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동양 전래 (1) 도마와 시리아교회의 동양선교
[한국기독교의 역사]
1) 시리아와 인도선교
유세비우스의 『교회사』 제1권에 예수의 열 두 제자 중 한 사람인 다대오라는 제자가 시리아 에뎃사에 복음을 전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예수가 승천한 후 사도 도마가 다대오를 에뎃사에 보내어 아르바루스라는 사람을 치료해 주고, 세례를 주었으며 그곳에서 복음을 전했다는 것이다. 원래 아르바루스가 예수에게 먼저 와서 자신의 병을 고쳐달라고 요청했는데, 예수는 해야 할 일이 있다고 하면서 나중에 자기의 제자를 보내주겠다고 답신을 보냈다고 한다. 이후 다대오는 페르시아까지 가서 복음을 전했다고 알려져 있다.
한편 사도 도마가 인도에까지 가서 선교했다는 기록은 3세기 이후 기록된 『도마행전』에 나타나 있다. 도마가 도착한 곳은 군다파로스 왕의 영토였다고 하는데, 19세기 아프가니스탄 카불 계곡에서 발견한 고대 동전에 군다파로스라는 이름이 쓰여진 동전이 발견되면서 주목을 받기도 하였다. 여하간 서양의 기독교에서는 도마를 ‘인도의 사도’로 언급되고 있는데, 도마가 인도에 복음을 전했다는 것은 당시 서양 교회에 널리 알려져 있었다고 볼 수 있다.
2) 중국 선교
알로펜을 단장으로 하는 시리아교회(네스토리우스파) 선교단이 당 태종 9년(635년)에 중국에 도착하였다.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는 451년 칼케톤 공의회에서 이단으로 정죄되어 서양에서는 힘을 잃었지만 그후 동양에 근거지를 마련하고 세력을 동양으로 뻗치고 있었다. 네스토리우스 기독교를 접한 당 태종은 상당히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이후부터 네스토리우스 기독교는 당나라 황실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기 시작하였다. 이것은 서양에서 콘스탄티누스가 313년에 기독교를 공인한 것과 비슷한 의미로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런데 차이점은 서양에서는 밑바닥에서 신앙공동체가 300년간 유지하고 있다가 공인받은 것이고 동양은 밑바닥에서의 신앙공동체 자체가 없는 상황이었다.
이때 전해진 네스토리우스 기독교는 페르시아에서 온 종교라는 의미에서 ‘파사교’, 로마에서 건너온 종교라는 의미에서 ‘대진교’, 광명정대한 종교라는 의미에서 ‘경교’라는 명칭으로 불리워졌다. 당 고종은 경교를 ‘진종’(眞宗)이라고 하였고 경사(景寺)를 설립해 주었다.
당나라는 781년에 수도인 장안에 있는 대진사 경내에 당나라 태종부터 덕종까지 150여 년간 경교의 역사를 담은 ‘대진경교유행중국비’를 세워주기도 하였다. 경교는 중국의 문화적 전통에 맞추어 선교하려는 노력으로 토착화에 너무 열중한 나머지 페르시아의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와는 다른 토착적 중국 종교로 변해버렸다.
독실한 도교 신자인 당나라 무종이 불교를 탄압하기 위해 845년에 ‘회창멸법’으로 박해를 했는데, 그 범위가 외래종교까지 확대되면서 경교까지 박해를 받았다. 그리고 875년 ‘황소의 난’ 때 외래종교에 거부감을 갖고 있던 반란군들에 의해 경교의 사제들이 학살되면서 쇠퇴하였고 변방으로 물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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