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왕정시대의 사회
이 시대의 특징적인 것은 사회의 구성원리가 ‘세대’였다는 것이다. 세대는 핵가족보다 큰 사회 단위다. 세대들이 모여 신 혹은 왕을 중심으로 한 제도들을 연합해 갔다. 이런 맥락에서 궁전을 뜻하는 수메르 단어 ‘에-갈’(큰 세대)을 설명할 수 있다. 에-갈은 신전을 의미하는 에와 신의 이름을 지칭하는 갈의 합성어로 ‘신 닌기르수의 세대’라는 의미다.
각 세대들은 자급 자족적인 단위로 간주될 수 있다. 초기 왕정시대 말, 엘리트에 속한 개인들은 나름의 세대들을 가지게 된다. 각 세대의 내부적 인사는 위계 구조로 조직되었다. 남녀 노동자들(수메르어 구르스와 게메)이 그 위계 질서의 최하위를 차지했고 숫자도 가장 많았다. 그들의 노동에 대한 대가는 배급이었다. 이 배급들로 노동자들은 자기 세대 내의 부양 가족들을 부양했음에 틀림없다. 세대주가 의존 가족들에게 음식과 옷과 같은 기본적 필요를 공급하며 그들을 부양하는 관습은 제3천년기의 고대 근동 사회의 근본적인 특징이었다. 여성들은 특히 맷돌을 돌리는 일이나 옷을 짜는 일을 하였다.
큰 세대의 일원이 되는 것은 사회적 약자에게 생존의 수단을 제공하였다. 한 도시 국가에는 여러 개의 공기관 조직이 존재하였다. 어떤 것들은 신에 속하였고 어떤 것들은 세속 권세자에게 속했다. 신전들 중 지방 만신전의 신의 위계를 반영한 위계질서가 있었다.
초기 왕정시대의 고고학 기록에서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은 사회의 특정 계층들이 유난히 많은 재물을 차지하게 된다는 점이다. 이것은 초기 왕정 시기 말엽에 공존했던 다양한 이념적 기초들 위에 그러한 권력 구조가 점차 합법화 되어갔음을 증명한다. 그러나 사회, 정치적 위계의 온전한 정의는 당시 아직 형성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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