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월 14일 토요일

[삼국사기 신라본기] 제2대 남해차차웅(南解次次雄, AD 4~24)

2대 남해차차웅(南解次次雄, AD 4~24)

 

[1, 기원후 4]

 

남해차차웅이 즉위하다 : 403()

남해차차웅(南解次次雄)이 왕이 되었다. [‘차차웅은 혹은 자충(慈充)’이라고도 한다. 김대문(金大問)이 이르기를, “방언으로 무당을 일컫는다. 세상 사람들은 무당이 귀신을 섬기고 제사를 받들기 때문에 두려워하고 공경하였다. 그래서 존장자(尊長者)를 칭하여 자충이라고 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혁거세(赫居世)의 적자이다. 신장이 크고, 성격이 침착하며 온후하고, 지략이 많았다. 어머니는 알영(閼英) 부인이다. 왕비는 운제(雲帝) 부인이다. [일설에는 아루(阿婁) 부인이라고도 한다.] 아버지를 계승하여 왕위에 올라 원년을 칭하였다.

칭원법에 대한 사론

논하여 말한다. 임금이 즉위하면 해를 넘겨 원년을 칭하니, 그 법이 춘추(春秋)에는 상세히 나와 있다. 이는 선왕들이 덜어내지 않은 전범이다. 이훈(伊訓)에는, “성탕(成湯)이 죽으니 태갑(太甲) 원년이다.”라 하였고, 정의(正義)에도 성탕이 죽으니 그 해는 곧 태갑 원년이다.”라고 하였다. 그렇지만 맹자(孟子)에는, “탕이 붕어하였는데 태정(太丁)은 아직 즉위하지 않았으니, 외병(外丙) 2년이고 중임(仲壬) 4년이었다.”라고 하였으니, 상서(尙書)에 빠진 부분이 있어 정의에서 그릇되게 설명한 것이 아닌지 의심이 간다. 혹자는 말하기를, “옛날에는 임금이 즉위하면 혹은 달을 넘겨 원년을 칭하기도 하고 혹은 해를 넘겨서 원년을 칭하기도 하였다.”라고 하는데, 달을 넘겨 원년을 칭한 것이라면 성탕이 죽으니 태갑 원년이다.”라는 것이 맞는 것이다. 맹자에서 태정은 아직 즉위하지 않았다.”라고 한 것은 태정이 미처 즉위하지 않은 상태에서 죽은 것을 말한 것이며, “외병 2년이고 중임 4년이었다.”고 한 것은 대개 태정의 아들로 태갑에게는 형이 되는 두 사람이 태어난 지 2년이나 4년에 죽어서 태갑이 탕을 계승할 수 있었음을 일컬은 것이다. 사기(史記)에서 편의적으로 이들 중임과 외병을 두 임금이라고 말한 것은 잘못된 것이다. 전자로부터 말하자면 앞 임금이 돌아간 해에 왕위에 올라 원년을 칭하는 것은 옳지 않은 것이 되겠지만, 후자로부터 말하자면 가히 상()나라 사람들의 예를 얻은 것이라 할 만하다.

낙랑이 침입하다 : 407()

원년(4) 가을 7월에 낙랑(樂浪) 병사들이 와서 금성(金城)을 여러 겹으로 에워쌌다. 왕이 좌우 신하에게 말하기를, “두 성인이 나라를 버리시고 내가 국인들의 추대로 왕위에 그릇되게 거하게 되어 위태롭고 두렵기가 마치 하천의 물을 건너는 것 같다. 지금 이웃 나라가 침략해 온 것은 나의 부덕이라 하겠으니, 어찌하면 되겠는가?”라고 하니, 좌우 신하들이 대답하기를, “적들이 우리에게 상()이 있음을 다행으로 여기고 망령되게 병사를 동원하여 왔으니 하늘이 반드시 도와주지 않을 것입니다.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적이 얼마 있지 않아 물러나 돌아갔다.

 

[3, 기원후 6]

 

시조묘를 세우다 : 601()

3(6) 봄 정월에 시조묘(始祖廟)를 세웠다.

일식이 일어나다 : 61001()

3(6)겨울 10월 병진(丙辰) 초하루에 일식(日食)이 있었다.

 

[5, 기원후 8]


탈해를 사위로 들이다 : 801()

5(8) 봄 정월에 왕이 탈해(脫解)가 현명하다는 말을 듣고, 큰딸과 결혼시켰다.

 

[7, 기원후 10]

 

탈해를 등용하다 : 1007()

7(10) 가을 7월에 탈해(脫解)를 대보(大輔)로 삼아 군국(軍國)의 정사를 맡겼다.

 

[8, 기원후 11]

 

봄과 여름에 가물다 : 11()

8(11) 봄과 여름에 가뭄이 들었다

 

[11, 기원후 14]

 

왜병과 낙랑이 연이어 침입하다 : 14()

11(14)에 왜인이 병선 1백여 척을 보내 바닷가의 민가를 노략질하였다. 왕이6(六部)의 날랜 병사를 발동하여 이들을 막게 하였다. 낙랑(樂浪)우리내부가 비었을 것이라고 하고 금성(金城)을 공격해 오기를 매우 급하게 하였다. 밤에 유성(流星)이 적의 진영에 떨어지니 그 무리들이 두려워하여 물러나 알천(閼川)의 주위에 주둔하며 돌무지 20개를 만들어 놓고서 떠나갔다. 6(六部)의 병사 1,000명이 그들을 추격하여 토함산(吐含山)의 동쪽으로부터 알천에 이르렀는데, 돌무지를 보고 적들의 숫자가 많음을 알고서 추격을 그만두었다.

 

[13, 기원후 16]

 

일식이 일어나다 : 1607()

13(16) 가을 7월 무자(戊子) 그믐에 일식(日食)이 있었다.

 

[15, 기원후 18]

 

서울에 가뭄이 들다 : 18()

15(18)에 서울[京城]에 가뭄이 들었다.

누리로 기근이 들자 창고를 열어 구제하다 : 1807()

15(18)가을 7월에 누리[]가 발생하여 백성들이 굶주리니, 창고를 열어 구제하였다.

 

[16, 기원후 19]


북명인이 예왕 인장을 바치다 : 1902()

16(19) 2월에 북명(北溟) 사람이 밭을 갈다가 예왕(濊王)의 도장을 얻어서 바쳤다.

 

[19, 기원후 22]

 

전염병이 돌다 : 22()

19(22)에 전염병이 크게 돌아 사람들이 많이 죽었다.

겨울에 얼음이 얼지 않다 : 2211()

19(22)겨울 11월에 얼음이 얼지 않았다.

 

[20, 기원후 23]


금성이 태미 자리에 들어가다 : 23()

20(23) 가을에 금성[太白]이 태미(太微) 자리에 들어갔다.

 

[21, 기원후 24]


누리가 생기고 남해차차웅이 죽다 : 2409()

21(24) 가을 9월에 누리[]가 생겼다.

왕이 돌아가시니 사릉원(蛇陵園) 내에서 장례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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