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2월 13일 화요일

[A.D. 1122년] 보름스 협약 - 성직임명권 논쟁을 일단락시킴

A.D. 1122, 보름스 협약

 
보름스 협약(Das Wormser Konkordat, The Concordat of Worms)1122923일 신성로마제국 황제 하인리히 5(1086-1125, 재위 1111-1125)와 교황 칼릭스 2(1065-1124, 재위 1119-1124)가 체결한 문서이다. 신성로마제국 황제는 본래 교황과 가톨릭교회의 보호자로 자처했으므로, 신성로마제국의 초기에 교황과 황제는 비교적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자 상황은 달라졌다. 본래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주교를 임명해 왔지만, 주교는 교회의 직책이므로 이에 관한 결정권은 최고 성직자에게 있다며 교황이 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특히 봉건제도가 발전하여 교회의 사제들에게도 봉토(封土)가 주어지자 상황은 더욱더 복잡해지기 시작하였다. 성직자의 신분이라는 점에서 주교의 수장은 교황이었지만, 봉토의 주인은 황제였기 때문이었다. 성직자라는 지위에서 주교는 교황의 지시를 받았지만, 해당 지역의 영주라는 점에서 황제에게도 복종해야만 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개된 신성로마제국 황제와 교황 사이의 성직임명권논쟁은 1077카노사의 굴욕사건을 계기로 절정에 달했다.
 
1122년 보름스 협약은 신성로마제국 황제와 교황 사이에 전개된 성직임명권논쟁을 일단락시킨 문서였다. 보름스 협약은 성직자의 세속적 지위와 종교적 지위를 구분하여, 황제는 성직자의 선출과정에 더는 관여할 수 없고, 선출된 성직자의 봉토 부여와 관련된 세속적인 권한만을 보유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시하였다. 주교는 교황이 임명하되, 임명된 주교는 황제의 봉신(封臣)임을 인정한 것이었다.
 
[보름스 협약에 따르면 주교의 종교적 상징물인 반지와 홀장(笏杖, Croier)의 수여는 교황이 보유하고, 세속적인 지위를 의미하는 왕홀(王笏, Zepter)은 황제가 수여하는 것이었다]
 
보름스 협약으로 교황과 황제 사이에 오랜 논란의 대상이 되었던 성직임명권 문제는 일단락되었다. 보름스 협약은 단순한 종교적 지위와 세속적 지위를 분리를 넘어서 교회가 황제의 전속적 권한에서 벗어나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훗날 유럽 전역에 퍼진 교회와 국가의 분리(정교분리) 및 종교의 자유가 탄생한 배경이 된 것이었다. 다른 한편 신성로마제국 황제는 보름스 협약으로 인해 그동안 성직 임명권을 통해 행사해왔던 종교적 영향력을 상실하게 되었다. 이는 단순히 황제의 권한이 축소된 것만이 아니라, 교회의 수호자로 로마제국의 부활을 의미한다는 신성로마제국 자체의 지위가 상실된 것이었다. 나아가 황제의 권한축소는 지방 영주의 성장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참고] 홍일선, “중세 독일헌법 연구 독일헌법의 기원 : 신성로마제국 시대의 헌법사-”, 세계헌법연구26(3), 2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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