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11일 목요일

광주 지역, 하나의 뿌리를 가진 다섯 개 교회(양림교회 3개, 광주제일교회, 광주중앙교회)

광주 지역, 하나의 뿌리를 가진 다섯 개 교회


[1] 하나의 교회로 출발하다

1904, 광주지역의 교회는 19041225일에 첫 예배를 드리면서 시작되었다.
 
1919, 남문밖에 교회당을 세우고 입당하면서 남문밖교회로 불리게 되었다
  • 광주북문안교회 예배당을 해체하여 남문 밖 금정 101번지에 옮겨짓고, 교회이름을 금정교회(錦町敎會)로 개명하다

[2] 남문밖교회와 북문밖교회로 분리되다
 
1921, 북문밖에서 교회에 참석하던 교인들이 최흥종 장로를 목사로 하여 북문밖교회’(현 광주중앙교회)를 세웠다
  • 광주북문밖교회(, 광주중앙교회)를 분립하다 광주북문안교회가 북문 밖에 사는 교인들을 위해 1917년부터 명치정(현 금남로)의 여관(한옥)을 사서 운영해오던 기도처에서 광주북문밖교회 설립예배를 드리다.

[3] 남문밖교회, 두 교회로 분리되다
 
1924, 남문밖교회(금정교회)는 다음과 같이 두 교회(양림교회, 금정교회)로 분리되었다.
  • 전라노회 결의로 남문밖 교회가 양림교회와 금정교회로 양분되다.
  • 양림교회는 김창국 목사와 홍우종, 장맹섭, 김강, 최병준 장로와 교우 300여명의 다수교인들이 오웬 기념각에서 예배를 드리고,
  • 금정교회는 황상호 장로와 10여명의 교인들이 남아 북문밖교회 최흥종 목사와 이득주 장로를 청빙 예배를 드림. [금정교회는 1948년에 남부교회로’, 1952년에 광주제일교회로 이름을 변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4] 1차 양림교회 분리
 
1953, 양림교회는 기장과 예장이 분열될 당시에 두 개의 양림교회로 나뉘게 되었다.
  • 김재준 목사를 지지한 신자들은 기존 예배당에 남아 한국기독교장로회 양림교회로
  • 김재준 목사를 반대한 신자들은 오웬 기념각에 모여 대한예수교장로회 양림교회로

[5] 2차 양림교회 분리
 
1961, 대한예수교장로회 양림교회는 1961년에 다시 한 번 두 개의 양림교회로 나뉘게 되었다.
  • 한경직, 전필순, 김형모, 계일승, 안광국 등 연동파를 지지한 장동진 목사와 장로교인들은 교회당에서(통합양림교회)
  • 박형룡, 명신홍, 조동진, 정규오 등 승동파를 지지한 박두복 장로와 다수 교인들은 오기원 기념각에서(합동양림교회)
 
이상과 같이 광주에서는 다섯 개 교회 즉 광주양림교회(기장), 광주양림교회(예장통합), 광주양림교회(예장합동), 광주제일교회(예장통합), 광주중앙교회(예장합동)가 하나의 뿌리를 갖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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