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월 14일 토요일

[삼국사기 신라본기] 제3대 유리이사금(儒理尼師今, AD 24~57)

3대 유리이사금(儒理尼師今, AD 24~57)

 

[1, 기원후 24]

 

유리이사금이 즉위하다 : 2409()

유리이사금(儒理尼師今)이 왕이 되었다. 남해(南解)의 태자(太子)이다. 어머니는 운제(雲帝) 부인이고, 왕비는 일지(日知) 갈문왕(葛文王)의 딸이다. [혹은 말하기를 왕비의 성은 박()이고, 허루왕(許婁王)의 딸이라고도 한다.]

처음 남해왕(南解王)이 세상을 떠나자 유리(儒理)가 당연히 왕이 되어야 했는데, 대보(大輔)인 탈해(脫解)가 평소 덕망이 있어서 왕위를 그에게 양보하고자 하였다. 탈해가 말하기를, “신성한 기물은 큰 보배라서 보통 사람은 감당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제가 듣기에 성스럽고 지혜로운 사람은 이빨이 많다고 하니 떡을 깨물어서 누가 이빨이 많은지를 알아봅시다.”라고 하였다. 유리의 잇금[齒理]이 많은 것으로 나타나니, 이에 좌우 신하들과 더불어 왕으로 받들었고, 이사금(尼師今)이라고 불렀다. 옛 전승이 이와 같은데, 김대문(金大問)은 이르기를, “이사금은 방언으로 잇금[齒理]을 일컫는 말이다. 옛날 남해왕이 죽음을 앞두고 아들인 유리와 사위인 탈해에게 내가 죽은 후에 너희 박, 석 두 성씨는 나이가 많은 자가 왕위를 잇도록 하라.’고 말하였다. 그 후 김씨 성이 일어나서 세 성씨가 이빨이 많은 것으로써 서로 왕위를 이어갔으므로, 이사금이라고 칭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2, 기원후 25]

 

시조묘에 제사를 지내고 사면하다 : 2502()

2(25) 2월에 왕이친히 시조묘(始祖廟)에 제사를 지내고, 크게 사면을 내렸다.

 

[5, 기원후 28]

 

순행하고 구휼하다 : 2811()

5(28) 겨울 11월에 왕이 나라 안을 순행하였다. 할멈 한 명이 굶주린 채 몸이 얼어서 장차 죽게 된 것을 보고 말하기를, “내가 부족한 사람인데도 윗자리에 있으면서 백성들을 제대로 기르지를 못하여 늙은이나 어린이들을 이처럼 참혹한 지경에 이르게 하였으니, 이는 나의 죄이다.”라고 하고 옷을 벗어 덮어주고 음식을 건네 먹게 하였다. 그러고 나서 담당 관청에게 명을 내려 곳곳마다 홀아비와 홀어미, 고아나 독거노인, 늙고 병들어 혼자 생활할 수 없는 자들을 찾아서 살펴 먹을 것을 주어 부양하게 하였다. 이에 이웃 나라 백성들이 그 소식을 듣고서 찾아온 자들이 많았다. 이 해에 백성들 사이에서 평안함을 기뻐하며 처음으로 도솔가(兜率歌)를 지었으니, 이것이 가악(歌樂)의 시초이다.

 

[9, 기원후 32]

 

6부의 이름을 바꾸고 성씨를 내리다 : 32()

9(32) 봄에 6(六部)의 이름을 바꾸고, 성씨(姓氏)를 사여하였다. 양산부(楊山部)는 양부(梁部)라고 하고 성()은 이()로 하였으며, 고허부(高墟部)는 사량부(沙梁部)라고 하고 성은 최()로 하였다. 대수부(大樹部)는 점량부(漸梁部)[일설에는 모량부(牟梁部)라고도 한다.]라고 하고 성은 손()으로 하였으며, 간진부(干珍部)는 본피부(本彼部)라고 하고 성은 정()으로 하였다. 가리부(加利部)는 한기부(漢祇部)라고 하고 성은 배()로 하였으며, 명활부(明活部)는 습비부(習比部)라고 하고 성을 설()로 하였다.

