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후 [金鍵厚, 1883~?]
장로교 목사
【1883년】
- 출생하였다.
【1916년】
- 평양 장로회신학교를 졸업하였다(제9회).
- 8월에 목사안수를 받았다.
- 평남 강서군 초리면 일대에서 교역에 전념했고, 특히 강서군의 고챙이 마을에 있는 고창교회(高昌敎會)에서도 시무하였다.
- 평양 동대원리에 1897년 세워진 ‘동대원교회’에서 시무하였다.
【1919년】
- 평남 강서군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 1919년 3월 5일 평안남도 강서군 초리면 보신학교 만세운동
1919년 3월 5일 밤 초리면 이로리(伊老里) 기독교계 보신학교에서 기도회가 열릴 것이라는 소식을 듣고 송호리 주민들과 함께 그곳으로 갔다. 약 40여 명이 모이자 목사 김건후(金鍵厚)가 군중 앞으로 나와 기도회를 주도하였다. 그는 파리강화회의의 내용을 설명하며 “조선도 마침내 독립국의 복을 누리게 되었다”고 말하였다. 분위기가 고조되자 김건후는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하였다. 이때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여러 번 외친 뒤 집으로 돌아왔다. 이틀 후 보신학교 기도회에서 독립 만세를 부른 이유로 송호리 주민 20여 명과 함께 붙잡혔다.
[공훈전자사료관 : 박달해(朴達海)]
【1929년】
- 9월, 새문안교회에서 열린 제18회 장로회 총회에 ‘농민생활사 대표’로 참석하여 언권을 허락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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