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0월 13일 금요일

한글 간소화 파동(1953~1954년, 한글을 소리나는 대로 표기하자!)

1953년에서 1954년까지 세상, 적어도 식자층의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한글 간소화 파동은 한글과 관련된 문제인 동시에 이승만의 리더십 행태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말해주는 사건이었다.
 

# 한글 맞춤법 개정에 대한 이승만의 의지

 
이승만은 1949109일 한글날 담화에서 한글의 개정을 피력한 바 있었다. 그러나 그때 국민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이승만은 195023우선 정부만이라도한글 맞춤법 개정을 시행하겠다고 말했지만, 곧이어 터진 한국전쟁으로 인해 실행은 하지 못했다.
 

# 한글을 소리나는 대로 표기하자!

 
휴전협정이 진행 중이던 1953411일 이승만은 국무회의에서 정부문서와 교과서에는 옛 철자법을 사용할 것을 결의하고 427일 국무총리 훈령을 내렸다. 이는 구한국 말엽의 성경 맞춤법으로 돌아가, 예컨대, ‘앉았다안잣다, ‘좋지 않다조치 안다로 표기하는 등 소리나는 대로 표기하자는 것이었다.
 

# 문화계와 언론계의 집단 반발

 
이에 대해 문화계와 언론계 등에서 집단 반발을 하고 나섰다. 그러자 정부는 77일 문교부령으로 50명으로 구성된 국어심의회를 구성했지만, 이들은 정부의 방안에 동의하지 않았다. 정부는 국어심의위원회의 결론을 무시하고 이승만의 뜻대로 개정을 추진했다. 이에 항의하여 12월 문교부 편수국장 최현배가 사임하고, 19542월 문교부장관 김법린도 사임했다. 224일 국무총리 백두진은 새 문교부장관에는 한글 간소화를 실천할 사람을 임명할 것이라고 말했다.
 

# 이승만의 고집

 
이승만의 고집도 대단했다. 그는 327앞으로 3개월 내에 현행 맞춤법은 다 폐지하고 성경의 신구약과 기타 국문서에 쓰던 방식을 따라서만 글을 쓰도록 하라는 내용의 특별담화를 발표했다. 421, 70여일 동안 공석이던 문교부장관에 이선근이 임명되었으며, 이선근은 다음날 첫 기자회견에서 한글 간호화 추진 의사를 명백히 했다.
 
이선근은 626일 기자회견에서 한글 간소화 3원칙을 발표했다. 72일 이승만 주재하의 국무회의를 거쳐 3일에는 문교부와 공보처 공동의 간소화 시안이 발표되었는데, 이는 문교부 내 관계기관과도 협의가 없었을 정도로 극비리에 작성된 것이었다.
 

# 조병옥의 비판

 
711일 조병옥은 국회에서 세계적으로 훌륭한 인정을 받고 있는 한글을 간소화한다는 것은 독선적 처사이며, 우리나라에는 지당(至當)장관, 낙루(落淚)장관, 병신(病身)장관이 있어서 대통령에게 올바로 진언하는 장관이 하나도 없다고 비판했다.
 

# 국회에서의 반대, 매카시즘으로 반격한 이선근

 
712일 국회 본회의에서 윤형남, 김상돈 등이 민족문화를 말살하려는 것이 아니냐고 공세를 취하자 이선근은 수일 전 북한 괴뢰들이 방송할 때 사용한 말과 같다고 주장했다... 한글 맞춤법 문제를 둘러싼 논쟁에까지 매카시즘 수법을 끌어들인다는 건 당시 매카시즘이 만병통치약 비슷하게 사용되었다는 걸 말해주는 것이었다.
 

# 신문과 소설의 반대

 
한글 간소화에는 신문들도 반대하고 나섰다. 이미 여러 차례 반대 사설을 게재해 온 경향신문195475일자 후퇴하는 한글문화란 사설을 통해 이제 최종적으로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것은 국회의 양식 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비석의 자유부인도 비판에 가세했다.
 

# 결국 한글 간소화 방침을 철회한 이승만

 
워낙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아 결국 이승만도 한글 간소화 방침을 철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파동은 1년 반 동안의 논란 끝에, 1955919일 공보실을 통해 발표된 이승만의 담화를 마지막으로 일단락되었다.
 
국민이 원하는 대로 현 맞춤법에 대해서 더 문제 삼지 않겠다.”
 

# 이승만 개인의 불편함이 작용된 한글 간소화 파동

 
이 파동의 이면엔 이승만 개인의 불편함이 크게 작용했다는 설이 있다. 이승만이 1904년에 미국으로 건너가면서 이후 수십 년 동안 새롭게 변한 맞춤법을 따라잡지 못한 탓에 그게 매우 불편했으리라는 것이다. 아닌게 아니라 이승만은 마지막 담화문에서도 내가 해외에 있는 동안에 한가지 문화상 중대한 변경이 된 것은 국문 쓰는 법을 모두 다 고쳐서 쉬운 것을 어렵게 만들며 간단한 것을 복잡하게 만들어 놓은 것이니라고 말했다.
 
[강준만, 한국 현대사 산책 1950년대편 제2, 178-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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