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준(金熙俊, 1869-1946)】
성공회 한국인 첫 사제.
【1869년】
- 1869년 12월 22일 강화에서 아버지는 김석구(金錫龜)와 어머니는 주씨(朱氏)의 장남으로 출생하였다.
【1897년】
- 상업(商業)에 종사하다가 1897년 11월 7일 인천 성미가엘성당에서 영세와 견진을 받고 성공회 신도가 되어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1898년】
- 통진에 사는 배인옥의 2녀 배안나(裵安羅, 1877년 11월 30일생)와 결혼하였다.
- 11월 15일, 장녀 김루시(金縷是)가 강화에서 출생했다.
【1899년】
- 강화읍성당 건축시 조마가신부를 도와 공사감독을 맡았다.
【1901년】
- 1월 1일, 전도사로 강화도 일대를 전도하기 시작하였다.
【1906년】
- 1월 7일, 장남 김연성(金淵晟)이 출생하였다.
【1908년】
- 2월에는 황해도 백천교회 전도사로 가서 진명학교를 설립하여 교장이 되었다.
【1910년】
- 3월 22일, 차남 김연화(金淵和)가 출생하였다.
【1913년】
- 1월 13일, 차녀인 김유시(金有時)가 출생하였다.
【1914년】
- 1월 강화 미가엘수도원에 입학(入學)하여 사제(司祭)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았다.
- 6월 7일 부제(副祭)서품을 받고 진천교회에서 시무했는데, 처(妻)인 배안나(裵安羅)가 소천하였다. 그러자 맏딸인 루시가 서울에서의 학업을 그만두고 아버지의 성업(聖業)을 돕기 시작했다.
【1915년】
- 12월 21일에 사제서품을 받고 음성교회에서 시무했다.
【1918년】
- 4월 29일에는 진천교회 관할사제가 되었다.
【1923년】
- 2월 21일 온수리교회 관할사제로 옮겼다.
- 10월 충남 천안 부대리교회 관할사제가 되었다.
【1925년】
- 5월 강화읍교회 관할사제로 강화에 돌아와서 고향의 교회를 위해 열심히 일했다.
【1933년】
- 장녀인 김루시(金縷是)가 1933년 2월 22일 세상을 떠났다.
【1934년】
- 1934년 10월 1일 관할사제직을 그만두고 강화북부전도구 보좌사제로 석포리교회를 담당하였다.
【1938년】
- 6월 30일 고령(高齡)으로 은퇴(隱退)했다.
【1946년】
- 5월 11일 77세를 일기로 별세(別世)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