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0월 12일 화요일

우르 제3왕조 이후 아시리아와 동쪽 지역(에스눈나, 엘람)

아시리아와 동쪽 지역

 

교통 거점의 앗수르

 

2천년기 초기에 아시리아에서 발견된 문서는 놀랍게도 앗수르 출신의 상인들이 행한 국제 무역을 자세히 증거한다. 이로써 당시에 앗수르가 이 무역에서 교통거점으로 독점적인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 카네스 무역은 고수입을 가져다 주었다. 아나톨리아에서 주석은 앗수르 가격의 거의 두 배가 된다. 직물의 가격은 3배가 되었다. 상인은 일년에 쉽게 50~100%의 수입을 올릴 수 있었다. 이것이 위험도가 높은 사업에 대한 대가였다. 앗수르는 이웃 국가들보다 그다지 힘이 세지 못했다. 그러나 무역 조건을 협상하는 능력이 있었다.

 

함무라비 시대의 메소포타미아

에스눈나의 성장과 멸망

 

앗수르의 남동쪽에 있는 가장 힘센 두 국가는 엘람 그리고 디얄라 지방의 에스눈나(Eshnunna). 에스눈나(오늘날의 텔 아스마르)는 입비-신의 통치 초기에 우르로부터 독립하였다. 첫 번째 독립 군주인 슈-일리야(Shu-ilija) 이후 나라의 왕들은 100년 이상 동안 티슈팍 신의 총독으로 불렸다. 앗수르에서 지방의 독립 군주들은 앗수르 신의 총독이 되었다. 에스눈나가 왕이란 칭호를 얻었던 것은 이신이 닙푸르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픽-아닷의 아들들인 나람-신과 다두샤(dadusha)는 자신의 팽창주의적 정책을 계속 진행했고 그것은 에스눈나를 18세기 초엽의 메소포타미아 특유의 분쟁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게 했고, 에스눈나는 그 지역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군가가 되었다.

 

  • 우르게딘나(Urguedinna) - 우르 제3왕조 슐기 치하의 총독
  • 칼라무(Kallamu) - 우르 제3왕조 슐기 치하의 총독
  • 이투리아(Ituria) - 우르 제3왕조 슈-신 치하의 총독
  • 일루슈일리아(Ilushuilia) - 우르 제3왕조 입비신 치하의 총독
  • 누라쿰(Nurakhum) - 우르 제3왕조 입비-, 이스비-에라의 경쟁자
  • 키리키리(Kirikiri)
  • 빌랄라마(Bilalama) - 엘람의 탄-루후라티르(Tan-Ruhuratir)의 경쟁자
  • 이샤라마슈(Isharramashu)
  • 우스라와스(Usurawasu)
  • 우르-닌마르(Ur-Ninmar)
  • 우르-닌지다(Ur-Ningizzida)
  • 이픽-아다드 1(Ipiq-Adad I) - 바빌론의 수무-아붐의 경쟁자
  • 사리아(Sarriia)
  • 와라사(Warassa)
  • 벨라쿰(Belakum)
  • 이발--1(Ibal-pi-El I)
  • 이픽-아다드 2(Ipiq-Adad II)
  • 나람-(Naram-Sin) - 이픽 아다드 2세의 아들, 삼시 아닷 1세의 경쟁자
  • 단눔-타하즈(Dannum-tahaz)
  • 다두샤(Dadusha) - 이픽 아다드 2세의 아들, 삼시 아닷 1세의 경쟁자
  • 이발--2(Ibal-pi-El II) - 마리의 짐리 림의 경쟁자
  • 실리-(Silli-Sin) - 엘람에 의해 왕으로 세워짐

 

북쪽으로는 어린 삼시-아닷(Sahmshi-Adad)이 다스리는 에칼라툼과 정치적으로 약하지만 상업적으로 매우 중요한 앗수르와 같은 국가들이 있었다. 나람-(Naram-Sin)은 그 둘을 정복했고 삼시-아닷을 유배보냈다. 7년 후 나람-신이 죽자 마자 삼시-아닷은 에칼라툼을 다시 통제하게 되었고 다두샤는 그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것을 바라보아야만 했다. 그러다가 1781년 그 두 왕은 연합하여 두 자브강 사이의 지역을 정복하였다. 그 원정은 다두샤의 승리 비석에 새겨졌다. 그 비석은 다두샤가 그 땅들을 삼시-아닷에게 주었다고 기록한다. 그 후 삼시-아닷은 그와 연합한 왕을 배반하여 에스눈나 도시들의 일부(샤두품, 네레브툼)를 장악하였다. 삼시-아닷이 죽자 상황이 역전되어 에스눈나가 앗수르에 가까운 일부 도시들을 함락하였다.

