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12일 금요일

김경삼 [金敬三, 1872~1937] 장로교 목사

김경삼 [金敬三, 1872~1937]

장로교 목사
 
1872
  • 출생하였다.
 
1916
  • 평양 장로회신학교를 졸업하였다(9).
  • 6월에 목사안수를 받았다.
  • 첫 목회를 대동군에 있는 칠리교회(七里敎會, 하리교회라고도 함)에서 시작하였다.
    하리교회는 1899년 세워졌으며 하리교회를 세우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한 홍신길의 아들 홍성준이 1914년에 하리교회의 초대장로가 되었다. 하리교회 장로들 중에 강돈욱 장로는 김일성의 외조부로 김일성의 어머니 강반석의 아버지이다. 하리교회에서는 창덕학교(彰德學校)를 세웠는데 강돈욱 장로가 창덕학교를 세우는 일을 담당했고 교장을 맡았다. 하리교회 장로들 가운데 강기수, 강관욱 같은 이들도 김일성의 외가 친척이다. 김일성의 외종조부이고, 김일성이 창덕학교에 다닐 때 담임이었던 강량욱(康良煜)도 한동안은 하리교회에 출석하였다. 조선그리스도교련맹 위원장을 지내다가 세상을 떠난 강영섭(康永燮) 목사는 강량욱 목사의 둘째 아들이다.
  • 경창리교회(景昌里敎會)ㆍ기림리교회(箕林里敎會)에서 시무하였다. 목회를 하는 동안 그는 15일 혹은 40일동안의 금식기도를 드렸으며, 신유의 은사를 받아 부흥회적 기적을 낳기도 하였다.
 
1920
  • 송산교회에 부임하였다.
    김일성의 회고록인 세기와 더불어1권을 보면 김일성 자신이 송산교회에 다녔다고 말한 것이 기록되어 있다.
    “어른들이 례배당에 갈 때면 아이들도 따라 가서 례배를 보군 하였다. 신자의 대렬을 늘이려고 례배당측에서는 이따금씩 아이들에게 사탕도 주고 공책도 주었다. 아이들은 그것을 받아보는 멋에 일요일만 되면 패를 지어 송산으로 밀려 가군 하였다. 나도 처음에는 호기심이 나서 동무들과 함께 가끔 송산으로 다니였다.” 그 다음에는 나는 어머니가 례배당에 갈 때에만 송산으로 다니였다라고 하고서 엄숙한 종교의식과 목사의 단조로운 설교에 싫증을 느껴 례배당에 다니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길게 기록해 놓았다.
 
1932
  • 평양기도단에 찬성하는 입장을 취하여(기도단의 집회에서 방언 통역을 하였음) 이단징계 처분을 받고 6개월간 노회로부터 정직(停職)처분을 받고 당시 시무하던 기림리교회의 목회를 중단한 채 시골로 내려가 농촌목회를 하기도 하였다. [1932년 평양노회가 한준명, 이용도, 백남주, 황국주, 김경삼 등을 조사 치리할 것을 결의하였다]
  • 그는 한때 일제에 의해 옥고를 치를 때에도 옥중에서 계시록을 암송하며 신앙의 열의에 변함이 없었다.
 
1937
  • 만년에 평양노회 소속으로 구동창교회(舊東倉敎會)에서 시무하다가 별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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