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 최초의 키스신
1954년엔 18편의 영화가 제작되었는데, 최대의 화제작은 한형모가 감독한 『운명의 손』이었다. 이 영화는 간첩인 카바레 댄서가 신분을 위장한 특무부대 대위와 사랑을 계기로 전향한다는 내용의 1시간 30분짜리 반공물이었지만, 화제가 된 건 이 영화에 한국 최초로 키스신이 소개되었다는 점이었다.
키스신이라고 해봤자 입술만 살짝 댄 5~6초짜리로 여주인공은 입술에 셀룰로이드를 붙이고 촬영에 임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반향은 컸다. 김화에 따르면,
“당시로서는 쇼킹이요, 화제였다. 그 무렵 남녀간의 애정 표현은 손을 잡거나 남녀가 가볍게 포옹하는 게 고작이었는데 이 영화에서는 입술과 입술이 맞닿은 키스를 한 것이다. 당시로서는 국산 영화 애정 신의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환이었다.”
남녀 주인공은 이향(1914-1991)과 윤인자(1923-2012)였는데, 영화 밖의 세상에서 실제로 윤인자의 남편이 남자 배우를 죽이겠다고 쫓아다니기까지 했다니 그 정도의 키스신이나마 당시 관객들에겐 ‘쇼킹’하긴 했던 모양이다. 이 장면을 찍기 위해 감독은 1주일간 윤인자를 설득했다고 한다.
이향(본명 이근식)이 바로 문희준의 외할아버지이며, 1991년에 알츠하이머를 앓다 숨을 거뒀다. 그는 또 이완용 전문 배우로도 알려져 있다. 1959년 신상옥 감독의 《독립협회와 청년 리승만》, 전창근 감독의 《고종황제와 의사 안중근》, 1966년 이규웅 감독의 《마지막 황후 윤비》, 1972년 주동진 감독의 《의사 안중근》 등 총 6편의 영화에서 이완용을 연기했다.
작품이 담고 있고 투철한 반공 메시지 덕분에 이 쇼킹한 장면이 검열에서 문제가 되지 않았다는 시각도 있다.
- 강준만, 『한국 현대사 산책ㆍ1950년대편 제2권』, 231쪽
댓글 없음:
댓글 쓰기
참고: 블로그의 회원만 댓글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