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2월 14일 일요일

[로마] 로물루스와 레무스

로물루스와 레무스

 

전설에 따르면 이들은 알바롱가의 왕인 누미토르의 딸 레아 실비아가 낳은 쌍둥이 아들들이다.

 

누미토르는 동생 아물리우스에게 왕위를 빼앗겼는데 아물리우스는 조카딸 레아가 장차 왕위를 요구할 수 있는 아들을 낳지 못하게 하기 위해 레아에게 베스타의 제녀(祭女)가 되어 순결을 맹세하라고 강요했다. 그러나 레아는 전쟁의 신 마르스와 관계하여 로물루스와 레무스라는 쌍둥이 아들을 낳았다. 아물리우스는 이 갓난아기들을 테베레 강에 빠뜨려 죽이라고 명령했지만 그들을 태운 여물통은 강을 따라 내려가 장차 로마가 세워질 자리인 무화과나무(이 나무를 역사 시대에는 '피쿠스 루미날리스'라 하여 신성한 나무로 숭배했음) 옆에 닿았다. 이곳에서 그들은 파우스툴루스라는 목동에게 발견되기까지 마르스에게 바쳐진 동물인 암늑대와 딱따구리의 젖을 먹었다. 그후 파우스툴루스와 그의 아내 아카 라렌티아의 보호를 받으며 자란 쌍둥이 형제는 모험을 좋아하는 젊은이들의 지도자가 되어 결국 아물리우스를 죽이고 할아버지를 다시 왕위에 앉혔다. 그후 로물루스와 레무스는 그들이 구조된 자리에 도시를 세웠다. 로물루스가 성벽을 짓자 레무스는 그 성벽을 뛰어넘었기 때문에 형에게 죽임을 당했다.

 

로물루스는 권력을 강화했으며 도시에는 그의 이름에서 딴 로마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그는 도망자와 추방자들에게 피난처를 제공하는 방법으로 도시 인구를 늘렸으며 이웃에 사는 사비니인들을 축제에 초대하여 사비니 여인들을 납치했다. 이 여인들은 자신을 납치한 로마 남자와 결혼했고 사비니인들이 쳐들어오자 사이에 끼어들어 그들이 로마를 점령하지 못하게 막았다. 두 민족 사이에 맺어진 협정에 따라 로물루스는 사비니 왕인 티투스 타티우스를 공동 통치자로 받아들였다. 티투스 타티우스가 일찍 죽자 로물루스는 다시 유일한 왕으로 남게 되었고 오랫동안 로마를 다스린 뒤 폭풍우 속에서 신비롭게 사라졌다. 그가 신이 되었다고 믿은 로마인들은 그를 퀴리누스라는 이름의 신으로 숭배했다.

 

로물루스와 레무스의 전설은 BC 4세기에 만들어져 BC 3세기말에 구체적인 틀을 갖춘 이야기로 기록된 듯하다. 이 전설에는 그리스적인 요소와 로마적인 요소가 뒤섞여 있다. 그리스인들은 어떤 지명의 기원을 설명하기 위해 그 이름의 기원이 된 신화적 영웅을 창조하는 관습을 갖고 있었다. 사비니 여인들을 약탈했다는 이야기는 납치를 흉내내는 로마의 결혼 풍습을 설명하기 위해 창조되었을 것이다. 로마인들은 이 전설에 마르스를 포함시켜, 그 신과 자신들의 기원을 연결하려 했다.

 

로물루스와 레무스의 갈등에 대한 다른 견해

 

로물루스 형제가 알바롱가의 왕을 처단한 뒤에는, 그때까지의 부하들 외에 부근의 양치기와 농민들까지 이들을 따르게 되어 그 세력이 더욱 커졌다. 그러자 그 권력을 놓고 두 형제의 사이가 나빠지기 시작했다. 쌍둥이였기 때문에 누가 왕이 될 것인지를 결정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형제는 분할 통치를 하기로 하고, 로물루스는 팔라티누스 언덕에, 레무스는 아벤티누스 언덕에 각각 성을 쌓기 시작했다.

 

로물루스는 총명하고 신중했으며, 레무스는 정직하고 활달했다. 두 형제의 성격은 두 도시에도 그 특징이 반영되고 있었는데 로물루스는 세력을 넓히기 위해 주변 지역의 이탈자나 추방자, 심지어는 범죄자들에게도 피난처를 제공해주어 인구를 늘려갔다. 반면, 고지식했던 레무스는 초기의 양치기와 농민들로만 도시를 꾸려갔고 주변의 경작지를 잘 이용하여 알뜰하게 부족을 이끌어갔다.

 

문제는 로물루스측에서 발생했다. 인구는 늘고 식량이 부족했던 로물루스는 젊은이들을 사냥에 내 보냈고 그의 묵인하에 인접지역에 대한 약탈이 허용되고 있었다. 게다가 레무스측의 가축과 물품에까지 손을 대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이웃 부족을 상대로 납치결혼이 횡횡하고 있었는데 이는 이탈자들이 많은 로물루스측에 여자들이 절대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다른 부족들에게서 항의와 충돌이 빈번하게 이뤄지고 있었다. 이를 보다 못한 레무스가 로물루스에 찾아가 더이상 문제를 일으키지 말라며 수차례 경고했지만, 로물루스는 그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그의 간섭을 불쾌하게 여긴 로물루스는 마침내 최후 통첩을 보낸다. 두번 다시 간섭하면 침략으로 간주하겠다는 것이다. 참다 못한 레무스가 형에게 결투를 신청했다.

 

로물루스는 자신의 언덕에서 결투를 벌이자며 레무스를 불러들였다. 레무스의 측근들은 함정일지 모른다며 이를 말렸지만 그는 그렇지 않을 거라며 호위병 10명을 데리고 간다. 마침내 두 사람이 팔라티누스 언덕에서 마주섰다. 그 주위엔 수많은 병사들과 주민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결투는 격렬하게 시작되었고 그 승부는 좀처럼 나지 않았다. 이때 흥분한 양측의 병사들이 몸 싸움끝에 혼란이 일어났다. 숫자에 밀린 레무스의 호위병들이 모두 살해되었고 레무스가 병사들에게 둘러 싸였다. 로물루스는 포위병들을 물리치고 동생에게 말했다.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전쟁이 불가피하게 됐다. 항복할 것인지 전쟁을 택할 것인지 결정하라!"

 

레무스는 무릎을 꿇더니 검으로 가슴을 찌르며 외쳤다.

 

"나의 죽음으로 신이 그대들을 용서할 것이다!"

 

깜짝 놀란 로물루스는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동생을 부둥켜 안고 울부짖었다. 이후 로물루스는 동생을 기리는 신전을 만들고 해 마다 그를 추모하였다. 로물루스에 의해 하나로 통합된 도시는 그의 이름을 따서 '로마'로 선포되었다. 로물루스는 통치 방식을 좀 더 엄격하게 하여 약탈을 금지시켰다. 그러나 납치결혼만큼은 어쩔 수 없었기 때문에 풍습으로 인정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

참고: 블로그의 회원만 댓글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

스네프루 [Snefru, 기원전 2613~2589] 이집트 제4왕조, ‘성스러운 왕’

스네프루 [Snefru, 기원전 2613~2589] 이집트 제 4 왕조 , ‘ 성스러운 왕 ’   스네프루는 고대 이집트의 제 4 왕조를 시작한 왕이다 . 그는 24 년 동안 이집트를 통치하면서 왕권을 강화하고 남북 지역의 교류를 확대했으며 영토도 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