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0월 26일 목요일

1950년대 장준하의 『사상계』

부산 피난 시절인 19533월 장준하에 의해 창간된 사상계자유민권의 기치를 내걸어 큰 호응을 얻었다.
 

# 진정한 극우 인사였던 장준하

 
아직 이때까지는 장준하는 진정한 의미의 극우 인사였다. 1947년 조선민족청년단에서 장준하와 같이 5개월 가량 지내면서 장준하의 절친한 후배가 된 서영훈의 증언에 따르면,
 
첫 인상은 너무 차가웠다. 술 먹는 자리에서 잔을 뒤집어놓고 성경책을 꺼내 술상에 놓는 사람이었다. 냉철하고 자기 일에 철두철미했다...... 훈련생들이 무기명으로 쓴 논문의 필적을 조사해, 누구누구가 공산당 같다고 할 정도로 극우 사상을 가졌었다.”
 
사상계1955~1956년에 3만 부를 넘어서면서 점점 영향력을 더해 갔다. 이즈음에 나온 장준하의 글에선 술 먹는 자리에서 잔을 뒤집어 놓고 성경책을 꺼내 술상에 놓는결벽주의가 발견된다.
 

# 문인들의 직업적 나태에 대한 비판

 
장준하가 사상계19552월호에 쓴 권두언 : 문학의 바른 위치를 위하여에선 문인들의 직업적 나태에 대한 관용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우리는 보았습니다. 연기 자욱한 다방에서 구석에서 정신병자 모양으로 천장만 바라보는 작가와 현대문학의 진수라고 교설(嬌舌)을 늘어놓는 인부 인사들을, 이들은 확실히 사이비 문학에 사로잡힌 노예가 아니면 환자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문학에서 해방되어야 합니다. 전 민족의 생생한 경험을 토대로 하여 그려진 진실한 작품이 나와야 하겠습니다.”
 

# 혼란의 시대에 학문과 예술은 어떠해야 하나?

 
장준하는 사상계19559월에 쓴 권두언 : 독선과 고고(孤高)에선 예술과 학문이 사회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는 지론을 펴는데, ‘해충운운하는 과격한 표현마저 서슴지 않는다.
 
일찍이 학문을 위한 학문또는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는 말이 유행하여 그 순수 고고성(孤高性)을 고창(高唱)한 일이 있습니다. 세태가 안정되고 평화가 무르익은 때에는 이러한 견해가 용인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혼란을 극()하여 명일(明日)을 예측할 수 없는 아시아의 현 단계에서 지식인의 임무를 저버리고 일신의 보전에 급급하여 비겁한 침묵을 지킨다든가 성심과 성의로써 사회의 광정(匡正), 향상에 이바지하려는 다른 지식인 활동을 백안시함으로써 순수 고결을 가장하는 따위의 학자 내지 문화인은 긴박한 우리 사회에서는 무용지장물(無用之長物)이요 나아가서는 남의 노력에 기식(寄食)하는 해충에 불과한 것입니다. 긴박의 도가 우리나라보다 덜한 서구와 미주의 일류학자, 문화인들이 선두에 서서 백성의 지향할 바 정부의 갈 길을 외치고 있는 현상과 너무나 동떨어진 대조라고 하겠습니다.”
 

# 절망의 허무주의 사조에 대한 비판

 
장준하는 195510월호에 쓴 권두언 : 소위 위기의식에 대하여에선 당시 서구를 풍미하던 절망의 허무주의 사조 수입에 대해 비판하는데, 지난달에 비해선 좀 점잖은 어조다.
 
근래 구미의 일부 인사들이 위기와 절망이라는 패자(敗者)의 철학을 고창함으로써 자유세계의 지성을 좀먹어 들어가는 것은 진실로 유감된 일이라 아니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맹목적으로 이 패자의 철학을 받아들여서는 안 되겠습니다. 더구나 힘과 포부에 차야 할 젊은이들의 마음 속에 이러한 씨를 뿌린다든지, 젊은이들 자신이...... 제자리에 주저앉아 퇴영무위(退嬰無爲)의 생활에 젖어버린다면 이보다 한심스러운 일은 다시 없을 줄 압니다. 저들은 위기니 절망이니 하여도 그것은 오직 관념상 내지 이념상의 희롱에 불과합니다.”
 

# 장준하의 지식인의 임무

 
장준하의 지식인 비판은 19572월호에 쓴 권두언 : 지식인의 임무에서도 계속된다.
 
대중의 선봉에 섰던 인텔 리가 사회적으로 지위를 차지하게 될 제() 그 사회의 방관자가 되며 강자와 합세되어 약자를 누르는 일까지를 강행함은 동서고금을 통하여 일반인 것 같습니다. 이는 입장을 바꿈에 따라 그가 지닌 비판정신이 마비되는 까닭입니다.”
 

# 장준하의 지식인을 위한 변명

 
장준하는 19578월호 권두언에선 갑자기 지식인을 위한 변명으로 급선회한다. 그는 우리 사회에 모순이 많은 중에서도 이 문화와 문화인을 얕보는 풍습은 가장 큰 것의 하나라고 하면서, “교수들을 가리켜 보따리 장수라고 하고 다방에 모이는 문화인ㆍ예술가들은 무조건 비방하는 악마들의 냉소 백안(白眼)을 우리는 참을 수 없다고 말한다.
 
이는 장준하가 26개월 전 연기 자욱한 다방에서 구석에서 정신병자 모양으로 천장만 바라보는 작가와 현대문학의 진수라고 교설(嬌舌)을 늘어놓는 인부 인사들운운했던 것과 비교하면 놀라운 반전이 아닐 수 없다. 모순일까? 꼭 그렇게 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지식인의 임무에 대한 그의 기대가 워낙 높기 때문에 지식인에 대한 비판과 옹호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 강준만, 한국 현대사 산책ㆍ1950년대편 제2, 32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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