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2월 12일 금요일

[단기고사] 제3편 기자조선 : 제38세 가색

 제 38 세 가색(可索)

―58년간 재위―

 

첫해에 맏아들 산한(山韓)을 태자로 삼고, 아우 가진(可眞)을 안평후(安平侯)로 삼았다.

 

2년에 한윤국(韓允國)이 도덕요람(道德要覽) 32권을 지어 임금께 바치며 아뢰기를 “복(福)은 맑고 검서한데서 생기고, 덕(德)은 검소하고 낮추는데서 생기고, 도(道)는 평안하고 고요함에서 생기고, 명(命)은 온화하고 맑은데서 생기고, 근심(憂)은 많은 욕심에서 생기고, 허물(過)은 경솔하고 교만한데서 생기고, 화(禍)는 몹시 가난한(多貧)데서 생기고, 죄(罪)는 어질지 못한(不仁)데에서 생기니, 이것을 알고 행하는 자는 실천도덕자(實踐道德者)가 될 것입니다.”하니, 임금께서 "옳다“하셨다.

 

3년 봄에 방사(方士) 노식(盧植)이 단서(丹書=術書) 40종류를 바치며 아뢰기를 “복기(伏氣)․태식(胎息)․잠신(潛神)․유술(柔術)․기합술(氣合術)․연단(鍊丹)․복사(辟邪) 등이 다 호신술(護身術)입니다.”하니, 임금께서 “이것은 제왕의 할 일이 아니다. 일시적으로 위급을 면하기 위한 술(術)이니라.”하시고, 장군부(將軍府)에 보내어 참고하여 쓰라 하셨다.

 

6년 이때에 철학사상(哲學思想)이 대두하여 우주의 진리를 각자 의식으로써 해석하였다. 풍론사(風論師)․화론사(火論師)․공론사(空論師)․유신론(有神論)․무신론(無神論)․유심론(惟心論)․유물론(惟物論) 등 학설이 각기 나와 세상 사람들의 정신을 혼미하게 하였다.

 

14년에 북부여(北扶餘) 사절이 입경하였다.

 

16년에 연(燕) 나라에서 망명한 서문중(徐文仲)이 입국하여 지방의 낮은 관리가 되어 영해(寧海)에 살았다. 이때 연(燕) 나라로부터 와서 사는 사람이 많았다.

 

24년에 위(衛) 사람 이세성(李世成)이 칠서비지(七書備旨)를 가지고 입경하였다.

 

28년에 초(楚) 사람 오광(吳廣)이 제자서(諸子書)를 가지고 입국하였다.

 

36년에 공신(功臣)인 색정(索靖)을 정평후(定平侯)로 삼았다.

 

40년에 노을문(老乙文)이 상서를 올려 아뢰기를 “천하대세의 가장 크고 웅장하고 격렬한 것은 사리(事理)가 그렇지 않을 수 없는데서 나온 것입니다. 혹 나라가 중화(中華)와 대립하여 수 천년 동안 우호국으로 지내온 것은, 서로의 문화수준이 같기 때문입니다. 주(周) 나라가 통일한 후, 그 나라의 예악법도(禮樂法度)의 제도와 문물이 훌륭히 구비되어 점점 우리 나라를 초월한 점이 있으므로, 천하백성들의 마음이 중화(中華)를 희망하여 중화의 전성시대가 우리 나라에 두려운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周) 나라 무왕(武王)이 제후로 봉한 자제(子弟)들이 매우 많았는데, 대(代)를 이을 자가 탐탁치않아 서로 공격하기를 원수같이 하고, 제후가 왕호(王號)를 함부로 일컬으니, 그 가운데 패권을 잡은 자는 진(晋)․초(楚)․연(燕)․제(齊)․한(韓)․위(魏)․조(趙)의 일곱 영웅들입니다. 이들은 날마다 전쟁만 일삼으니, 편할 날이 없어 전국시대(戰國時代)가 되었습니다. 그 반면에 주의(主義)와 사상(思想)이 극도로 팽창하여 학자마다 제각기 날뛰니, 그 중에 으뜸으로 꼽힐만한자는 공학(孔學)․노장학(老莊學)․양묵학(楊墨學)등입니다.

