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월 20일 수요일

《단기고사》(檀奇古史)에 대하여

《단기고사》(檀奇古史)는 발해를 건국한 대조영의 아우 반안군왕(般安郡王) 대야발(大野勃)이 8세기경에 편찬했다고 전해지는 역사서이다. 1959년에 출간된 국한문본과 1990년에 복원된 한문초략본(백산본)이 확인되고 있다. 국한문본은 그 내용이 각 시대의 상황과 맞지 않아 일반적으로 국사학자들은 구한말 이후에 만들어진 위서로 평가한다.

 

‘단기고사(檀奇古史)’는 ‘단군(檀君)과 기자(奇子)의 옛 역사’라는 의미로, ‘전단군조선(前檀君朝鮮)’과 ‘후단군조선(後檀君朝鮮)’으로 나뉜 47대 단군의 재위 기간과 각 시대의 주요 기록, 약 2천여 년에 걸친 역사와, 전단군조선보다 늦게 시작된 기자조선(奇子朝鮮)의 42대 1천여 년의 일을 시대순으로 기술하고 있다.

 

출간 경로 및 유래

 

〈저자의 말〉과 〈중간서(重刊序)〉, 〈출간경로〉에 따르면, 《단기고사》는 728년 대야발이 흩어진 사료를 모아 발해의 글로 지었으며, 그 100년 후에 황조복(皇祚福)이 한문으로 번역한 것을 구한말 학자인 유응두가 중국에서 발견하여 수십권 등사하였고, 이관구 및 김두화, 이시영이 국한문으로 번역·교열하여 간행하였다고 한다. 이 1949년 간행본을 구할 수 없게 되자 1959년 정해박(鄭海珀)이 국한문본으로 복원하였고, 현재 남아 있는 것이 이 복원본이다.

 

1990년에 국한문 번역본이 실제 내용과 다름을 지적하여 기억을 되살려 복원하였다는 한문초략본이 공개되었다.

 

진위 논란

 

단기고사에는 근대 용어의 등장이나 시대에 맞지 않는 기록 등 여러 가지 모순으로 일반적으로 역사적인 자료로 채택되지 않는다.

 

천문 기록의 연구

 

국한문본 《단기고사》에 기록된 10여 건의 천문 관련 기록의 실현 여부를 연구한 논문이 발표되었으나, 그 내용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논문의 내용과 반론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주장 - 오성취합은 250년에 한 번 정도 일어나는데, 기록과 실제 현상은 1년밖에 차이나지 않는다. 썰물 기록도 200년 사이에 가장 큰 썰물이 4년의 오차로 기록되었다. 이는 매우 적은 확률이며, 따라서 기록이 임의로 조작된 것일 확률도 매우 적다고 할 수 있다.
  • 반론 - 논문은 국한문본 《단기고사》가 위작일 경우 막연하게 꾸며내었을 것을 가정하고 있지만, 동양 천문학의 지식이 있다면, 특히 천체의 위치를 계산할 수 있게 된 조선 세종시대 이후라면 옛 천문현상을 예측할 확률은 높아질 것이다.

 

연구의 기준으로 쓰인 연대는 고조선이 기원전 2333년에 건국되었음을 가정한 것이며, 《환단고기》의 연대를 따른 것이다. 그러므로 《단기고사》의 연대로 같은 작업을 실행할 경우 200년 가까이 오차가 생기게 된다는 문제가 있다. 오성취합은 20년에 한 번 일어나는 현상으로 1년의 오차를 생각한다면 1/6 정도의 아주 높은 확률이다.

 

북조선의 연구

 

단군조선을 47대의 왕조로서 기록한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으나, 지나치게 긴 재위 연대에는 현실성에 의문을 제기하였다. 시대와 맞지 않는 내용, 근대 이후에 사용된 용어 등 많은 부분이 후대에 가필되었다고 판단하고 있으며, 《단기고사》 초략본(백산본)을 별도로 주목하였다. 기자조선(奇子朝鮮)의 기록은 받아들이지 않았고, 전조선·후조선의 구분은 채택하였다.

 

내용상의 모순

 

서지 사항(출간 연도와 원본)

  • 국한문본 《단기고사》는 한문 원본이 존재하지 않는다. 1949년 간행본은 구할 수 없고, 1959년의 국한문 번역본 이전의 것은 없다. 1990년에 공개된 한문초략본은 국한문본과 다른 내용이다.
  • 1907년에 공개되었다고 주장하지만, 김교헌이나 신채호의 글에 《단기고사》에 대한 언급이 없다.
  • 국한문본에서 1907년에 씌여진 이경직의 서문에 1910년부터 사용한 명칭인 ‘대종교’가 등장한다.
  • 대야발의 서문은 천통 31년에 씌여진 것으로 되어 있으나, 대조영은 재위 기간이 20년이었고, 뒤이은 무왕은 ‘인안’의 연호를 사용하였다.

 

시대와 맞지 않는 내용 및 어휘

  • 미술관, 지구성, 원심력, 만국박람회 등의 근대에 등장한 용어를 사용하였다. 기구와 전화, X-레이와 잠수선이 등장하고, 신하가 임금에 서양의 칸트-라플라스가 주장한 성운설의 내용을 소개하기도 한다.
  • ‘회기(會期)를 정하고 백성에게 참정권(參政權)을 허락하여 매년 8월 1일 정기회의 날짜로 정했다.’라는 기록 등 근대적 용어와 개념이 사용되었다.

 

재위 연도의 모순

  • 단기고사에는 고조선이 2096년에 모두 47대로, 기자조선이 1097년에 42대로 기록되어 있다. 왕의 수는 비슷한데 다스린 연수가 2배의 차이가 난다. 단기고사에 기록된 왕들의 평균 재위 연대는 45년 가까이 되어 상식과 어긋난다(후반부에 존재했던 것으로 기록된 기자조선은 41대 1052년으로 기록되어 평균 재위 연대가 26년으로 계산된다.). 북한의 학계에서는 이 점을 들어 단기고사의 기록을 불신하고 있다.
  • 《단기고사》에 따르면, 기자조선이 전단조선 19세 단군 종년(규원사화는 구모소 임금)부터 시작되었으며, 이후 1097년간 계속되었다. 위만조선의 시작 연대를 일반적인 기원전 194년으로 가정하면, 전단조선의 시작 연대는 기원전 2512년이 된다. 일반적인 기원전 2333년과는 179년의 차이가 난다. 《환단고기》〈단군세기〉는 기원전 2333년이 고조선의 시작 연도로 기록되어 있다.
  • 박병섭의 〈단군과 기자 관련 사료를 통해 본 《환단고기》의 역사성 검토〉에서는 후단조선과 기자조선의 동일 내용에 대한 시대 불일치로 자체의 기간 정합성이 없음이 지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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