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9월 14일 화요일

[UAE, 오만, 바레인의 역사] 5강 : 영국의 제국주의 게임과 페르시아만

[UAE, 오만, 바레인의 역사] 5: 영국의 제국주의 게임과 페르시아만

 

바닷가에 살게 된 수많은 부족장들은 국가로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영국에게 인정을 받아야 했다. 그런데 영국이 그들을 나라로 인정해줄 이유가 생겼다. 영국이 식민지 중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곳이 인도였는데 인도의 물품이 영국까지 건너오는 길을 만들어야 할 필요성이 생겼다. 이때 페르시아만을 통해서 가는 길이 가장 빠른 길인데 러시아의 남하정책으로 인도가 위험해졌다. 영국은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한 외교 정책을 펼쳤고, 이것을 위대한 게임이라고 불렀다.

 

페르시아만을 지키기 위해서 영국은 당시 페르시아만의 유력한 7개의 부족들에게 접근하였다. (아부다비, 아즈만, 두바이, 라스 알 카이마, 샤르자, 움 알 쿠와인, 후자이라) 이들은 자기네들까리 싸우고 있었다. 유목민들이기 때문에 정착한 도시를 약탈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들이 서로 싸우는 과정에서 페르시아만이 해적 해안이 되어버렸다. 이들의 싸움을 말리기 위해서 영국이 중재에 나섰고, 복수를 해야 하는 강박관념으로 치고받던 그들은 싸움을 멈출 대의명분이 생긴 것이다. 영국은 그들에게 ‘Permanent Ocean Truce’라는 조약을 만들어 주었다. 이것이 UAE의 전신이다.

 

이후 독일이 강해지자 영국은 러시아 편을 들기 시작하였다. 이때 오스만 투르크 제국이 독일편이 되면서 그 당시에 홍해를 지나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는 길을 오스만 투르크가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영국으로서는 오스만 투르크를 분열시킬 생각을 하였다. 이때 영국은 아랍인들을 규합시켜서 오스만 투르크에 대항하여 반란을 조장시키려고 하였고, 이때 토마스 에드워드 로렌스와 거트루드 벨이라는 사람을 활용해서 아랍 민족을 자극시켰다.

 

토마스 에드워드 로렌스(Thomas Edward Lawrence) : 영국의 군인이자 고고학자로 1차 세계대전 당시 터키로부터 독립하려는 아랍 독립전쟁에 참여해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때의 활약으로 아라비아의 로렌스라고 불리웠다.

 


거트루드 벨(Gertrude Bell) : 영국의 작가, 여행가, 탐험가, 고고학자, 정보원이다. 시리아, 메소포타미아, 소아시아, 아라비아 등지를 여행했다. 오늘날 요르단과 이라크의 건국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로렌스는 아랍의 부족장인 파이살 1세를 꼬셨다. 그는 1920년 시리아 아랍 왕국의 왕이었고, 1921823일부터 1933년까지 이라크 왕국의 왕이었다. 아랍에는 수많은 부족이 있고 그들의 부족장을 세흐 또는 셰이크(Sheikh)라고 했다. 세흐 또는 셰이크는 부족의 원로, 수장, 숭배하는 현인, 이슬람 지식인을 의미하는 아랍어 단어이다. 셰이크는 아랍 국가들의 왕 이름 앞에 주로 쓰인다. 여기서 한 단계 올라가서 왕으로 인정받으면 아미르가 된다. 아미르 혹은 에미르(Emir)는 아라비아어로 사령관’, ‘총독이란 의미를 갖고 있으며, 이슬람 세계에서 왕족과 귀족의 칭호로 사용되는 말이다.

 

파이살 1세는 세흐 중에서도 샤리프(Sharif)라고 불리웠다. 이것은 고귀한 혈근(血筋)의 사람을 의미하는 아라비아어이다. 메카와 메디나의 세흐가 샤리프였다. 메카와 메디나를 지키는 수호의 역할을 하는 부족의 부족장이라는 것이고, 샤리프가 움직이면 다른 부족 역시 움직여야 하는 부담을 주게 된다. 파이살 1세는 다마스커스까지 진격해서 오늘날 시리아 레바논까지 획득한다. 그는 영국이 오스만투르크가 가지고 있던 영토를 넘겨주겠다고 약속을 했기 때문에 열심히 싸운 것이다. 그런데 영국은 이 약속을 어기고 1916Sykes-Picot Agreement를 통해서 영국과 프랑스가 지역을 둘로 나눠서 시리아 땅은 프랑스가 이라크 땅은 영국이 갖는다. 파이살이 차지한 땅은 그 사이에 황막한 땅이었다. 이로부터 아랍의 반 유럽 정서가 커지게 된다.

 

이후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던 페르시아의 사막이 돈덩어리가 되기 시작한다. 미국에서 석유 사업이 시작되었고 존 데이비슨 록펠러(John Davison Rockefeller) 같은 미국의 석유사업가가 재벌로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오하이오 스탠더드 석유회사를 설립하여 미국 내 정유소의 95%를 지배하였다.

 

영국은 미국의 텍사스와 비슷한 지형을 찾다가 페르시아에 그런 땅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윌리엄 녹스 다시(Willam Knox D'Arcy)라는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의 영국인 광산기사를 통해서 모자파 왕에게 현금을 주고 석유 시추권을 영국이 획득하게 된다. 독일에서 디젤 전투함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석유의 가치가 상당히 중요하게 인식되었고, 영국 정부의 압박으로 스코틀랜드의 재벌도 합류하게 된다. 스코틀랜드 재벌이 거의 파산 지경에 이르러 포기한다는 편지를 영국 정부에게 보냈는데, 그 편지가 도착하기 전에 페르시아만에 기름이 터졌다. 이후 윌리엄 녹스가 스코틀랜드 재벌과 함께 석유회사를 차렸고, 이것은 이후 BP(브리티시 페트롤리)라는 회사로 오늘날까지 존재하고 있다(수익 약 300, 직원 74,500).

 

* 각각 왕을 지칭하는 타이틀

SHAH : 페르시아식

SULTAN : 오스만투르크식

SHEIKH / EMIR : 아랍식

 

[조승연의 비즈니스를 위한 세계사 - UAE, 오만, 바레인 편] 강의를 나름대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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