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AE, 오만, 바레인의 역사] 6강 : 새로운 국면, 석유의 발견부터 국가의 탄생까지
이란에서 나온 석유는 영국이 독점하게 되었다. 이라크에서 나오는 석유도 파이젤이라는 왕에게 이라크를 떼어주어서 다루기 쉬웠다. 프랑스에서 국립 정유회사를 만들었고, 이것이 앵글로페르시안 회사와 Gulf라는 회사가 합작 투자를 하게 된다.
Gult라는 회사는 독자적 거래를 시도하였고, 바레인과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석유를 시추하려고 하였다. 나머지 두 회사가 압박을 하자 록펠러가 세운 스탠다드 회사에 팔아버렸고, 록펠러는 Bapco라는 회사를 창설한다. 이후 바레인에서 석유를 발견한다.
캘리포니아 스탠다드 오일 컴퍼니는 CASCO(California Arabian Standard Oil Company)를 설립한다. 이후 사우디 아라비아에 어마어마한 석유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사우디 아람코(Asudi Aramco)라는 회사로 바뀌게 된다. 이 회사는 세계 최대 규모의 석유기업 가운데 하나로 석유, 천연가스탐사, 정유사업을 하고 석유화학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이들은 기름을 소매하기 택사스 컴퍼니와 합작을 하였고 Caltex라는 주유소 체인을 만들었다.
이후 앵글로-페르시안 오일컴퍼니(Anglo-Persian Oil Company)는 Gulf라는 회사가 합작해서 쿠웨이트 오일 컴퍼니(Duwait Oil Company)를 만든다.
Gulf나 앵글로 페르시안 오일컴퍼니의 주주들은 영국과 미국의 최고 정치 엘리트 집안이다. 이들은 각 지역의 왕권을 서구가 보호할 임무가 생겼다. 이렇게 얽히고 섥킨 관계를 사회학자들은 페트로크라시라고 한다.
1930~50년대 사이에 이 지역은 비약적으로 발전하였다. 미국인 기술자들이 이곳에서 일을 하기 위해 건너가면서 미국식 도시가 건설되고 기획된다(알 암마디 오일타운, Al-Ahmadi Oil Town). 아랍의 부족들은 이러한 미국식 스타일을 보면서 부러워하게 된다.
카타르 왕실에서 펀딩한 영화로 ‘흑금’(Black Gold)이 있다. 우리가 아랍의 전통 생활방식을 지키고 알라를 열심히 섬겼더니 알라께서 선물을 주셨다. 그것은 백성들이 아닌 우리(지배자)에게 내리신 선물이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장 자크 아노 감독의 영화인데, 아랍 왕족의 사고방식이 들어 있는 영화로 빼앗기지 않고 거래하도록 열심히 싸웠기 때문에 왕실 것이라고 주장한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석유의 중요성을 서양 열강이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석유를 이용한 전함과 비행기가 활용되고, 전쟁이 기계화 되면서 석유가 중요하게 느껴진 것이다.
2차 대전 이후 냉전체제 돌입하면서 러시아 세력의 남하를 막기 위해 페르시아만을 지키려고 노력한다. 1940~50년대 민족주의로 각자 식민지에서 해방되어 자기만의 나라를 만들려는 시대가 열렸을 때, 아랍 역시 민족주의를 기반으로 민주국가를 세우려는 열망이 있었다. 그런데 미국과 영국의 정치 엘리트 들은 민주국가보다 왕조가 더 다루기 쉽다고 생각하였으며, 이 지역에 민주주의가 들어서기를 별로 원하지 않게 된다.
페르시아에 카자르 왕조가 무너졌을 때 영국 정부는 친영국의 기마대 출신의 이란 사람을 앉혔고 이것이 팔라비 왕조이다. 팔라비 왕조는 1925년 12월 15일부터 1979년 2월 11일까지 이란에 군림했던 왕조로 현재까지 이란에 존재했던 최후의 왕조이다. 본래 이름은 페르시아 제국이었으나 1935년에 이란 제국으로 나라 이름을 바꾸었다. 팔라비 왕조의 국왕에 대해서 서양에서는 영웅이라고 띄워주었으나 이란 내부에서는 석유를 헐값에 팔아먹는 나쁜놈으로 인식되었다. 팔라비 왕조는 서구에서는 이슬람을 싫어하기 때문에 이슬람 이전의 페르시아 제국을 추구하며 그 행사비에 엄청난 돈(1억 달러)을 쏟아부었다. 그리고 조로아스터교라는 고대 종교를 권장하기도 하였다. 결국 호메이니 혁명으로 팔라비 왕조가 무너지고 호메이니는 앵글로 이란이라는 회사를 없애버렸으며, 석유를 국유화하였다. 이것이 유럽의 엘리트들에게는 상당한 충격이었다.
