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의 사주는 은행가 출신으로서 2년 동안 『조선일보』 사장을 지냈던 장기영이었다.
# 장기영, 조선일보측의 제의로 사장이 되다
그는 1952년 4월 조선일보측의 제의로 납북된 방응모 대신 5년 임기를 보장받고 『조선일보』 사장에 취임했었다. 그는 탁월한 경영 능력을 발휘하여 그가 『조선일보』를 맡은 후 1년 동안 발행 부수는 350% 늘어났고, 지대 수입은 640%, 광고 수입은 518%가 늘어났다. 그러나 그의 개성이 강한 운영 방식과 독자적인 영향력 구축이 방씨 일가와 갈등을 빚어 임기의 반도 지나지 않은 1954년 4월 조선일보측의 요구로 중도 퇴임했다. 『조선일보』는 장기영 퇴임 후 방응모의 손자인 29살 먹은 방일영이 직접 경영 일선에 나섰다.
# 장기영, 『한국일보』를 창간하다.
장기영은 『조선일보』를 그만 둔 지 2개월도 안 된 시점에서 경영난을 겪고 있는 『태양일보』를 인수해 『한국일보』를 창간하였다. 『조선일보』와의 악연 때문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이후 『한국일보』는 30년 가까이 한국의 조간 신문 시장을 놓고 『조선일보』와 치열한 경쟁을 벌이면서 한국 신문계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 장기영의 독특한 경영 스타일
장기영은 국내 최초로 1954년 8월 1일 기자 1기 6명을 공채한 이후 정기적으로 기자를 공개 채용해 다른 신문사에 이러한 관행을 퍼뜨렸다. 정진석은 장기영의 독특한 경영 스타일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장기영이 여느 신문사 사장과 달랐던 경영자로서의 자세는 그가 자기 집과 사장실에서 직접 신문의 구독신청을 받고, 배달사고를 접수하여 처리하기도 했던 데서도 엿보인다. 그는 새벽에 일어나 변두리 집집마다 다니면서 신문을 보급했고 신문사가 벌이는 여러 가지 사업에 팔을 걷어 붙이고 진두지휘했다. 배달사고가 있다는 독자의 전화를 받으면 직접 들고 가 전달하기까지 했다. 사원들과 독자들을 향한 일종의 제스처로 볼 수 있지만 그의 이러한 정력적인 노력이 『한국일보』를 키운 것도 사실이다.”
장기영은 『조선일보』 사장으로 있던 1953년 11월부터 김활란으로부터 영어 일간지 『코리아 타임스』를 인수하여 발행해 왔는데, 그는 『한국일보』의 창간으로 두 개의 신문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욕심은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그는 이미 그때에도 전파매체에도 큰 관심을 기울여 1957년에는 TV 방송국을 경영하게 된다.
- 강준만, 『한국 현대사 산책ㆍ1950년대 제2권』, 218-2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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