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0월 12일 화요일

우르 제3왕조 이후 : 마리와 서부 지역(마리, 얌캇)

마리와 서부 지역

 

남부 메소포타미아와 시리아 사이에 놓은 지정학적 위치와 오랫동안 그 두 지역의 중재 역할을 한 덕분에 마리의 문서 저장고는 메소포타미아 서부의 정치 역사적 상황에 대한 풍부한 정보를 담고 있다. 근동의 서부 지역은 정치적으로 통합된 소국가들의 단일 체제를 형성했다. 그 소왕국들의 왕실은 종종 혈연과 결혼으로 연결되었다.

 

마리와 얌캇의 영역

마리의 성장과 시련

 

마리는 외교적으로 우르 제3왕국과 밀접한 관계에 있었지만 우르 제3왕조로부터 줄곧 독립해 있었다. 19세기 중엽에 새 왕조가 들어서면서 마리는 역사상 최고 번영의 시대를 시작한다. 새 왕조는 시리아 북서부에 근거를 둔 아모리의 시말 부족에 속했다. 야둔-(Yahdun-Lim)은 서부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바빌로니아어와 문체를 관료들의 표준으로 도입했다. 그가 건설한 왕궁은 크기와 화려함의 소문이 근동 전역에 퍼졌다. 그는 마리를 최북단 발릭 합류 지점까지 뻗은 중부 유프라테스강 지역의 패권 국가로 세우고 야만인들의 서쪽 끝 레바논 산맥까지 몰아냈다. 하부르 지역으로 뻗어나간 그는 그곳에서 새롭게 떠오르는 북메소포타미아 왕국과 부딪치게 된다. 야둔-림은 왕실 음모에 의해 암살당했고 그의 아들 수무-야만(Sumu-Yaman)은 오래 살지 못했다. 이삼 년 후인 1795년에 마리는 삼시-아닷에게 정복당했고 편입되었다. 삼시-아닷은 차남인 야스마-아닷를 마리의 왕으로 세우고 서부의 국가들과 아모리 부족들을 감시하였다.

 

[림 왕조]

  • 야기드-(Yaggid-Lim, 1830~1820)
  • 야둔-(Yahdun-Lim, 1820~1798)
  • 수무-야만(Sumu-Yamam, 1798~1796)
  • 1796~1776 : 삼시-아닷 1세에 의해 정복당함
  • 야스마-아닷(Yasmah-Adad, 1796~1776) : 삼시-아닷 1세의 아들
  • 이스하-(Ishar-Lim, 1776)
  • 짐리-(Zimri-Lim, 1776~1761)

 

짐리-림의 마리 회복과 함무라비의 정복

 

1776년경 삼시-아닷이 죽었을 때 야스마-아닷의 통치가 끝난다. 마리의 야망가 짐리-(아마도 야둔-림의 손자나 조카)가 바벨론과 알레포와 강한 동맹을 회복하였고 쉬프투(Shiptu) 공주와 결혼함으로써 그것을 튼튼히 다졌다. 마리가 번성했고 짐리-림의 궁전은 제2천년기 초기의 가장 큰 건축물 중의 하나였다. 짐리-림은 함무라비의 충직한 동맹이었지만 즉위 30(1761)에 함무라비는 짐리-림을 무찌르고 마리를 정복했다. 2년 후 함무라비는 왕궁, 도시-성벽들을 파괴하고 마리까지 이르는 유프라테스 계곡을 자신의 나라에 편입시켰다.

 

얌캇의 성장

 

알레포 시는 얌캇(Yamkhad, Yamhad)의 수도였다. 알레포는 에블라가 쇠퇴한 제2천년기 초부터 지역의 주목을 끌기 시작하였다. 마리 편지들에 따르면 서부 지방에서 얌캇의 가장 끈질긴 적은 남쪽에 위치한 중앙 시리아의 도시인 카르나였다. 카르나는 북메소포타미아 왕국의 삼시-아닷에게서 지원을 받았던 나라다. 얌캇의 두 군주인 수무에푸와 야림-림이 삼시-아닷과 전쟁에서 맞붙은 후부터 그들과 그들의 후손들은 남쪽의 화약고 같은 정치 세계로 빠져들게 된다. 삼시-아닷의 죽음은 얌캇의 야림-림이 유프라테스 계곡을 따라 마리 왕국까지 남하할 공간을 만들었다. 마리의 짐리-림은 야림-림의 사위였기 때문에 둘의 접경은 평화적인 것이었다.

 

함무라비의 마리 정복 이후 얌캇

 

바빌론의 함무라비가 이웃 국가들을 점령해갈 때 얌캇도 마리와 함께 그를 도왔다. 그러나 바빌론은 동맹국들을 배반하고 마리를 점령하였다. 얌캇은 바빌로니아 군대가 오기에는 너무 멀리 있었기 때문에 직접적인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다. 얌캇은 그 후에도 북서 시리아의 패권 국가로 남았고 카르케미스, 우르슈, 아스슈, 우가릿, 에마르, 에블라, 투닙과 같은 도시들과 동맹을 맺었다. 얌캇은 제2천년기 후반에 아나톨리아로부터 시리아로 군사적 팽창을 하던 히타이트의 주요 장애물이었다. 히타이트의 왕 하투실리 1세는 아랄락, 카르케미스, 하스슈와 같은 얌캇의 위성 국가들을 공격하고 파괴했다. 하투실리 1세의 아들 무르실리 1세는 1595년 바빌론 원정길에 그 도시를 함락하고 파괴하였다. 이로써 400년간 근동의 특징이었던 정치 상황(경쟁적인 도시 국가들의 체계)이 막을 내린다.

 

  • 수무-에푸(Sumu-Epuh, 1810~1780)
  • 야림-1(Yarim-Lim I, 1780~1764)
  • 함무라비 1(Hammurabi I, 1764~1750)
  • 아바-1(Abba-El I, 1750~1720)
  • 야림-2(Yarim-Lim II, 1720~1700)
  • 니크미-에푸흐(Niqmi-Epuh, 1700~1675)
  • 이르캅툼(Irkabtum, 1675~17세기 중반)
  • 함무라비 2(Hammurabi II, 17세기 중반)
  • 야림-3(Yarim-Lim III, 17세기 중반~1625)
  • 함무라비 3(Hammurabi III, 1625~1600)
  • 사라-(Sarra-El, 16세기 초반)
  • 아바 엘 2(Abba-El II, 16세기 중반)
  • 일림-일리마 1(Ilim-Ilimma I, 1524~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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