이집트의 가말 압둘 나세가 아랍 민족주의의 아이콘으로 등장하면서 아랍인들의 국가를 세우자고 주장하고 나섰다. 팬아랍 나시르파가 나서서 유나이티드 아랍 리퍼블릭을 만들자고 주장하였다. 이때 나시르보다 극단적인 민족주의파(Ba’ath Party)가 등장하였는데, 그들은 혁명으로 왕조를 뒤집어 엎자고 주장하였다. 이것이 이라크에서는 성공한다. 파이젤이 영국의 하수인이라는 인식이 강했기 때문에 파이셀 왕이 길거리에서 처참하게 처형당하였고 혼란기를 거쳐서 사담 후세인이 등장하였다.
유럽의 실수는 2차 대전 이후에 유태인에게 나라를 만들어주자는 생각을 한 것이다. 현대의 정체성이 아닌 구약시대의 정체성을 끌어들여서 이스라엘을 만들어 준 것이다. 유태인들은 유럽에 있으면 언제 나치의 학살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이스라엘로 모여들었는데, 아랍이 보기에는 그냥 유럽사람들이었다. 아랍민족국가들이 연합해서 이스라엘과 전쟁을 벌였는데 미국이 이스라엘에 엄청난 신무기를 제공해서 이스라엘이 승리하게 된다. 아랍인들이 보기에는 서양이 자신들을 100년동안 괴롭힌 것이고, 이것이 중세 십자군 전쟁까지 소환되면서 뿌리깊은 불만을 갖게 된다.
영국과 미국은 이라크와 페르시아(이란)처럼 석유를 국유화시키지 못하게 남은 국가들을 놀고 먹는 국가로 만들어 주기로 작정한다. 아랍의 왕족은 지역의 부족 종교세력에게 돈을 주고 불만을 잠재우며 석유시설을 만들고 안전보장을 한다. 이때 무역을 하는 거상 가문(빈라덴)이 왕족에게 불만을 품게 된다. 이들이 민족주의 세력과 규합을 하기 시작하였는데, 쿠웨이트와 가타르에는 마즐리스(Majlis)라는 국회와 비슷한 것을 만들기도 하였고 임헌군주제를 시도하였다. 아랍의 왕족들은 거상 가문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 무기와 사치권에 대한 독점권을 주게 된다. 석유시설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도시출신 사람들의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제공하는 독점권도 거상 가문에게 준다.
왕족, 호족, 거상 가문이 하나로 기득권으로 뭉치면서 이 지역에서는 민주 혁명이 일어날 가능성은 거의 없어진다. 영국은 그들에게 돈을 주기 위해서 인도로 가는 항로는 바레인, 카타르, 두바이 등의 공항을 거쳐간다. 영국의 공항이 있으면 체제 전복을 노리는 세력을 억압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공항을 짓는 대가로 엄청난 돈을 주기도 한다.
영국은 트루셜 킹덤을 UAE로 만들었는데 추장이 아닌 국왕으로 상승시켜 주었다. 당시 유목민들에게는 국경이라는 개념이 없었지만 미국과 영국 사업가들에게 의미가 있다. 영국은 부족장이 어느 왕에게 공물을 바치는 지를 고려해서 국경선을 정하려고 하였는데, 유목민들은 이동하면서 여러 사람에게 공물을 바치기 때문에 국경선이 애매모해해진다. (오만과 아랍에미리트 국경선은 점선이다)
오만의 빈 사이드라는 집안은 우스캇이라고 해안을 장악하고 있지만 내륙은 이바드 종파의 이맘들이 장악하고 있다. 오만은 수니파이기 때문에 지도자를 술탄이라고 부르고 있고, 이바드 종파와 와하브 종파는 서로 철천지 원수지간이다.
그런데 아랍의 종파간의 다툼은 종교 때문이 아닌 석유라는 이권 때문이다. 와하브의 종파를 믿는 사우디 아라비아가 오만의 황실을 분열시키기 위해서 이바드 종파를 돈을 주면서 지원하기도 한다.
미국과 영국은 이 지역에 초보수정권을 구축하여 민족주의나 공산주의 세력이 들어서지 못하게 만들었다. 사우디, UAE, 오만, 카타르, 쿠웨이트 등은 철저한 보수정권이다.
사우디 아라비아(절대왕권), UAE(각 지역은 절대왕권/연방), 오만(절대왕권), 카타르(입헌군주제), 쿠웨이트(입헌군주제)
☞ [조승연의 비즈니스를 위한 세계사 - UAE, 오만, 바레인 편] 강의를 나름대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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