17관등을 제정하다 : 32()

9(32) 또 관직을 두고 17개의 등급으로 하였다. 첫째는 이벌찬(伊伐飡)이고, 둘째는 이척찬(伊尺飡)이고, 셋째는 잡찬(迊飡)이고, 넷째는 파진찬(波珍飡)이고, 다섯째는 대아찬(大阿飡)이고, 여섯째는 아찬(阿飡)이고, 일곱째는 일길찬(一吉飡)이고, 여덟째는 사찬(沙飡)이고, 아홉째는 급벌찬(級伐飡)이고, 열째는 대나마(大奈麻)이고, 열한째는 나마(奈麻)이고, 열두째는 대사(大舍)이고, 열셋째는 소사(小舍)이고, 열넷째는 길사(吉士)이고, 열다섯째는 대오(大烏)이고, 열여섯째는 소오(小烏)이고, 열일곱째는 조위(造位)이다.

가배의 유래 : 32()

9(32)왕이 6(六部)를 정하고서는 절반씩으로 나누어 두 부류로 삼고, 왕녀 두 사람으로 하여금 각각 부내(部內)의 여자들을 거느리고 무리를 조직하게 하였는데, 가을 7월 열엿새부터 매일 아침 일찍 큰 부()의 뜰에 모여서 길쌈을 하게 하여 밤 10시경에 그치게 하였다. 그러고는 815일에 이르러 그 성과의 다소를 살펴, 진 쪽이 술과 음식을 마련하여 이긴 쪽에 사례하였다. 이렇게 하고서 가무와 온갖 놀이를 행하였는데, 그것을 가배(嘉俳)라고 불렀다. 이때에 경쟁에서 진 쪽의 여자 한 명이 일어나 춤을 추면서 탄식하여 말하기를, “회소(會蘇), 회소라고 하였으니, 그 음이 슬프면서 우아하므로 훗날 사람들이 그 소리를 따라서 노래를 지어 회소곡(會蘇曲)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11, 기원후 34]


땅이 갈라지다 : 34()

11(34)에 경도(京都)에 땅이 갈라지면서 샘이 솟아올랐다.

홍수가 나다 : 3406()

11(34)여름 6월에 홍수가 났다.

 

[13, 기원후 36]

 

낙랑이 침략해 오다 : 3608()

13(36) 가을 8월에 낙랑(樂浪)이 북쪽 변경을 침범하여, 타산성(朶山城)을 공격해서 함락시켰다.

 

[14, 기원후 37]


낙랑인이 투항해 오다 : 37()

14(37)에 고구려왕 무휼(無恤)이 낙랑(樂浪)을 습격하여 멸망시켰다. 그 나라 사람 5,000명이 투항해 오니 6(六部)에 나누어 살게 하였다.

 

[17, 기원후 40]

 

화려와 불내가 침략해 오다 : 4009()

17(40) 가을 9월에 화려현(華麗縣)과 불내현(不耐縣) 두 현의 사람들이 연계하여 모의하고서는 기병을 이끌고 북쪽 변경을 침범하였다. 맥국(貊國)의 거수(渠帥)가 군사를 내어 곡하(曲河)의 서쪽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쳐서 물리쳤다. 왕이 기뻐하여 맥국과 더불어 우호 관계를 맺었다.

 

[19, 기원후 42]

 

맥국에서 사냥한 짐승을 바치다 : 4208()

19(42) 가을 8월에 맥국(貊國)의 거수(渠帥)가 사냥을 하다가 새와 짐승을 잡아 왕에게 바쳤다.

 

[31, 기원후 54]


살별이 나타나다 : 5402()

31(54) 2월에 자궁(紫宮) 자리에서 살별[星孛]이 나타났다.

 

[33, 기원후 56]

 

여러 가지 자연 이변이 일어나다 : 5604()

33(56) 여름 4월에 용이 금성(金城)의 우물에 나타났다. 얼마 있지 않아 갑작스럽게 비가 서북쪽으로부터 와서 쏟아졌다.

거센 바람이 불어 나무가 뽑히다 : 5605()

33(56)5월에 바람이 세차게 불어 나무가 뽑혔다.

 

[34, 기원후 57]

 

탈해가 다음 왕위를 잇도록 유언을 남기다 : 5709()

34(57) 가을 9월에 왕의 건강에 이상이 생겼다. 신료들에게 이르기를, “탈해(脫解)는 몸으로는 나라의 척족(戚族)이고 지위로는 보필하는 신하에 처해 있는데, 공과 명성이 누차에 현저히 드러났다. 나의 두 아들은 그 재주가 그에게 한참 미치지 못한다. 내가 죽은 후에는 그로 하여금 왕위에 오르게 하려 하니, 나의 유훈을 잊지 말라.”고 하였다.

유리이사금이 죽다 : 5710()

34(57)겨울 10월에 왕이 돌아가시니 사릉원(蛇陵園) 내에서 장례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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