설립도 완비하였다.
 
1955
 
  • 1955년에는 여자 원아들 전용 숙사 335평을 신축하여 시설을 확장하였다.
  •  초기에 이사 등의 직함을 가지고 고아원 경영에 협력한 인사들로는 김치복 장로, 박학전 목사를 비롯, 신행도ㆍ김성호ㆍ정석준ㆍ박조준 목사 등이다.
 
1956
 
  • 서울보린원은 19561월에 명칭을 영락보린원으로 변경 현재에 이르고 있다.
 
1959
 
  • 1959년에 지금까지 운영해오던 영락보린원, 영락경로원, 영락모자원 시설을 법인화 하는 작업을 추진해 오면서 허가를 받았다.
 
1989
 
  • 가마쿠라시 가마쿠라보육원과 영락보린원이 198912월부터 상호 협정을 맺고 매년 1회 직원연수교류를 시작하였다.
 
[참고]
기독교대백과사전
김범수, 영락보린원(永楽保隣院)의 역사연구 : 가마쿠라(鎌倉)보육원 경성지부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한국사회복지역사학회, 사회복지역사연구 제1권 제1, 2018.11, 2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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