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건국 이전의 알바롱가의 왕들
Latin kings of Alba Longa
리비우스(Livy)와 핼리카르나수스의 디오니시우스(Dionysius of Halicarnassus)에 따르면 알바롱가를 다스렸던 라틴 왕들은 다음과 같다.
라티누스(Latinus) :
로마 전설에서 라티움 원주민들의 왕이며 라틴족이라는 민족 이름의 기원이 된 영웅. 라티누스는 그리스의 영웅인 오디세우스와 마녀 키르케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거나 또는 로마의 신 파우누스와 요정 마리카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로 여겨졌다. 아마도 로마의 기원 및 로마와 라티움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창조된 가공 인물이었을 것이다. 베르길리우스의 서사시 〈아이네이스 Aeneid〉에 따르면, 주인공 아이네아스는 테베레 강 어귀에 상륙해 평화를 사랑하는 통치자 라티누스의 환영을 받았으며, 결국 라티누스의 딸 라비니아와 결혼했다고 한다.
아이네아스(Aeneas) :
트로이 왕족인 안키세스와 여신 아프로디테(로마신화의 비너스)의 아들이다. 이다산의 요정들이 기르다가, 5세 때부터 안키세스가 키웠다고 한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 따르면, 트로이전쟁에서 그리스군에 대항하여 사촌 헥토르에 버금 가는 용맹을 떨쳤다. 트로이의 마지막 왕 프리아모스의 딸 크레우사와 결혼하여 아들 아스카니우스를 낳았다.
트로이가 함락되기 전에 아프로디테의 경고를 받아들여 트로이에서 도망쳤다고도 하고, 트로이의 요새를 사수하려는 그의 충정을 존경한 그리스군과 협정을 맺어 트로이를 떠났다고도 한다. 그밖에 아킬레우스의 아들 네오프톨레모스에게 붙잡혀 그의 노예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하지만, 그의 추종자들과 함께 새로운 땅을 찾아 트로이를 떠났다는 이야기가 일반적이고, 나중에 트라키아를 비롯하여 크레타섬·델로스섬·시칠리아섬 등지를 떠돌아다녔다는 전설이 덧붙여진 것으로 보인다.
고대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는 이를 소재로 ‘아이네이아스의 노래’라는 뜻의 《아이네이스》를 지었다. 이에 따르면 아이네이아스는 트로이를 떠난 뒤 카르타고에 닿아 그곳의 여왕 디도와 사랑을 나누는 등 7년 동안의 유랑 끝에 이탈리아의 라티움에 상륙하였다. 아이네이아스는 그곳의 왕 라티누스의 딸 라비니아와 결혼하여 새로운 도시 라비니움을 건설하였고 이후 로마 제국의 건국 시조로 묘사되었다.
* 로마의 건국 신화
베르길리우스(Vergilius)의 서사시 {아니네아스}(Aeneid)에는 로마의 건국을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트로이가 함락되던 그 밤, 트로이의 영웅이던 아니네아스는 전쟁의 와중에서 사랑하는 아내를 잃었다. 그도 아버지와 아들과 그를 추종하는 많은 사람들과 여러 척의 배에 나누어 타고 가까스로 탈출하였다. 트로이를 다시 건설하기 위해 새로운 땅을 찾아 방랑의 길을 떠나게 되었다.
그의 일행은 트라키아, 델로스 등지를 거쳐 이타리아 근처까지 갔으나 풍랑을 만나 아프리카 해안까지 말려갔다. 그곳은 당시 티루스의 이민들이 그들의 여왕(Dido)의 지도하에 새로운 국가를 세워, 나날이 융성해가고 있던 터였다. 디도는 본래 티루스의 왕 베로스의 딸이며, 선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피그마리온의 여동생이었다. 그녀의 남편은 쉬카이오스라고 하는 대단한 재산가였는데, 피그마리온이 재산에 눈이 어두워 그를 죽이고 말았다. 그러자 디도는 많은 친구와 부하들을 데리고 몇 척의 배에 쉬카이오스의 재물을 가득 싣고 티루스를 탈출하여 이곳으로 온 뒤 주민들에게 한 마리의 쇠가죽으로 둘러칠 땅이라도 좋으니 나눠 달라고 부탁했다.
주민들이 이 부탁을 받아들이자, 그녀는 쇠가죽을 길게 잘라 몇 개의 끄나풀을 만들고 땅을 둘러친 다음 그곳에 성을 세우고 비루사(쇠가죽)라고 이름 붇혔다. 바로 이 성을 중심으로 카르타고가 생겨난 것이다.
