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중반 신흥 종교의 성장은... 기성 교회의 ‘직무 유기’가 촉진하였다고 볼 수 있다.
# 신흥종파운동의 성공 요인
대표적인 신흥 종교는 박태선의 전도관, 문선명의 통일교, 나운몽의 용문산 기도원 운동 등이었다. 노치준은 이런 신흥종파운동이 신도들을 끌어들인 4대 요인으로 ① 신흥 종파 지도자의 카리스마적 성격, ② 신도들이 경험한 신비스러운 특수 체험, ③ 신흥 종파가 제공한 공동체적 분위기, ④ 한국 민족의 자부심 혹은 사명의 강조 등을 지적하였다.
노치준은 “한국 전쟁 후의 위기 상황에 처한 한국 사회의 많은 사람들이 종교적인 카리스마를 요구하였고, 그러한 요구에 성공적으로 응한 신흥 종파 지도자들은 수많은 사람들을 자신들의 영역으로 흡수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 박태선과 신앙촌
박태선은 1955년 1월부터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부흥 집회를 인도하였다. 박태선은 안수를 통해 병 고치는 능력이 있다고 소문이 났는데, 윤치영과 임영신 등 저명 인사들이 그러한 체험에 대한 간증을 하기도 했다. 1955년 한 신도는 박태선의 설교하는 외모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얼굴은 희고 맑고 키는 커다랗고, 정열에 빛난 눈으로 수만 군중을 노려보며 강단에 우뚝 서 있을 대에는 마치 하늘 천사 미카엘이 거기 서 있는 듯, 마귀도 당장 물리칠 듯하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안심과 흥분을 준다. 주먹을 불끈 쥐게 하는 때도 많다. 입을 열면 그의 입에서 불이 나온다. 인간의 입에서 불이 나오는 놀라운 광경을 나는 눈으로 보았다.”
# 문선명과 통일교
문선명은 1951년 1ㆍ4후퇴 때 남하하여 부산에서부터 집회를 시작하였는데, 1954년 5월에 서울에서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를 창설하여 교세를 확장하였다. 문선명의 한 신도에 따르면,“이 자리에서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하나님이 증거해주신 그분이었습니다. 너무 너무 감격스러워 자력에 끌리는 듯 끌리는 마음을 어찌할 수 없었습니다. 그분의 발등을 문질러주고 싶고 그분의 옷자락을 만져주고 싶은 충동을 겨우 참았습니다.”
# 나운몽과 용문산 기도원
“설교를 마치면서 통성기도 시간에는 온 장내가 뒤덮이는 정도가 아니었다. 모두 꿇어앉아 드리는 기도이면서 엉덩방아를 안 찧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꾸두등거리는 소리와 아울러 우는 소리, 가슴을 치는 소리, 이 모든 소리는 아집과 죄악성이 무너지는 소리라고나 해야 마땅할 것이다.”
# 카리스마 지도력, 신비스러운 체험
이 신흥 종교 지도자들의 카리스마도 신비스러운 특수 체험과 관련돼 만들어진 것이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여러 종류의 특수 체험들이 주장되는 게 이 신흥 종교들의 공통적인 특성이었다.
1955년 3월에 열린 남산 부흥집회를 박태선이 인도할 때 썩은 뼈 타는 냄새가 나다가 백합화 향기가 가득하고 이슬이 내리는 신비스러운 일이 일어났다는 이야기, 아버지가 통일교회에 나간다는 이유로 박해해 소나무에다 한 처녀를 철사줄로 꽁꽁 묶어 놓았는데 한밤중에 사도 바울이 홀연히 나타나더니 철사줄이 흐느적거리면서 풀어져버렸다는 이야기, 용문산 집회에서는 하늘을 향해 올라간 사다리가 나타났는데 그것이 사진에 찍혔다는 이야기 등등.
# 기성교회에 대한 불만
신흥종파운동이 기성 교회에서는 찾을 수 없는 공동체적 분위기를 제공한 것도 신도들을 끌어들인 주요 이유였다. 신흥종파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의 절대 다수는 기성 교회의 개신교들이었다. 예컨대, 전도관에 온 신도의 89%가 개신교인이었다. 이들은 한결같이 기성 교회의 냉랭함과 부패를 비판했다.
# 한국 민족의 자부심 혹은 사명 강조
신흥종파운동이 한국 민족의 자부심 혹은 사명을 강조한 것도 전쟁 중 구겨질대로 구겨진 민족적 자존심을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박태선은 하나님께서 옛 이스라엘 나라를 버리시고 새 이스라엘 나라를 세우셨는데 그것이 바로 한국이며 신앙촌은 지상천국을 이루는 하나님의 역사의 시원지라고 주장했으며, 통일교에선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동방의 나라가 한국이라고 주장했다.
그런 맥락에서 신흥종파운동에서는 일제 36년과 6ㆍ25전쟁도 더 큰 복을 주기 위한 시련으로 설명되었다. 노치준은 “전쟁, 가난, 원조, 억압 등의 분위기 속에서 민족적 자존심을 상실한 사람들에게 우리 민족이 당하는 고난의 의미와 사명을 가르쳐주는 교리는 확실히 그 종파로 끌어당기는 요인이 되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 강준만, 『한국 현대사 산책ㆍ1950년대편 제2권』, 341-34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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