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월 20일 수요일

[단기고사] 제1편 전단군조선 : 제2세 부루

 제 2 세 부루(扶婁)

―58년간 재위―

 

첫해 9월에 가운데 아우 부여(扶餘)를 망구왕(茫球王=遼西)으로 삼고, 셋째아우 부우(扶宇)를 동해와(東海王=東海邊)으로 삼으니 삼한(三韓)은 동해왕의 후세이다.

 

2년 봄 1월에 대련(大連)으로써 섭사직(攝司職)을 삼고, 소련(小連)으로써 사도(司徒)를 삼았다. (震檀紀에 大連의 地方은 半島라 했다.)

 

대련(大連)과 소련(小連)은 단조(檀朝)의 중신(重臣)이다. 충효(忠孝)를 갖춘 사람으로 친상(親喪)을 당하니 3개월을 게으름 피우지 않고 3년동안 서러워하니, 이것은 동양윤리(東洋倫理)의 원조(元祖)이다. (이러한 사실은 孔子의 글에도 나온다.)

 

고수(高叟-漢記에는 瞽瞍)는 중신 고시(高矢)의 친형이다. 그 아들 순(舜)[주:舜-고대 중국의 순(舜)임금]이 단조(檀朝)에서 벼슬을 하지 앟고 이웃 당요조(唐堯朝)[唐堯朝-요임금 때]에서 벼슬을 하니, 부자(父子)의 의견이 서로 달라 마침내 화목하지 못하게 되어, 고수는 작은 아들 상(象)을 사랑하고 순은 죽이고자 하였다. 순이 아버지의 듯을 알고 효성으로 섬기며 끝까지 손복하니 당뇨 (唐堯)가 신임하고 왕의 자리를 물려주었다. 순이 이렇게 되어 중화(中華)의 천자(天子)가 되어 문명한 정치를 하니, 사농공상(士農工商)에 각기 직업을 주고 우(禹)[주:禹-중국 하(夏) 왕조의 시조. 순임금으로부터 왕위를 물려 받음]의 아버지를 익산(翊山)에서 목을 쳐 간악한 무리를 내쫓았다. 이 때문에 한족(漢族)이 순을 꺼려오다가 우의 덕망이 날로 높어지더니, 순이 왕위에 오른지 61년에 창오야(蒼梧野)에 행차하다가 한족(漢族)에게 해를 다해 승하했다.

 

이렇게 되니, 순의 아내 아황여영(娥皇女英)이 원한이 사무쳐 수상강(瀟湘江)에 빠져 죽었다. 그 아들 상균(商均)은 다시 고국에 돌아와 단조에서 일을 맡으니 그 관직이 사도(司徒)에 이르렀다.

 

이보다 앞서, 치우(治尤=蚩尤)[주:蚩尤-배달나라 제14세 자오지(慈烏支)환웅, 재위 109년 수는 151세]는 이마가 쇠처럼 강하고 능히 크게 안개도 일으켰다. 그 때에 자부선생 밑에서 함께 공부하던 중화의 황제(黃帝)가 공연이 염제(炎帝)의 왕위를 빼앗는 것을 보고 의분을 참지 못하여 황제와 탁록(涿鹿)[주:涿鹿-중국 하북성(河北省) 탁록현(涿鹿顯)에 있다] 들에서 싸웠는데, 후원병이 오지않아 황제에게 사로잡히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손자 특명(特明)이 또한 매우 용맹하여, 단조에서의 벼슬이 사도(司徒)에 이르고, 상균(尙均)과 더불어 단조를 도우니 정치의 문명(文明)정도가 중화의 우조9禹朝)보다 훨씬 뛰어났다.

 

임금께서 태자되었을 때에 중화의 백우(伯禹)와 더불어 친선하다가, 임금께서 왕위에 오르니, 우도 순의 자리를 대신하여 왕이 되었다. 그 때에 홍수가 9년동안 천하에 범람하여 중화는 우가 치수(治水)하는데 곤란을 겪고, 조선은 팽오(彭吳)에게 치수를 맡겨 치수가 완료되니, 우(禹)가 도산회의(塗山會議)[주:塗山會議-큰 홍수가 있어 우리는 치수(治水)를 잘 하였으나 중국은 큰피해를 입게 되었다. 이에 도산(塗山-중국 상해 남쪽 절강성에 있다)에서 주변 나라들이 모였는데, 우리는 오행 치수법(五行治水法)을 가르쳐 주었다. 이로써 우(禹)는 물을 잘 다스리게 되어 순임금으로부터 왕위를 물려받았다]를 각 나라에 요청하였다. 임금께서는 팽오를 특명대사로 삼아 우에게 보내어 치수하는 법을 설명하셨다.

 

3년 9월에 조서를 내리시어, 백성들에게 머리를 땋고 푸는옷(靑衣)을 입고, 도량형(度量衡)을 통일하며, 예의를 숭상하게 하여 어진 행정을 하였다.

 

10년 4월에 정전법(井田法)을 시행하니, 백성은 사전(私田)이 없었다.

 

18년 6월에 조서를 내리시어 충의열사(忠義烈士)와 효자열부(孝子烈婦)와 현자(賢者)의 행실을 포상하였다.

 

아들이 16명이 있었는데, 맏아들 가륵(嘉勒)으로 태자를 삼고, 그 밖에 15명 중 봉건국(封建國)을 얻은 자가 8명이며 나머지는 다 친왕(親王)이 되었다.

