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9월 14일 화요일

기독교의 동양 전래 (2) 중세기 서방 교회의 동양 선교

기독교의 동양 전래 (2) 중세기 서방 교회의 동양 선교

 

[한국기독교의 역사]

 

1) 몽골(원나라) 시대의 야리가온

 

당나라 때 박해를 피해 변방에 은둔해 있던 경교 신자들은 몽골이 세운 원나라에 때에 다시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였다. 몽골이 중국을 장악하게 되자 경교 신자들과 네스토리우스파 신도들이 중국에 들어와서 야리가온’(也里可溫)이라 불리며 원나라 황실을 보호받으며 포교활동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당나라 시대의 경교에 비해서 원나라 시대의 야리가온은 토착화를 위한 노력이 부족하였고, 지배계층이 믿는 외래종교로 인식이 되면서 일반 백성들에게는 외면당하였다.

 

2) 경교의 한국 전래

 

당나라 시대에 경교가 통일신라에 전래되었거나, 원나라 시대 야리가온이 고려에 전래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이것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1956년 불국사에서 십자가 형태의 석재물이 발견되었고, 전남 대흥사에 등제 십자가, 마리아상과 비슷한 관음상 등이 이 가능성을 뒷받침하고 있다고 본다. 초기 개신교 선교사인 마포삼열 선교사도 비슷한 주장을 하고 있다.

 

3) 가톨릭교회의 동양 선교

 

1054년 동방교회와 서방교회가 공식적으로 분열되었는데, 교회사에서는 필리오케 논쟁으로 잘 알려져 있다. 성령이 아들로부터나온다는 필리오케를 주장하는 서방교회와 그것을 반대하는 동방교회가 대립되었는데, 사실 이런 논쟁에서 대부분 말꼬리잡는 구실이고 누가 정치적인 주도권을 잡느냐를 가지고 싸운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필레오케 논쟁에 왜 동서방교회가 열을 올렸을까? 독특한 해석으로는 왜 서방교회가 아들로부터 성령이 나온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는지를 면밀히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성령을 주도할 수 있다는 논리가 된다. 이미 그 당시에 로마교회는 어느 정도 세계의 중심으로 지위를 누리기 시작했기 때문에 이것이 로마교회의 권위를 더 높이는 신학적 근거가 된다는 주장도 있다.


여하간 동서방교회가 분열된 이후 가톨릭의 서방교회는 이방인 선교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유럽의 서쪽 지역이 다양한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비교적 초기부터 이방인 선교의 노하우도 있었다. 이 당시에 이방인을 그리스도로 개종시키는 데 가장 방해가 되는 종교가 바로 마호멧이 창설한 이슬람교였다.

 

1095년 가톨릭의 교황 우르반 2세가 클레르몽 종교회의에서 십자군 원정을 호소하였고, 열정적인 신앙심으로 성지 예루살렘을 탈환하려는 십자군이 결성되었다. 교황은 더 많은 십자군을 보내기 위해서 십자군에 참가하는 사람들에게 면죄부를 허락하기도 했다. 중세 유럽에서 십자군 운동은 거의 200년간 지속되었는데 종교적으로는 동방에 대한 선교적 관심을 더욱 불러 일으켰다. 이때 프란치스코회(1209), 도미니코회(1206)는 십자군 운동을 지원하였고, 점령지에 선교사를 파송하여 선교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런데 유럽이 총동원되어 싸운 십자군 전쟁이 그닥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을 때 동쪽에서 나타난 기마 민족이 무슬림 세력을 가볍게 제압하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바로 징기즈칸의 몽골이었다. ‘적의 적은 나의 편이라는 말이 있듯, 가톨릭은 몽골과 친하게 지내기로 마음을 먹는다. 몽골이 상대적으로 기독교에 관대하다는 소문도 그러한 결심을 더욱 부추겼다. 그래서 가톨릭은 1245년 리용에서 열린 공의회의 결정으로 교황의 전권대사를 몽골에 파견하게 된다. 이때 성 프란치스코의 제자였고 프란치스코회 창설에 참여하였던 카르피니가 1247년에 몽골에 다녀왔으며 이후 몽골의 역사를 저술하였다.

 

이후 1253년에는 프랑스 루이 9세의 사절로 프란치스코회 수도사 루브루크와 크레모나가 몽골을 방문하였다. 이들은 몽골의 지배층이 종교에 관대한 것이 아니라 관심이 없다는 것을 보고 약간 실망하였을 것이다. 이때 루브루크는 압록강 부근까지 여행하였으며, 고려를 카울레로 표기하여 한국을 최초로 서양에 소개하였다.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교황의 후원하에 선교사가 파견되었으나 주로 지배층인 몽골인을 대상으로 선교가 진행되었다. 1294년 몬테 코르비노가 원나라의 수도인 북경에서 선교활동을 전개하였고, 1307년에 중국 교구까지 창설했지만 큰 성과는 거두지 못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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