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관 문화
문자는 남부 메소포타미아이 전통의 영향을 받은 통일된 근동 문화가 당시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가장 확실한 증거이다. 근동 전역에서 사용될 서기 기술과 문서 장르들이 바빌로니아에서 발흥하였다.
초기 왕정시대 동안 문자 체계는 점진적인 변화를 맞았다. 쐐기문자들은 점점 도식화되고 표준화되어 빠르게 토판에 찍는 것이 가능해졌다. 초기 왕정시대 말에는 문자의 기원이 된 상형적 요소가 문자에서 사라지게 된다.
시리아와 북부 메소포타미아의 도시화는 남부로부터 수입한 서기 관습을 채택하면서 발생하였다. 점차 문사의 순서가 표준화되면서 고대 독자와 오늘날의 독자들에게는 문서의 해독이 보아 용이해졌다. 문자의 기능이 확장되어 누군가에게 새로운 정볼르 전달하는 능력이 향상되었다. 뿐만 아니라 정보가 미래를 위해 저장될 수도 있었다. 신전에 서원 제물을 남긴 어떤 왕은 누가 드렸는지를 표기함으로써 미래의 방문객들이 그의 업적을 알 수 있도록 하였다.
고대 문서들은 초기 왕정시대에 그것이 발견된 모든 도시들에서 꾸준하게 필사되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아부 살라빅에서 출토된 어휘 목록들은 약 900km 떨어진 에블라에서 거의 동일하게 복제되었다. 제3천년기 중엽 근동의 문학에서는 코이네라는 그리스어를 발견할 수 있다. 지성의 중심지는 메소포타미아의 남부였다. 에블라의 어떤 문서들은 ‘젊은 서기관들이 마리로부터 왔다’고 전한다. 그것은 마리가 시리아의 서기관들을 훈련시키는 서기관들을 제공했음을 암시한다. 그들은 동일한 서기 관습을 따랐고 그들의 토판 모양도 유사했으며 동일한 쐐기문자들을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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