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0월 8일 일요일

[한국전쟁] 신분증이 없어서 군인들에게 두들겨맞은 서정주

서울수복 후 서울에는 이른바 시민증이라는 것이 생겼다. 이것이 처음 생겼을 때에는 양민과 잠복해 있는 적색분자(빨갱이)를 구별하려는 목적성이 강했다. 따라서 아무에게나 발급해주는 게 아니라 엄격한 심사를 거쳤다.
 
비단 서울뿐만 아니라 전쟁 중엔 신분증이 생명과도 같았다. 특히 빨치산 출몰 지구에선 더욱 그랬다. 미당 서정주가 19512월 처가인 정읍에서 겪은 일이다. 그는 어느날 술을 마시다 통행금지를 어겨 군인들에게 붙잡혔는데, 신분증을 처갓집에 두고 나왔다는 걸 그때서야 알게 됐다. 서정주가 뭐라고 자신을 밝힐 틈도 없이 군인들은 신분증이 없는 서정주를 군홧발과 총대로 한첨 때렸다. 그 와중에 누군가가 개울가로 끌고 가 쏘아버려라!”는 명령을 내렸다.
 
서정주를 개울가로 끌고 가던 군인 중 하나가 이 정읍에 누구 보증 서 줄 만한 사람 하나도 없나? 유력한 인물로 말이야라고 말했다. 그때서야 비로소 서정주는 있소. 여기 경찰서장이 내 중학동창이오라고 말할 기회를 얻게 돼 겨우 살아났다. 서정주는 이때 몰매를 맞은 탓에 큰 병을 얻게 되었지만 모든 걸 체념했다.
 
내게 보증인 없느냐?’고 물을 만한 성의가 있던 그 병사의 정신이 있어 참 다행이었다. …… 나는 이 내 부주의의 벌로 이듬해 광주 조선대학 훈장 시절에 지독한 늑막염을 앓아야 했고, 지금도 그건 만성으로 남아 아주 없어지지도 않았지만, 이때의 내게 보증인까지를 물을 만큼 정이 있던 병사를 생각하곤 내 부주의의 과실 밖에 이 때의 딴 고초는 일체 마음에 두지 않기로 해오고 있다.”
 
그랬다. 그렇게 훌훌 털어버리는 사고방식을 갖지 않고선 도무지 견뎌내기 어려운 시절이었다.
 
[강준만, 한국 현대사 산책 1950년대편 제1, 128-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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