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0월 9일 월요일

[한국전쟁] 미국이 개입한 발췌개헌안 타협, 그리고 통과(1952년 7월 4일)

한국군 내부에서 쿠데타 논의까지 진행될 정도로 파국으로 치닫는 상황에서 미국은 대한민국의 정치 상황을 어떻게 안정화시키려고 했을까?
 

# 국무총리 장택상의 협상카드, 발췌개헌안

 
국무총리 장택상은 정부와 국회의 갈등을 해소시킨다는 명분 아래 정부측 개헌안과 국회측 개헌안을 절충한, 이른바 발췌개헌안을 협상 카드로 제시했다. 이는 대통령 직선제와 국회 양원제의 정부안을 뼈대로 국회의 국무위원 불신임권을 준다는 국회안을 합친 것이다.
 

# 설득과 위협을 통한 서명작업

 
장택상을 중심으로 하는 신라회는 원외 자유당과 연합하여 야당 의원들을 일면 설득하고 일면 위협하면서 이 안에 대한 서명작업을 벌여 나갔다. 초안이 작성된 지 20일만인 621일에 원외 자유당 63, 신라회 20, 원내 자유당 19, 민우회 11, 민국당 6명 무소속 4명을 포함하여 123명의 서명을 얻어냈다.
 

# 미국과 유엔이 개입했을 가능성 시사

 
그때 의원들에게는 이런 위협이 가해졌다. “타협안에 서명하지 않으면 변란이 일어날 거요. 국회가 해산되고, 미군정이 실시될 거요.” 장택상은 회고록에서 신라회에서 발췌개헌안을 제출하여 가까스로 그 난국을 수습하게 되었는데 그 이면에는 공개할 수 없는 국제적인 모종의 계책이 있었다고 술회했다. 이 발췌개헌안은 미국과 유엔이 개입해 이루어졌다는 걸 시사한 것이다.
 

# 국회의원 출석 거부, 정족수 미달

 
621일 대통령 직선제와 양원제를 골자로 한 개헌안이 국회에 상정되자 내각제 추진 의원들은 국회 출석을 거부하고 잠적하였다. 정족수 미달로 개헌안 심의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신익희, 조봉암 등 국회의장단 측은 미국측의 타협책에 동조해 출석 거부 의원들에 대한 출석 권고에 합의했다.
 

# 이승만 암살 미수 사건

 
이런 가운데 625일 부상 충무동 광장에서 거행된 625 두 돌 기념식에서 이승만 암살미수 사건이 발생했다. 왕년의 독립투사 김시현과 유시태가 벌인 일이었다. 의열단원 출신인 유시태(당시 62)는 민국당 의원 김시현의 양복을 빌어 입고 김시현의 신분증을 소지한 채 기념 행사장에 들어갔다. 유시태는 이승만의 등 뒤 3미터까지 다가가 권총의 방아쇠를 당겼으나 불발이 되고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경찰과 특무대는 합동으로 수사를 펴 유시태를 조종한 혐의로 국회의원 김시현, 민국당원 서상일 등 10여 명을 구속했다. 이 암살미수 사건은 이승만을 지지하는 관제 시위의 불길에 기름을 퍼붓는 효과를 가져왔다.
 

# 경찰과 계엄군을 동원한 국회 정족수 채우기

 
71일부터 국회 임시회의를 개최하기 위한 의원들의 강제 연행이 시작되었다. 개헌안의 의결 정족수는 123명이었는데 도무지 의원들을 모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73일 이범석과 원용덕은 75일까지는 여하한 수단을 써서라도 실종 의원 전원을 국회에 등원케 한다는 내용의 포고문을 발표했다. 경찰과 계엄군을 동원한 수색이 실시되었다.
 

#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된 발췌개헌안

 
먼저 붙잡혀 온 의원들은 임시의사당에 연금되어 정족수가 찰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이 일을 위해 국제공산당 혐의로 체포된 10명의 의원들까지 석방 등원당했다. 74185명 가운데 166명이 출석하여 정족수에 이르렀다. 그날 밤 930분 경찰과 관제 시위대가 국회의사당을 완전 포위한 가운데 발췌개헌안 안건에 대한 표결에 들어갔다. 표결 방법은 기립 표결이었다. 개헌은 출석의원 166명 가운데 163명의 찬성으로 통과되었다. 3명은 기권이었으며, 반대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강준만, 한국 현대사 산책 1950년대편 제1, 289-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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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췌개헌안을 통과시키기 위한 눈물겨운 노력이었다. 심지어 국제공산당 혐의로 체포한 10명의 의원들까지 석방시키면서 정족수를 만들어 냈다. 그런데 이런 무리한 개헌 작업은 미국과 유엔이 동의하지 않으면 진행조차 시킬 수 없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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