 

그러나 그 작품에는 간략하고 정직하다가 끝에 가서는 번거럽고 어려워 궤변학(詭辯學)․명리학파(名利學派)가 많이 생겨 이단종횡공리(異端縱橫功利)의 설(說이 성행하여 백성은 진정한 애국심이 없어지고, 국가는 강하고 견고한 기초가 이루어지지 못하여 왕풍(王風)이 땅을 다 쓸어버리고, 살기(殺氣)가 하늘을 찌를듯하여 배타사상(排他思想)이 열렬하여, 이것이 민족사상으로 바뀌어 다른 종족은 배척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평안한 세상이 오래 계속되어 오니, 민심이 해이해져서, 자기 나라의 정신을 잊어버리고, 맹목적으로 중화를 추아하는 습관이 심하니 안타깝습니다.

 

사람은 보편적으로 옛 것은 누르고 새것을 좋아하며, 근본은 버리고 끝을 취하는 일을 능사로 여겨 정신까지 하나가 되지 못하니, 신은 이것이 근심이 되고 두려울 뿐입니다.

 

국가의 큰 환란(大患)은 백성의 애국심이 죽은 것 이상 더 큰 것이 없으며, 애국심이 없는 민족은 죽어서 재된 나무와 같아서 활기가 없고 활기가 없는 민족은 국가를 보전할 수 없으니, 어찌 병력이 강한 다른 민족과 경쟁할 수 있셌습니까.

 

중화민족은 우리나라에 많이 들어 올지라도 교육과 산업을 진흥하면 부강하게 될 것은 능히 알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니 우리 백성들에게 민족사상을 일깨워 실행시키지 않으면 한족(漢族)이 피난(避亂)하여 울뿐 아니라, 동화(同化)될 우려가 없지 않습니다.

 

우리 백성들에게 민족사상을 갖게 하면 필연 민족전쟁이 일어날 날이 멀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민족으로서 한족(漢族)을 상대로 만반의 준비를 하여야 하겠으며, 한족과 대립한 후에야 우리 민족의 지위가 명랑해질 것이니, 지금은 민족사상을 환기(喚起)시켜야 할 때입니다. 지연되면 자연이 뒤떨어질 염려가 있으니 어찌 편안히 앉아 있겠습니까.

 

옛 단조(檀祖)께서 구이(九夷)의 추대를 받아 보위에 오르신 후 구족(九族)이 한 가족처럼 되어, 사람들은 오래살고 꽃냄새가 풍기는 속에서 태평가를 부르며 지내더니, 후손들이 탐탁치 않아 각기 나라의 분봉(分封)을 받아가지고 흩어져, 각각 다른 족속과 같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통일하는 일에 깊고 세밀하지 못한 까닭입니다.

중화(中華)는 이와 반대로 통일의 업적이 잘 되어, 민족사상이 통일되고 유교가 어김없이 지켜졌으니, 우리나라에 비하면 미족정신의 통일은 뚜렷한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몽고 돌궐(蒙古 突厥)과 흉노(匈奴)와 서이(西夷)는 분산되었다 할지라도, 우리 동방의 부여족(扶餘族)은 사상이 하나가 되었으니, 이 민족만이라도 화합하여 한족(漢族)을 대항하게 하여도, 능히 우리나라의 독립자주정신(獨立自主精神)을 보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하니, 임금께서 ”옳다“하시고 민족사상을 백성에게 일으키게하니, 이 정신이 불멸(不滅)하여 우리 부여문명(扶餘文明)을 일으켰다.

 

42년에 임금께서 구월산(九月山)에 오르시어 서해(西海)의 해지는 광경을 보시고 시를 지으셨다.

 

늙은 소나무 차라리 죽어도 가을 빛이 없는데

떨어지는 노을은 비록 쇠잔해도 햇빛보다 나으네.

(老松寧死無秋色, 落照雖殘勝月光)

 

58년에 임금께서 승하하시고, 태자가 왕위에 오르니 제39세 기자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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