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0월 19일 화요일

바빌로니아 : 카시트 왕조 (기원전 16~12세기)

바빌로니아 : 카시트 왕조

 

바빌론이 무르실리 1세에게 약탈당했을 때 생긴 힘의 공백은 곧바로 메워지지 않았다. 이 상황을 틈타 카시트인이라는 이름을 가진 일군의 사람들이 바빌론의 왕위를 차지하였다. 모두 36명의 왕들이 5769개월동안 바빌론을 통치하였다. 카시트 왕조의 마지막은 1155년으로 추정할 수 있다.

 

[카시트 군주의 목록]

  • Gandash (c. 1729~1704 BC)
  • Agum I (c. 1703~1632 BC) : Son of Gandash
  • Kashtiliash I (c. 1681~1660 BC) : Son of Agum I
  • [?] (C, 1659~? BC) : Unclear succession
  • Abi-Rattash : Son of Kashtiliash I
  • Kashtiliash II : Unclear succession
  • Urzigurumash : Descendant of Abi-Rattash
  • Agum II : Son of Urzigurumash
  • Harba-Shipak : Unclear succession
  • Shipta'ulzi : Unclear succession
  • [?] : Unclear succession
  • Burnaburiash I (c. 1530~1500 BC) : Unclear succession, earliest Kassite ruler confidently attested as ruling Babylon itself
  • Ulamburiash (c. 1475 BC) : Son of Burnaburiash I (?)
  • Kashtiliash III : Son of Burnaburiash I (?)
  • Agum III : Son of Kashtiliash III
  • Kadashman-Sah[m] : Unclear succession, co-ruler with Agum III?
  • Karaindash (c. 1415 BC) : Unclear succession
  • Kadashman-Harbe I (c. 1400 BC) : Son of Karaindash (?)
  • Kurigalzu I : Son of Kadashman-harbe I
  • Kadashman-Enlil I (c. 1374~1360 BC) : Son of Kurigalzu I (?)
  • Burnaburiash II (c. 1359~1333 BC) : Son of Kadashman-Enlil I (?)
  • Kara-hardash (c. 1333~1333 BC) : Son of Burnaburiash II (?)
  • Nazi-Bugash (c. 1333~1333 BC) : Usurper, unrelated to other kings
  • Kurigalzu II (c. 1332~1308 BC) : Son of Burnaburiash II
  • Nazi-Maruttash (c. 1307~1282 BC) : Son of Kurigalzu II
  • Kadashman-Turgu (c. 1281~1264 BC) : Son of Nazi-Maruttash
  • Kadashman-Enlil II (c. 1263~1255 BC) : Son of Kadashman-Turgu
  • Kudur-Enlil (c. 1254~1246 BC) : Son of Kadashman-Enlil II
  • Shagarakti-Shuriash (c. 1245~1233 BC) : Son of Kudur-Enlil
  • Kashtiliash IV (c. 1232~1225) : Son of Shagarakti-Shuriash
  • Enlil-nadin-shumi (c. 1224~1224 BC) : Unclear succession
  • Kadashman-Harbe II (c. 1223~1223 BC) : Unclear succession
  • Adad-shuma-iddina (c. 1222~1217 BC) : Unclear succession
  • Adad-shuma-usur (c. 1216~1187 BC) : Son of Kashtiliash IV (?)
  • Meli-Shipak (c. 1186~1172 BC) : Son of Adad-shuma-usur
  • Marduk-apla-iddina I (c. 1171~1159 BC) : Son of Meli-Shipak
  • Zababa-shuma-iddin (c. 1158~1158 BC) : Unclear succession
  • Enlil-nadin-ahi (c. 1157~1155 BC) : Unclear succession

 

바빌로니아 왕명록에 따르면 카시트 왕조의 바빌론 지배가 외부 세력에 의해 종신되었을 때 왕권은 이신에서 발생한 왕조에게 넘어간다. 카시트인들은 바빌론에 최근에 이주한 사람들이다. 13세기까지 모든 왕은 카시트 이름을 가졌고 후에 일부만이 아카드어 이름을 가졌다. 성소를 가진 유일한 카시트 신들은 왕의 수호신인 슈카무나(Shuqamuna)와 슈말리아(Shumaliya)였다. 이전의 아모리인들과 마찬가지로 카시트인들은 정치적 힘을 가졌으나 그들의 문화적 영향력은 미미하였다.

 

기원전 13세기 카시트 왕조
기원전 13세기 카시트 왕조

그러나 그들(카시트인들)은 바빌로니아의 사회 구조에 근본적인 영향을 미쳤다. 정착하기 전에 반 유목생활을 했던 그들은 가족과 부족 단위로 조직되었다. 정치적 패권을 잃은 후에도 카시트인들은 바빌로니아와 주변 지역에 머물면서 전통적인 카시트 이름을 가진 집들에서 그들의 조직을 유지하였다. 이들은 왕조가 사라진 후에도 몇몇 지역의 행정 단위로 남아있었다.

 

카시트 왕들은 다른 근동 나라의 동료들에게 쿠르두니아스 땅의 왕들로 통한다. 쿠르두니아스는 바빌로니아를 지칭하는 카시트 말인 것 같다. 몇몇 아시리아 사료에서 바빌로니아 왕은 카시트인들의 왕으로 불린다. 카시트인들은 정치적 힘을 가졌으나 타 민족으로 인식될 만큼 나머지 백성들로부터 문화적으로 구분되었다. 그들은 한 도시 출신이 아니기 때문에 영토 국가라는 이념의 발전이 용이하였다. 카시트 시대에 바빌론의 땅, 즉 바빌로니아라는 개념이 확고하게 세워졌다.

