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0월 9일 월요일

[한국전쟁] 미국의 이승만 제거 계획과 한국군의 쿠데타 모의(1952년 6월)

195262, 이승만은 국무총리를 통해 514일에 다시 제출했던 직선제 개헌안이 24시간 이내에 통과되지 않는다면 국회를 해산하겠다는 최후 통첩을 발하라고 명령했다

# 미국의 경고, 이승만의 오리발


바로 그 다음 날 트루먼은 주한 미 대사관을 통해 돌이킬 수 없는 조치를 취하지 말 것을 경고하였다. 트루먼은 정치적 위기를 완화할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한국은 위험한 정세에 부닥칠 것이며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군경원조를 하고 있음을 주지시켰다. 이에 대해 이승만은 계엄령은 순수한 군사적 이유에서 선포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 세계 언론은 이승만을 독재자, 파시스트라고 비난했다


이즈음 이승만은 세계 언론으로부터 무수히 많은 욕을 얻어먹고 있었다. ‘독재자는 기본이고 파시스트라는 비난까지 쏟아졌다. 마닐라의 선데이 크로니클5261일자는 이승만에게 베테랑 파시스트라는 딱지를 붙였고, 미국 워싱턴 스타5266일자도 이승만 정부에 파시스트라는 딱지를 붙이면서 비난했다.
 

# 미국의 이승만 하야 계획과 한국군의 쿠데타 모의


이승만이 말을 듣지 않자, 이즈음 미국은 이승만을 하야시킬 계획을 검토하고 있었다. 그런 기류가 한국군에게까지 연결돼 쿠데타가 모의되기도 했다. 미수로 끝나긴 했지만, 이때에 육군훈령 제217조를 기초한 육본작전교육국 차장인 대령 박정희는 이승만에 대한 군부의 불신과 실망을 배경으로 쿠데타를 모의하였다. 52514일 박정희와 연계된 작전국장 준장 이용문, 15연대장 대령 유원식 등은 장면(52420일 총리 사임)의 비서실장 선우종원을 찾아가 장면 박사를 추대, 무력혁명을 하자고 제의하였지만 장면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용문은 53623일 지리산 공비토벌 사령관으로 작전을 지휘하다 헬기 사고로 사망했는데, 이용문을 흠모했던 박정희는 이용문의 뜻을 9년 후에 실행에 옮긴다. 이용문의 아들 이건개는 197131세의 젊은 나이에 최연소 서울시경국장이 된다. 대통령이 된 박정희는 이건개에게 자네 아버지가 살아 계시다면 그분이 516을 주동했을 걸세라고 말했다.]
 

# 친이승만 집회


6127개 도의 도의회 의원들과 전국의 시ㆍ읍ㆍ면 의원들은 부산에 집결하여 국회의원 소환과 국회해산을 결의하고 국회의사당 앞 광장과 대통령 관저 앞에서 연좌시위를 벌였다. 이 시위에는 18개 친여단체와 조선방직의 2천여 노동자들까지 동원되었다.
 

# 반이승만 집회


620일 전 부통령 이시영과 김성수, 두 달 전까지 국무총리였던 장면, 전 내무부장관 조병옥, 김창숙 등 60여 명의 인사들이 연대 서명해 부산 국제구락부에서 반독재 호헌 구국선언 대회를 열고자 했다. 그러나 이 대회는 폭도들의 난입으로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일부 인사들이 머리를 다치는 등 유혈이 낭자했다.
 
[강준만, 한국 현대사 산책 1950년대편 제1, 287-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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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에 대한 반발은 정치권, 미국, 한국군 내부에까지 널리 퍼져있었다. 문제는 포스트 이승만에 해당될 마땅한 사람이 없다는 것이 문제였을 것이다. 그만큼 이승만은 그동안 열심히 자신의 정적을 제거하는데 최선을 다했다는 말이 된다. 그나마 한국군에서 쿠데타를 모의하면서 선택한 인물이 장면이었는데, 장면은 이후 역사를 놓고 본다면 행정가로서는 괜찮겠지만 결단력이 있는 정치가로서는 부족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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