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0월 2일 월요일

율곡 이이의 사대주의적 한계

이이(李珥, 1536~1584)
 
조선은 기본적으로 사대를 깔고 시작한 나라다. 말하자면 강한 나라인 명나라에게 일단 알아서 기었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른다. 많은 조선의 학자들은 해바라기가 아닌 명바라기를 보여주었다. 심지어 명나라가 여진족에게 밀리던 시점에도 계속 명나라를 모시려던 신하들과 멍청한 임금 인조 때문에 두 차례의 전란을 겪기도 했다.
 
오천원 지폐의 주인공 율곡 이이는 조선시대 대표적 유학자이다. 본관은 이순신과 같은 덕수 이씨이다. 그도 다른 조선의 학자들과 다를 바 없이 일단 명나라(중국)에 대해서는 자신을 한없이 낮춘 모습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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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을 부정하고 기자를 높인 조선의 대유학자 율곡 이이

 
율곡 이이는 퇴계와 함께 조선조 최고의 학자로서 황해도 관찰사, 대사헌, 대제학, 호조판서, 병조판서, 이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특히 “10만 양병설을 주장하여 국난을 예방할 것을 주장하는 등 식견이 높았던 학자이자 정치인이었다.
 
율곡은 기자실기(箕子實記)에서 단군을 부정하고 기자를 개국조상으로 기록하였다.단군이 조선의 시조라고 하나 문헌상 근거가 없다. 삼가 생각하면 기자께서 조선에 오시어서 우리 오랑캐를 천하게 보지 아니 하시고 후히 기르시고 부지런히 가르치심으로 상투를 트는 습속을 바꾸어 중국의 제나라와 노나라와 같은 나라를 만들었다. …… 기자의 망극한 은혜를 입은 사실을 집집마다 외우고 사람마다 잘 알아야 할 것이다라고 썼다.
 

명나라 가정제를 위한 아부의 극치

 
명나라 가정제(명의 세종)를 제사하는 율곡의 제문은 차라리 존경받는 유학자 율곡의 글이 아닌 동명이인의 글이기를 바라는 심정이다.
 
소신은 명나라를 모시는 하복입니다. 조선이 대대로 명나라의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명나라는 옛날 황제(黃帝)가 용을 타고 승천할 때에 용의 수염에 붙었다가 떨어진 자처럼 지성을 다 하려고 합니다. 명나라에 달려가서 혈맹의 지성을 다할 길이 없사옵고 입은 있으나 다할 말이 없습니다. 명나라의 은혜는 하늘같이 끝이 없고 크옵니다.”
 
김삼웅, 한국사를 뒤흔든 위서(僞書), 인물과사상사, 2004, 78-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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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두편의 글을 가지고 그 사람 전체를 평가하는 것은 지나칠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중국의 유교를 받아들여서 국가의 기틀을 세운 조선의 성리학이 가진 한계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조선 5백년, 아니 율곡 이이가 살았던 시절은 조선 200년 동안 줄기차게 사대를 했기 때문에 명나라를 높이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 존경을 받는 학자인 율곡 이이가 중국에 아부하는 글을 썼다는 것은 그다지 유쾌한 일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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