 

이 때에 나라는 태평하고 백성은 그 수가 많았다. 국경은 동쪽이 창해(滄海), 서쪽은 요서(遼西), 남쪽은 남해, 북쪽은 서비로(西非路)[주:西非路-서백리아(西伯利亞), 곧 시베리아를 말함]에 이르러, 큰 민족이 9부(九部)[주:九部-구이(九夷), 곧 우리의 아홉족속을 말함], 작은 민족이 14부였다. 모두 단군의 덕화(德化)를 입어 위로는 인륜(人倫)이 밝고 아래는 교화(敎化)가 행하여져, 풍속의 선하고 아름다움이 천하에서 제일이었다.

 

26년에 석자장(石子丈)이 아뢰기를 “시조의 천부경(天符經)[주:天符經-一始無始一析三極無盡本天一一地一二人一三一積十鉅無匱化三天二三地二三人二三大三合六生七八九運三四成環五七一妙衍萬往萬來用變不動本本心本太陽昻明人中天地一一終無終一]을 참고하여 보면, 하늘이 만물을 지어 그 모양과 색깔이 가지가지이나 각각 그 시작이 있는 것은, 그 중에 한 가지의 영(靈)을 포함했기 때문이니, 이것이 일시무시(一始無始)인데, 일(一)이 무시(無始)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태초에 무시(無始)로부터 먼저 이수(理數)가 있어, 일양(一陽)과 이음(二陰)이 도(道)가 된 것입니다. 이것이 물질(物質)의 도(道)입니다. 태극(太極) 이상(以上)의 것을 말하면, 이 도(道)는 이(理)와 기(氣)를 초월하기 때문에 그 신(神)의 오묘함을 증명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만물이 다 도(道)에서 나왔고 또 도에 들어가니, 도의 근원은 하늘(天)에서 나왔고, 사람의 근원은 신조(神祖)에서 나왔으니, 하늘과 신조(神祖)는 그 사이가 밀접하여 하늘이 곧 신조입니다. 바라옵기는, 신사신전(神社神殿)을 세워, 백성으로 하여금 경건하고 사모하게 하므로 신앙(信仰)하게 하여 만고(萬古)의 기본을 잊지 않는 도(道)를 삼으소서.”하니 임금께서 그렇게 하겠다 하시고 천하에 조서를 내려 삼신전(三神殿)을 세우고, 환인․환웅․단군의 삼신위(三神位)를 봉안(奉安)하여 백성들에게 경배하게 하였다.

 

38년에 나함연(邏閻蓮)이 아뢰기를 “신이 지난 해에 남함지(南閻地)에 건너가서 범경빈(梵經賓)을 만나 말을 들으니 이 쪽은 고해(苦海) 저 쪽은 극락(極樂)인데, 고해에서 극락에 가고자 하면 반드시 먼저 업혹계(業惑界)를 해탈(解脫)한 후에야 거기에 이를 수 있다 하고, 이런 도(道)를 알지 못하면 공연히 어지러운 생각과 망상이 일어난다 합니다. 대개 모든 형상이 아무것도 없이 비어 있어, 늘지도 줄지도 않으며 생기지도 없어지지도 않기 때문에, 수상행식(受想行識)도 없고 탐하는 것과 눈을 부릅뜸과 어리석음도 없으며, 색(色)과 소리(聲)와 향기(香)와 맛(味)과 찔림(觸)과 느낌(感)의 육욕(六慾)도 없고, 태어나고 늙고 병에 걸려 죽는 사고(四苦)를 해탈하면, 이것이 더없는 올바른 깨달음이라 하였습니다. 제가 가만히 거듭 생각해 보니 이것은 진실한 공부인데, 마음이 곁길로 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니, 이치에 가까운 것이 많습니다. 남합니(南閻地)의 성인(聖人)이 있는데 이 말을 지은 듯 하오니, 원하옵기는, 전하께서 사자를 남함지에 보내시어 그 도덕과 정치를 시찰하고 와서, 나쁜 점은 버리고 좋은 점은 본받아 백성을 다스리는 데 시행한다면, 나라가 문명하고 진보하는 데 좋은 길이 될까 합니다.”하였다.

 

임금께서 이르기를 “사람의 도(道)에 있어서의 진리는 하나이며, 두 점 간의 직선도 하나이다. 그 나라와 민족은 설 달라도 나라를 다스려 천하를 태평하게 하는 바른 도리는 하나이다. 내가 일찍이 선제(先帝)에게 지켜야 될 바를 물으니, 생각이 맑고(惟精) 오직 하나 (唯一)가 되어 그 중추(中樞)를 잡아야 하는 것은 바른 것(正)을 일(矢)지 않는 것이라 하셨는데, 하필이면 다른 나라의 도덕과 정치를 빌리겠는가. 새와 짐승은 땅에 살고 고기는 물에서 사는 것이니, 물고기를 육지로 옮겨 놓으면 오래 살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 나라가 다른 나라를 본받고자 하면 반드시 나라가 오래가지 못하리라.”하시니, 모든 신하들이 감히 다시 말하지 못하였다.

 

58년에 임금께서 승하하시니 백성들이 슬피울었다. 이 날 일식(日蝕)이 있었고 누런 안개(黃霧)가 사방에 끼어 짐승 떼가 산꼭대기에서 어지러이 울부짖으니, 하늘과 사람과 만물이 함께 슬퍼한다 하였다. 태자가 왕위에 오르니 제 3세 단제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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