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르 제3왕조 이후의 혼란기
이스비-에라의 이신 왕조
우르의 마지막 왕인 입비-신의 통치 초기에 그의 수하에 있던 장군인 이스비-에라가 이신 지역에 한 왕조를 세웠다. 그리고 우르가 엘람인들에 의해 함락되었을 때 이스비-에라는 그 도시를 군사적으로 해방시켰고 이스비-에라의 후계자들은 ‘우르의 왕’이라는 칭호를 사용하였다. 그러나 이스비-에라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권력 분산의 경향은 여전히 강하였고 10-19세기에 지방 왕조의 수가 점점 증가하게 된다.
19세기 초반 바빌로니아 지역의 왕조들은 종교적 수도인 닙푸르를 중심으로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고 있음을 주장하였다. 닙푸르를 정치적으로 통치하는 왕은 ‘수메르와 아카드의 왕’이라는 칭호를 사용할 권리를 얻었다. 누구든지 닙푸르의 제사장이 그를 인정하면 비록 그의 힘이 약했더라도 수메르와 아카드의 왕이 되었다. 이런 문맥에서 수메르의 왕명록이 작성되었음을 인지해야 한다. 수메르의 왕명록은 한 번에 단 한 명의 왕이 존재한다는 이념을 강하게 고수한 문서이다.
이스비-에라의 이신 왕조는 대폭 축소된 우르 제3왕조의 후계자였다. 닙푸르의 제사장들도 우르를 포함한 대부분의 남부 도시들을 장악하고 그들 중 몇몇 도시에서 공공사업을 일으킨 이신의 왕들을 인정하였다. 그러나 20세기에 라르사에서 이신의 라이벌 왕조가 세워졌다. 라르사는 곧 바빌로니아 남부와 동부를 완전 장악하였다. 1897년 라르사의 왕인 아비-사레(Abi-sare)는 이신의 왕을 공격하였고, 이신의 패권이 더 이상 예전같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 이스비-에라(Ishbi-Erra, 1953~1921)
- 슈-일리슈(Shu-Ilishu, 1920~1911)
- 이딘-다간(Iddin-Dagan, 1910~1890)
- 이쉬메-다간(Ishme-Dagan, 1889~1871)
- 리피트-이쉬타르(Lipit-Eshtar, 1871~1860)
- 우르-닌우르타(Ur-Ninurta, 1859~1832)
- 부르-신(Bur-Suen, 1831~1811)
- 리피트-엔릴(Lipit-Enlil, 1810~1806)
- 에라-이미티(Erra-imitti, 1905~1799)
- 엔릴-바니(Enlil-bani, 1789~1775)
- 잠비야(Zambiya, 1774~1772)
- 에테르-피샤(Iter-pisha, 1771~1768)
- 울-둘-쿠가(Ur-du-kuga, 1767~1764)
- 수엔-마기르(Suen-magir, 1763~1753)
- 다믹-이리쿠(Damiq-ilishu, 1752~1730)
라르사 왕조
라르사의 왕위는 티그리스강 동쪽 지역에서 온 가문인 쿠두르-마북(Kudur-Mabuk) 왕조가 잡았다. 시조 쿠르드-마북은 아마 엘람인이었을 것이다. 그는 중앙 바빌로니아의 동쪽 끝 도시인 마스칸-샤피르(Mashkan-Shapir) 출신이었다. 자신의 아들인 와라드-신(Warad-Sin, 재위 1834-23)을 라르사의 왕좌에 앉히고 자신은 지방 문제에 간섭하였다. 와라드-신이 죽자 그의 형제인 림-신(Rim-Sin)이 그를 대신하여 메소포타미아 역사에서 기록적인 60년이라는 세월을 통치하였다. 림-신의 즉위 8년이 되기 바로 직전에 쿠두르-마북이 죽자, 전 지역은 림-신의 통치하에 들어갔다. 즉위 13년(1810년)이 되던 해 그는 우룩, 이신, 바빌론이 이끄는 연합군을 무찌르고 우룩 근처의 몇몇 마을을 접수했다. 라르사 근처를 추가적으로 원정하고 닙푸르(즉위 9년에 이신에게 빼앗겼었음)를 다시 함락한 후 그는 1800년 우룩을 무너뜨렸다.
- 나플라눔(Naplanum, 2025-2004)
- 에미숨(Emisum, 2004-1976)
- 사미움(Samium, 1976-1941)
- 자바아아(Zabaia, 1941-1932)
- 궁구눔(Gungunum, 1932-1905)
- 아비사레(Abisare, 1905-1894)
- 수무엘(Sumuel, 1894-1865)
- 누르-아다드(Nur-Adad, 1865-1849)
- 신-이디남(Sin-Iddinam, 1849-1842)
- 신-에리밤(Sin-Eribam, 1842-1840)
- 신-이퀴샴(Sin-Iqisham, 1840-1835)
- 실리-아다드(Silli-Adad, 1835-1834)
- 와라드-신(Warad-Sin, 1834-1822) - 쿠두르-마북의 아들
- 림-신 1세(Rim-Sin I, 1822-1763)
- 바빌론에 의해 정복됨 : 1763-1750
- 림-신 2세(Rim-Sin II, c. 1750)
함무라비의 바빌론
림-신이 자신의 즉위 30년이 되던 해에 1793년에 이신을 함락했을 때 바빌로니아에서 라르사의 유일한 라이벌은 함무라비가 1792년에 왕위를 이은 바빌론이었다. 함무라비는 림-신이 늙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이웃 국가들을 상대로 정복 전쟁을 시작하였다. 라르사도 1763년에 함무라비에게 정복당했다. 그는 림-신의 조직을 그대로 유지하며 라르사 사람들에게 남부 바빌로니아의 행정을 감독하는 일을 계속해서 맡겼다. 림-신은 이렇게 함무라비의 중앙집권 국가의 토대를 놓은 셈이다.
함무라비의 바빌로니아 |
경제적 변화
정치적 분열과 광범위한 지역 간 분쟁에도 불구하고 제2천년기 처음 3세기 동안에는 바빌로니아 지방의 경제가 쇠퇴했다는 아무런 증거가 없다. 도시와의 정도는 여전히 높았고 점점 증가하는 도시들에게 발견된 문서들은 고도의 경제활동을 증거해 준다. 심지어 지역 경제 기반을 잃어버린 우르도 번성했다. 제2천년기 초기에는 점진적이고 자연스런 과정을 통해 경제의 부분적 ‘사유화’가 발생했다.
경제 조직과 관리 체계는 2000년부터 1600년에 이르는 시대의 대표적인 특징이었으나 그것이 바빌로니아 사회에 가져온 결과는 재앙이었다. 당시 사람들은 엄청난 빚에 시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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