아이네아스 일행이 그 곳에 도착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디도는 이들을 친절하게 맞았고 환영하는 잔치를 열었다. 이 때 벌어진 경기에서 아이네아스의 솜씨에 반한 여왕은 그의 모험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사모하게 되었다. 결국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하게 되었다.
몇 달의 꿈같은 시간이 지난 뒤 아이네아스는 다시 정신을 차리게 되어 디도에게 이별을 고하게 되었다. 디도는 사정하였지만 소용 없었다. 결국 아이네아스는 이탈리아로 향하게 되었고 두 번씩이나 애인을 잃은 디도는 정작과 더불어 한줌의 재로 변했다.
아이네아스가 이탈리아의 티베르 강가에 닻을 내렸을 당시, 그 곳을 지배하고 있던 왕은 라티누스(Latinus)였는데, 그에게는 라비니아(Lavinia)라는 딸이 있을 뿐이었다. 그녀는 이웃 나라 왕족들에게 구혼을 받고 있었다. 그 중 투루누스라고 하는 왕자가 있었는데, 그는 라비니아의 부모에게 호감을 사고 있었다. 그런데 라티누스는 어느 날 꿈속에서 선친인 화노스로부터 라비니아의 남편은 다른 나라에서 건너 온 사람으로 정해야 하며, 그들의 후손이 전세계를 정복할 것이라는 계시를 받았다.
한편 아이네아스는 자기가 도착한 곳에 어떤 종족이 살고 있으며 또 그들의 왕은 누구인가를 알기 위해 백 명의 뛰어난 부하들에게 선물을 주어 마을로 보냈다. 이들을 맞아 자초지종을 들은 라티누스왕은 이 트로이의 영웅이야말로 장래의 사위임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기분 좋게 동맹을 허락하고 많은 답례품을 보냈다.
이 사실을 안 투루누스 왕자는 낯 모르는 이방인에게 여자를 빼앗긴 모욕을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아이네아스와 라티누스왕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게 되었다. 이 전쟁에서 양편은 서로 간에 큰 피해를 입었으나, 결국 아이네아스 측의 승리로 끝났다.
아스카니우스(Ascanius) :
이울루스(또는 율루스)라고도 하며, 로마의 율리아씨(氏)의 신화적 조상이다. 특히 아이네아스와 프리아모스의 딸 크레우사의 아들이라고 하나, 리비우스에 의하면 그는 아이네아스가 이탈리아에 온 후 라비니아에게서 얻은 자식으로 되어 있다. 오래된 전설로는 그는 프로폰티스의 왕이 되어 나중에 헥토르의 아들 스카만드리오스와 함께 트로이를 재건했다고 한다.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에서는 그는 또한 소년으로 묘사되어 있으며, 아이네아스가 죽은 뒤 라티니인(人)의 왕이 되어 라비니움 건설 후 30년 만에 알바 롱가시(市)를 창건하여 옮겼다고 한다. 그는 38년간 다스렸다(BCE 1179~1141년).
실비우스(Silvius) :
아이네아스와 라비니아의 아들로 아스카니우스의 배다른 동생이다. 디오니시우스에 의하면 아스카니우스가 죽은 후 아스카니우스의 아들 줄루스(Julus)와 후계 문제를 놓고 분쟁이 일어난다. 그러나 백성들이 라티누스와의 관계(외조카)로 실비우스가 후계자로 선택한다. 줄루스는 성직자가 되었다고 한다. 그는 29년간 통치하였다(BCE 1141~1112년).
아이네아스 실비우스(Aeneas Silvius) :
실비우스의 아들. 31년간 통치하였다(BCE 1112~1081년).
라티누스 실비우스(Latinus Silvius) :
아이네아스 실비우스의 아들로 추정된다. 51년간 통치하였다(BCE 1081~1030년).
알바(Alba) :
라티누스의 아들로 추정된다. 39년간 통치하였다(BCE 1030~991년).
아티스(Atys, 리비우스) 혹은 카페투스(Capetus, 디오니시우스) :
알바의 아들로 추정된다. 26년간 통치하였다(BCE 991~965년).
카피스(Capys) :
카페투스의 아들로 추정된다. 28년간 통치하였다(BCE 965~937년). 에트루리아 언어에서 카피스는 ‘매’ 혹은 ‘독수리’를 뜻한다.
