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0월 10일 화요일

콜롬버스 이전의 신세계 탐험

현 아메리카 대륙에 인간이 살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일까? 학자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하지만, 기원전 4만년 전부터 몽고계 아시아인이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주하기 시작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 4빙하기(BC 15,000년경) 몽골 계통의 북부 아시아인들의 이주

 
미국 학자 알렉스 흐들리카(Alex Hrdlicka, 1869~1943)의 주장에 따르면, 기원전 15000년경 제4빙하기엔 바닷물의 높이가 100미터 이상 낮아져 시베리아와 알레스카가 육지로 연결되었던 때가 있었으며, 이때 몽골 계통의 북부 아시아인들이 베링해협을 건너 아메리카로 집단이주하여 점차 남하했다. 실제로 시베리아와 알래스카 사이의 거리는 채 100킬로미터도 되지 않으며 수심도 60미터 이내이다. 또한 중간에 세 개의 섬이 있어서 카누를 타고 횡단하기에도 어려움이 없다. 그리하여 15세기말 아메리카 대륙엔 북미에 400만 명, 남미에 100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살게 되었다.
 

# 10세기경 유럽 바이킹족의 이주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대륙과 만난 건 10세기경이다. 985년경 스칸디나비아의 탐험가 비야르니 헤리울프손(Biarni Heriulfson)을 비롯하여 여러 바이킹 무리들이 아메리카 대륙에 발을 디뎠다. 이들은 곧 고향으로 돌아가고 말았지만, 일부 바이킹족은 1년여에 걸쳐 포도밭을 가꾸기도 해 포도의 땅이라는 의미의 바인랜드(Vineland)라는 지명을 남기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인들은 이 사실에 별 의미를 두지 않는다. 미국 역사학자 부어스틴(Boorstin 1986)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바이킹들은 어쩌면 최초로 아메리카에 정착한 유럽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서도 그들이 아메리카를 발견하였다고 말하기에는 너무나 거리가 멀었다. 험악한 바다를 건너서 이룩한 그들의 정착은 육체적인 용감한 행위였지 정신적인 그것은 아니었다. 그들이 아메리카에서 행한 것들은 그들 자신의 또는 그 밖에 다른 사람들의 세계관을 변화시키지 않았다.”
 

#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 탐험가의 필독서

 
유럽인들은 14세기 초에 베네치아 출신 마르코 폴로(1254~1324)동방견문록을 비록하여 여러 모험가들의 동양탐험에 관한 이야기가 전파되면서, 캐세이(Cathay, 중국)가 갖고 있다는 풍요에 군침을 흘렸다. 동방견문록은 필사본시대의 마지막 세기와 인쇄술시대 최초의 세기에서 모두 최대의 베스트셀러 가운데 하나가 되면서 콜럼버스를 비롯한 모든 탐험가들의 필독서가 되었다.
 

# 향신료 루트를 찾아라

 
풍요를 향한 욕망은 십자군의 귀환과 함께 유럽과 동방의 육상교역로가 열리면서 더욱 커졌지만, 1453년 콘스탄티노플(현재의 이스탄불)이 투르크족에게 함락되자 지중해 유럽의 경제적 생명줄이었던 향신료(香辛料, spices) 루트가 막히고 말았다. 유럽인들은 이미 새로운 미각에 눈을 떴기 때문에 당시 향료는 금에 버금가는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 포르투갈 : 바르톨로뮤 디아스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탐닉했던 맛을 어찌 잊을소냐. 반드시 다른 향신료 루트를 찾아야 한다는 절박감이 무럭무럭 자라났다. 여기에 15세기에 엄청난 인구증가가 이루어져 유럽인들은 신세계 정복의지를 불태웠다. 포르투갈이 가장 적극적이었다. 1486년 바르톨로뮤 디아스(1450~1500)가 아프리카 남단 희망봉을 돈 이래로 여러 포르투갈 탐험가들이 신세계에 대한 도전을 감행했다.
 

# 중국 명나라 정화의 원정

 
서양인들은 디아스를 최초의 해양 탐험가로 들지만, 이미 80여 년 전에 해양을 주름잡은 이가 있었다. 중국 명()의 정화(鄭和, 1371~1433). 이슬람교도이자 환관이었던 정화는 1405711317척의 함대와 27000명의 병사를 이끌고 첫 번째 원정을 떠났는데, 그의 원정은 1430년 선덕제(1399~1453) 5년에 이뤄진 마지막 출항까지 모두 7차례나 이어졌다. 원정대는 오늘날의 동남아ㆍ인도ㆍ중동ㆍ동아프리카를 넘나들며 모두 37개국을 방문해 외교관계를 맺고 교역을 했으며, 바로 이때에 동남아 곳곳에 화교 공동체가 만들어졌다. 그의 원정분대는 동아프리카에 정착해 후손을 남겼으며, 지금도 인도양 각국에서는 정화의 초상을 모신 도교풍의 사원을 볼 수 있다. 크로스비(Crosby, 2000)의 말마따나, “정치적 변화와 문화적 폐쇄성이 중국인 항해자들의 야망을 질식시키지 않았더라면, 역사의 가장 위대한 제국주의자는 유럽인이 아니라 극동인이 되었을 것이다.”
 
[강준만, 미국사 산책 1,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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