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리영 [桂利榮, 1881~?]
장로교 목사.
【1881년】
- 출생하였다.
【1913년】
- 평양 장로회신학교를 졸업하였다(제6회).
- 평북노회에서 목사안수를 받고 선천 가물남교회(嘉物南敎會)ㆍ은암교회(殷岩敎會)에서 시무하였다.
- 가물남교회는 평안북도 선천군 수청면(水淸面) 가물남동에 있었는데, 동리 이름을 따서 교회 이름이 가물남교회라고 하였다. 가물남동은 “만물이 아름다운, 살기 좋은 남쪽 마을”이라는 뜻이다. 가물남교회는 선천읍교회에 출석하던 정용경(鄭用儆) 부인, 박신원(朴信元) 등 교인들이 1905년에 세웠다. 초기에는 계리영(桂利榮) 목사가 가물남교회를 담임하여 교회당을 신축하고 교회를 크게 부흥시켰다. 계 목사는 만세운동을 지도했다는 죄목으로 일제의 미움을 받아 국외로 추방을 당했다. 그 뒤에 이창호(李昌浩) 조사, 백영삼(白泳三) 조사 등이 교회를 돌보다가, 1921년 3월에 최희준(崔熙俊) 목사가 부임했다.
【1919년】
- 3ㆍ1만세사건으로 일제에 의해 강제 면직당하고 국외로 추방되었다.
【1921년】
- 평북노회에 의해 만주 길림에 전도사로 파송되었다.
【1922년】
- 남만노회로 옮겨 왕책문(王柵門) 지방 목사로 시무하였다.
【1923년】
- 무단 환국(還國)한 사건으로 한달간 정직(停職)되기도 하였다.
【1940년】
- 용천군 용봉(龍峰)교회에서 시무하였다.
【기타】
- 계리영 목사의 동생 계인영의 아들은 계성언 장로이다. 계성언 장로는 독립유공자로 대전 국립묘지에 안장돼 있다.
- 계성언 장로의 아들이 계준혁 장로이다. 계준혁 장로는 종로 5가 한국기독교연합회관에 자리한 샬롬스튜디오를 운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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