*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카피스라는 이름은 여러번 등장한다.
트로이 왕가의 후손이며 트로스의 손자이다. 아버지는 트로이에 인접한 다르다니아 왕 아사라코스이고, 어머니는 강의 신 시모이스의 딸 히에롬네메 또는 트로이 왕 라오메돈의 딸 클리토도라이다. 일로스와 에우리디케의 딸인 테미스테와 결혼하여 안키세스를 낳았다.
트로이의 마지막 신관 라오콘도 카피스의 아들이라고도 한다.
안키세스는 트로이전쟁의 영웅이며 로마제국의 건국 시조인 아이네아스의 아버지이다. 카피스는 트로이전쟁 때까지 살아 있으면서 그리스군이 위장전술로 남기고 간 목마를 의심하여 바다에 버려야 한다고 경고한 사람들 가운데 하나이다.
한편 알바롱가의 왕 에피토스의 아들도 카피스이다.
카피투스 2세(Capetus II) 혹은 칼페투스(Calpetus) :
카피스의 아들로 추정된다. 13년간 통치하였다(BCE 937~924년).
티베리누스 실비우스(Tiberinus Silvius) :
카페투스 2세의 아들로 추정된다. 8년간 통치하였다(BCE 924~916년). 전하는 바에 따르면, 알불라(Albula) 강의 근처에서 전투 중 빠져 죽었다고 전해진다. 그 강은 그 뒤로 티베르(Tiber) 강으로 불리우게 된다.
아그리파(Agrippa) :
티베리누스의 아들로 추정된다. 41년간 통치하였다(BCE 916-875).
로물루스 실비우스(Romulus Silvius, 리비우스) 혹은 알라디우스(Alladius, 디오니시우스) :
아그리파의 아들로 추정된다. 19년간 통치하였다(BCE 875-856). 전하는 바에 의하면 그는 사악한 군주였다고 한다. 그는 자신이 번개를 부를 수 있다며 백성들을 위협했는데, 결국 그는 폭우가 내리는 중 번개에 맞아 죽었다고 한다.
아벤티누스(Aventinus) :
알라디우스의 아들로 추정된다. 37년간 통치하였다(BCE 856~819년). 그가 죽은 뒤에 묻힌 언덕에 그의 이름을 붙여 아벤티누스 언덕이라고 불렀다고 전한다.
프로카스(Procas) 혹은 프로카(Proca) :
아벤티누스의 아들로 추정된다. 23년간 통치하였다(BCE 819~796년). 그의 아들 누미토르와 아물리우스는 왕권을 놓고 형제간에 다툼을 벌이게 된다.
아물리우스(Amulius) :
프로카스의 어린 아들로, 전하는 바에 의하면 형인 누미토르를 몰아내고 왕위를 빼앗았다. 42년간 통치하였고(BCE 796~754년) 그의 형의 손자들인 로물루스와 레무스에게 죽임을 당했다.
프로카가 죽은 뒤 형 누미토르를 몰아내고 알바롱가의 왕위를 차지하였다. 아물리우스는 후환을 없애기 위해서 누미토르의 아들을 모두 죽이고, 외동딸 레아 실비아는 순결을 지켜야 하는 베스타(그리스신화의 헤스티아)의 사제가 되게 하여 누미토르의 대를 끊고자 하였다.
누미토르(Numitor) :
아이네아스의 아들 아스카니우스가 건설한 알바롱가의 13대 왕 프로카스의 맏아들이다. 아버지를 이어 왕위를 이어받았는데, 동생인 아물리우스가 반란을 일으켜 나라 밖으로 쫓겨났다. 그의 아들들은 모두 처형당하였고 딸 레아 실비아도 베스타(그리스신화의 헤스티아) 신전의 여사제가 되어 평생 처녀로 살게 됨에 따라 후손이 끊기게 되었다.
어느 날 실비아는 베스타 신전에 바칠 물을 뜨러 숲에 갔다가 늑대를 만나 동굴에 숨었는데, 이 때 나타난 군신(軍神) 마르스(그리스신화의 아레스)와 동침한 뒤 잉태하여 로물루스와 레무스 쌍둥이 형제를 낳았다. 이들은 아물리우스에 의해 버려졌으나 늑대의 젖을 먹고 자라다가 양치기에게 발견되었다. 어른이 되어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 로물루스와 레무스는 아물리우스를 죽이고 외조부인 누미토르를 복위시켰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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