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0월 3일 화요일

서인 그리고 선조, 동인의 정여립을 제거하기 위해서 기축옥사를 일으키다

정여립(1546-1589)
()는 인백(仁伯), 호는 죽도(竹島), 본관은 동래(東萊).
 


정여립에 대한 엇갈린 평가

 
정여립처럼 사후 4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죽음의 배경을 놓고 분석이 엇갈리는 인물도 흔치 않을 것이다. 반역 죄인이냐 아니면 무고의 희생자였느냐를 놓고 지금도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성격이 포악한 자였다는 평가에서 최초의 공화주의자였다는 주장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논란 속에 휩싸여 있는 정여립은 조선 최대의 모략극의 희생자였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지역차별의 계기가 된 기축옥사

 
아무튼 그 사실 여부를 떠나 정여립과 연루되었다는 혐의로 동인의 주요 인사들이 제거되며 1천여 명에 달하는 사대부들이 희생되는 이른바 기축옥사가 일어났다. 이는 조선의 4대 사화의 희생자들을 합친 숫자에 비교될 만큼 엄청난 사건이었다. 이 옥사로 인해 전라도는 평안도, 함경도 등 서북 지방과 함께 반역향으로 낙인찍히고 호남 출신 인사의 관계 진출이 어렵게 되었다. 기축옥사는 지역차별의 계기가 된 사건이기도 했다.
 

정여립을 공격한 서인들

 
정여립이 속한 동인들을 타도할 기회를 노리던 서인들은 정여립의 범상치 않은 행동에 주목했다. 그리고 정여립이 만든 대동제가 모반을 위한 무력 양성 조직이라고 고변했다. 아울러 몇 가지 그와 관련되었다는 참설을 거론하며 그에게 역모 혐의를 뒤집어 씌웠다. 서인들이 내세운 참설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국초 이래로 전해온 목자망(木子亡) 정읍흥(鄭邑興)” 이씨는 망하고 정씨가 흥한다는 참설을 정여립이 요승 의연과 모의하여 이를 옥판에 새겨서 지리산 석굴에 숨겨두고, 산놀이를 빙자하여 지리산에 가서 옥판을 찾아 무리들에게 보였다.
 
둘째, 승려 의연이 왕기가 전주(정여립의 근거지였다) 동구 밖에 있다고 꾸며 전주 왕기설(王氣說)을 퍼뜨렸다.
 
셋째, “뽕나무에 말갈기가 나면 그 집 주인이 왕이 된다는 동요가 있는데 정여립이 의연과 몰래 정여립의 정원에 있는 뽕나무 껍질을 벗기고 말갈기를 끼워두었다가 뽕나무 껍질이 서로 붙게 되자 이웃 사람들에게 보여주며 누설하지 못하게 하였다.
 

아들의 호까지 거론하며 정여립을 공격하다.

 
그 외에도 정여립의 아들 옥남(玉男)”의 호를 거점(去點)”이라 하여 이는 옥()자에서 점을 지우면 왕()이 된다는 뜻으로 역모가 틀림없다는 혐의까지 씌웠다.
 
동인세력 타도를 노리던 서인들은 서인세력 대부 정철의 주도에 따라 황해 관찰사 한준, 안악군수 이축, 재령군수 박충간, 신천군수 한인 등이 정여립의 고변을 상주하였다. 이에 소식을 전해들은 정여립은 아들과 함께 죽도로 피신했다가 자살했다고 한다. 정여립의 아들 옥남(玉男)을 놓고, 음모가들이 호를 엉뚱하게 거점(去點)이라 위서해 정여립을 제거한 것이다.
 
김삼웅, 한국사를 뒤흔든 위서, 127-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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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를 통틀어 가장 함량 미달의 군주로 평가받는 선조 시대는 왕 한 사람을 위해 너무 많은 사람들이 희생한 안타까운 시대이다. 정여립 역시 시대를 잘못 타고 태어난 것이 그의 운명을 결정지었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함량 미달의 군주의 비위를 맞추면서 정적을 제거하려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던 당시 관료들에게도 있다고 봐야 한다.
 
정여립이 조직한 대동계나 그의 사상이 후대에 의미있게 평가받는 것은 그것이 꽃을 피우지 못하고 좌절된 것에도 이유가 있을 것이다. 당시 조선 시대라는 상황 속에서 시대를 앞서간다는 것은 죽음과 연결될 수 있었던 것이지만, 과연 그것이 오늘날의 평가대로 의미있게 진행되었을 것인지에는 의문이 든다.
 
좌절의 시점에서는 실현되지 못한 아쉬움으로 역사에 언급이 되었지만, 이후 역사의 진행 과정 속에서 그가 어렴풋이 꿈꾸었던 미래를 후손들이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 우리가 역사를 올바르게 배우는 이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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