 

[울람부리아스, 카스틸리라슈]

 

1475년 울람부리아스(Ulamburiash)라고 불리는 한 카시트인이 해상국의 군주가 되면서 18세기에 바빌론의 패권이 사라진 후 남부 바빌로니아를 다스린 왕조를 대체한다. 후에 그는 그의 형제 카스틸라슈(Kashtiliashu)를 이어 바빌론의 왕이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14세기까지 카시트인들은 바빌로니아 전역과 그 이외의 지역도 장악한다. 티그리스강 동쪽의 디얄라 지역도 그들의 손에 넘어갔다. 어떤 카시트 총독은 페르시아 만의 딜문 섬(오늘날의 바레인)에 살았다. 이집트 왕의 아마르나 편지는 바빌론과 주고받은 14세기의 편지를 포함한다. 두 명의 이어 다스린 왕, 즉 카다스만-엔릴 1(재위 1374?~60)와 부르나부리아스 2(재위 1359~33)가 편지의 수취인과 발신인이다. 그 편지는 정략결혼과 결혼 선물과 지참금의 교환에 관한 것이다. 메소포타미아에서 힘의 관계에 변화가 왔음을 증거해 준다. 아시리아의 앗수르-우발릿은 이집트와 평등 조약을 맺는데 그것은 부르나부리아스로 하여금 그가 바빌로니아의 속국이니 그렇게 독립적으로 행동할 수 없다고 불평하도록 만들었다.

 

[아시리아의 앗수르-우발릿의 침공]

 

아시리아에 대한 바빌론의 우월 의식은 당시에 분명히 비현실적인 것이었다. 앗수르-우발릿(재위 1363~28)은 아시리아를 강대국으로 발전시켜 부르나-부리아스가 그의 딸을 본처로 삼을 정도였다. 그 바빌론 왕이 죽었을 때 그의 아들 카라-하드라스가 왕위를 이어받았으나 반란에 의해 암살당했다. 앗수르-우발릿은 손자의 암살을 계기로 바빌로니아를 침공해 쿠리갈주 2(재위 1332~08)를 왕위에 앉혔다. 그러나 바빌로니아가 아시리아의 패권 아래 있지는 않았다. 바빌로니아는 당시의 강대국 중 하나였다. 다른 나라들이 통치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바빌로니아의 왕의 지지를 구하려 하였다. 예를 들어 하티의 왕 하투실리 3세는 카다스만-엔릴 2(재위 1263~55)가 왕위에 올랐을 때 그와 접촉하여 좋은 관계가 지속될 수 있도록 청원하였다.

 

엔릴 성전은 당시 근동에서 가장 중요한 기관 중 하나였다. 엔릴 성전에 대한 통치로 엔릴의 총독은 왕 다음의 권력자였다. 도시화의 수준은 제2천년기 초반보다 낮았던 반면 고대 도시의 재건설이 유행하였다. 카시트 왕들은 바빌로니아 전역에서 건설 사업을 장려하였다. 이 사업의 일환으로 쿠리갈주의 요새를 뜻하는 두르-쿠리갈주라는 신도시가 수도로 건설되었다.

 

[카시트 왕조의 몰락]

 

카시트 왕조의 몰락은 아시리아와 엘람의 침공의 결과였다. 투쿨티-니누르타 1(재위 1243~07)13세기 초부터 시작된 아시리아의 팽창 정책을 계속하여 바빌로니아의 침공을 카스틸리아슈 4(재위 1232~25)를 폐위시키고 그를 포박하여 앗수르로 끌고 왔다. 바빌론의 왕위를 잠시 차지한 투쿨티-니누르타는 그 후 꼭두각시 왕들을 세워 그곳에서 약 10년 동안 아시리아의 이익을 대변하도록 하였다. 엘람의 압력과 성공적인 바빌로니아인들의 반란으로 바빌론이 카시트인들에게 돌아왔으나 엘람의 침공으로 결국 1155년에 카시트 왕조가 몰락하였다. 엘람 침략에 저항한 것은 카시트 왕조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제2이신 왕조로 지칭되는 사람들이었다. 이신 왕조의 가장 힘 있고 유명한 왕은 네부카드네자르 1(성경의 느부갓네살, 재위 1125~04)였다. 그의 수사 정복은 수사의 몰락으로 이어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네부카드네자르의 전성기도 잠시뿐 그가 죽은 후 바빌로니아는 역사에서 잊혀지기 시작한다.

 

[카시트 왕조의 문화]

 

왕이 상당한 면적의 땅을 집안 사람이나, 관직자, 성직자, 군인에게 나누어 주는 카시트 왕조의 관습은 제2이신 시대에서도 지속되었다. 본래 바빌로니아 출신이 아니었던 카시트 왕들은 적어도 이름만은 자신의 모국어로 지었다. 그러나 그들은 바빌론 문화의 발달을 방해하지 않았다.

 

문학 작품은 군사, 종교적 행사를 위해 작성되는 경우가 있었다. 이 시대에 제사에서 마르둑의 중요성은 바빌로니아 전역에서 증가하였다. 마르둑은 우주에 질서를 창조하고 바빌론 도시를 신들의 지상 거처로 건설하였다. 그 신화는 도시가 우주적 중요성을 지닌 장소라는 이념을 반영한다. 바빌로니아 문학에 대한 지식은 엘리트들이 자신들을 일반 대중과 구별짓는 한 방법이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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