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0월 8일 일요일

[한국전쟁] 거창 주민 학살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

거창 주민 학살 사건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서 여론이 안좋아지자 정부 차원에서 진상조사를 해야만 했다.
 

# 진상조사에 적극적인 김준연(법무부장관), 조병옥(내무부장관)

 
국방부, 법무부, 내무부의 조사 결과는 제각각이었다. 학살자 수에 대해 국방부는 225, 법무부는 275년 내무부는 350이라고 보고했다. 법무부장관은 김준연, 내무부장관은 조병옥이었다. 민국당 출신 조병옥과 김준연은 전쟁 발발과 동시에 거국내각의 명분으로 입각했었다.
 
당시 민국당은 내각제 개헌을 주장하고 있었던 바, 이승만은 조병옥과 김준연이 진상 조사에 적극적이며 이 사건을 계속 거론하는 이유가 신성모는 물론 자신까지 궁지에 몰아넣기 위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 이승만의 나름대로 비상한 대책 : 3부 장관 사임

 
이 사건은 뉴욕타임스등 외국 언론의 보도로 세계에 널리 알려진데다 이미 일어난 국민방위군 사건에 대한 국회의 중간 보고서가 425일로 예정돼 있던 터라, 이승만은 424일 국무회의를 소집하고선 자기 나름대론 비상한 대책을 발표하였다.
 
정부 장관들을 서로 협력해서 일을 해야 하는 법이오. 거창 사건을 두고 내무ㆍ법무ㆍ국방 3부 장관들이 서로 협력하지 아니한 까닭에 대한민국의 체면이 손상당했소. 그러므로 3부 장관은 사임해야겠소.”
 

# 조병옥, 사임 전 국무위원들에게 남긴 발언

 
평소 이승만을 선생님이라고 불러 온 조병옥은 선생님, 저는 즉시 사임하겠습니다만, 국무위원들에게 한마디를 남기고 사임하려는 데 발언해도 좋겠습니까라고 허락을 얻은 뒤 이렇게 말했다.
 
정부 12부 중 11부 장관은 서로 협력해서 일을 잘하고 있습니다. 다만 신성모 국방부장관만이 협력을 않는 실정입니다. 이번 거창 사건도 순전히 있는 사실을 없다고 복명서를 꾸며 대통령께 보고하여 조사 시일을 끌었던 까닭에 국가의 위신이 손상되었으며 거창 사건을 발생케 한 장본인이 군인인 까닭에 그 책임은 오로지 신 국방부장관에 있다고 나는 확신합니다.”
 

# 조병옥의 내무부장관 사표

 
조병옥은 이 말을 하고 국무회의장을 나가 사표를 쓰고 떠났다. 장문의 사표였다.
 
본인이 대통령의 명에 의거해 사표를 제출하는 바 각하를 보좌하던 국무위원의 1인으로서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충언을 올리고 내무부장관의 자리를 물러납니다. 첫째 행정은 제도상으로 운영되어야 할 것이며 개인의 의욕으로 움직여서는 안 됩니다. 둘째 정치는 재인(在人)이니 양심적이고 유능한 인재를 등용하십시오. 셋째 대한민국은 민주국가로 탄생했으므로 반드시 민주국가로 성장 발전하여야 합니다. 우리 대한민국이 일보라도 민주주의로부터 후퇴할 때에는 자유세계로부터 고립무원의 상태에 빠지고 말 것입니다.”
 

# 신성모 국방부장관의 꼼수, 계략

 
김준연도 즉시 사직서를 냈지만, 신성모는 미적거리며 자신의 구명 연판장을 돌리게 하였다. 3군총사령관을 비롯하여 각 일선 사단장급이 신성모의 국방부장관 유임을 진정하였고, 신성모는 계속 군지휘관회의를 주재하였다.
 
신성모는 김종원에게 국회 조사단의 현지 접근을 막으라는 지시까지 내렸다. 김종원은 예하 장병을 공비로 가장시켜 국회 조사단에게 위협사격을 가해 내쫓는 짓까지 저질렀다. 이것이 정치 문제가 되고 5월 들어 진상이 밝혀졌지만, 이승만은 이들을 계속 비호하였다.
 

# 부통령 이시영, 국회에 사의를 표함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정부에 몸담고 있는 자체를 수치스럽게 여길 일이었다. 59부통령 이시영은 이승만의 파탄을 비판하는 동시에 자신의 무능과 자괴감 등을 담은 국민에게 고함이란 제목의 성명서를 발표하고 국회에 사의를 표했다.
 
탐관오리는 도처에 발호하여 국민의 신앙을 실추케 하고 정부의 위신을 손상케 하며 신생 대한민국의 장래에 암영을 던져주고, 누가 참다운 애국자인지 흑백과 옥석을 가릴 수가 없게 되었으니, 내 어찌 그 책임을 통감하지 않을 것인가. 그러한 나인지라 이번에 부통령직을 사임함으로써 이 대통령에게 보좌를 다하지 못한 부끄러움을 씻으려 하며, 과거 3년 동안 아무런 공헌이 없었음을 사과하는 동시에 일개 포의(布衣, 벼슬이 없는 선비)로 돌아가 국민과 더불어 고락과 생사를 같이하려 한다. …… 선량 어려분에게 부탁하고자 하는 것은 국정감사를 더욱 철저히 하여 이도(吏道, 벼슬아치의 도리)에 어긋난 관료들을 적발ㆍ규탄하되, 모든 부정 사건에 적극적 조치를 취해 국민의 의혹을 석연히 풀어주기 바란다.”
 
국회에선 재석 131명 중 115명이 사임에 반대해 사임서를 반려했지만 이시영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국회의 각파 대표들은 이승만을 방문해 이시영의 사임을 만류해줄 것을 요청하였는데, 이승만은 부통령이 현 정부를 만족하게 생각지 않아서 나가겠다는데 내가 어떻게 말리느냐며 거절했다.
 
515일 국회는 제2대 부통령으로 김성수를 선출했다. 김성수는 78(51%)를 얻어 당선되었다. (사임을 원한 이시영에게도 73표가 나왔다)
 
[강준만, 한국 현대사 산책 1950년대편 제1, 215-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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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에서는 양민학살에 대해서 지시한 것으로 알려진 조병옥은 한국전쟁이 일어난 후 거창 양민학살에 대해서는 단호한 모습을 보여준다. 제주와 거창의 차이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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