 

에스눈나는 유프라테스 협곡에 들어가고 마리에까지 이른다. 삼시-아닷의 아들인 야스마-앗두(Yashmah-Addu)가 그곳을 다스렸을 때 에스눈나와의 관계가 좋지 않았다. 마리에 짐리-(Zimri-Lim)이라는 새 왕이 세워지자 에스눈나의 이발-피엘 2세가 동맹을 결성하려 했지만 짐리-림이 거절했다.

 

마리와 에스눈나의 전쟁으로 마리는 에스눈나의 평화조약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3년 후 엘람의 지도자는 에스눈나에 의해 메소포타미아로 가는 직선로를 잃게 되자 바빌론, 마리, 라르사와 동맹을 맺었다. 그리고 1776년에 에스눈나를 약탈했다. 이에 엘람은 꼭두각시 왕을 지명하였고, 곧 실리-(Silli-sin)이라 이름하는 에스눈나 토착 왕을 새롭게 세웠다. 그는 바빌론의 함무라비가 엘람 국가를 약탈하는 데 일조했다. 그러나 1762년에 함무라비는 에스눈나를 침탈함으로써 자신의 전 동맹 왕을 배반했다. 함무라비는 그 지역을 영토에 통합하지 않았지만 에스눈나에 강한 왕이 생기지 못하게 하였다.

 

엘람의 성장과 멸망

 

엘람은 수사를 둘러싼 저지대와 안샨(오늘날의 탈-이 말얀) 주변의 자그로스 고원지대를 포함한다. 엘람이 우르에서 독립한 직후 엘람은 전 주인 우르를 배반하고 무력으로 수도를 함락하고 왕을 포로로 삼음으로써 우르의 멸망에 일조했다. 이신의 군대는 그후 엘람군의 우르 주둔을 종식시켰고 후에 엘람이 바빌로니아에서 큰 영향력을 미치는 것을 막았다. 라르사의 몇몇 왕들은 엘람 도시를 정복했고 엘람은 바빌로니아의 지역 전쟁에서 우룩, 이신 등의 국가들과 동맹을 맺었다. 라르사의 마지막 두 군주, 즉 와랏-신과 림-신이 엘람 계통이라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들은 심티-실학(Simti-Shilhak)의 아들은 쿠두르-마북의 아들들이었다. 심티-실학이나 쿠두르 마북은 모두 티그리스 동쪽 지역의 부족 지도자들로 19세기에 바빌로니아이 일부 도시들을 장악하였다.

 

[수칼마 왕조(Sukkalmah Dynasty)]

  • 에파르티 2(Eparti II) : 1973년경
  • 실하하(Shilhaha)
  • -나슈르 1(Kuk-Nashur I)
  • 아타-후슈(Atta-hushu) :
  • 테텝-마다(Tetep-Mada) : 1890년경 이후
  • 팔라-이쉬샨(Palar-Ishshan)
  • -산닛(Kuk-Sanit)
  • -키르와시(Kuk-Kirwash)
  • -사니트(Tem-Sanit)
  • -나훈테(Kuk-Nahhunte )
  • -나슈르 2(Kuk-Nashur II)
  • 시룩두(Shirukduh) : 1790년경, 아시리아의 삼시아닷 1세의 경쟁자
  • 시무트-와르타쉬 1(Shimut-Wartash I)
  • 시웨-팔라-후팍(Siwe-Palar-Hupak) : 1765년경, 함무라비 시대
  • 쿠두줄루쉬 1(Kuduzulush I)
  • 쿠티르-나훈테 1(Kutir-Nahhunte I)
  • 아타-메라-할키(Atta-Merra-Halki)
  • 타타 1(Tata II)
  • 릴라-이르타쉬(Lila-Irtash)
  • 템티-아군(Temti-Agun)
  • 쿠티르-실하하(Kutir-Shilhaha)
  • -나슈르 3(Kuk-Nashur III)
  • 템티-랍타쉬(Temti-Raptash)
  • 시무트-와타쉬 2(Shimut-Wartash II)
  • 셔투(Shirtuh)
  • 쿠두줄루쉬 2(Kuduzulush II)
  • -울리(Tan-Uli)
  • 템티-할키(Temti-Halki)
  • -나슈르 4(Kuk-Nashur IV)
  • 쿠틱-마랏(Kutik-Matlat)


엘람의 성공에 기여한 것은 엘람이 카룸-카네스가 없어진 후 서부로 가는 이란이 주석을 통제했다는 사실이다. 청동 생산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이 요소는 엘람에서 마리를 경유하여 지중해에 이르렀다. 엘람은 페르시아 만에 있는 딜문(Dilmun)과도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였다. 이것으로 볼 때, 엘람은 다른 외국 물품과 무역로도 독점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바빌론의 함무라비가 마리와 알레포와 반-엘람 동맹을 결성하였다. 함무라비 즉위 9년째인 1764년 엘람은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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