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0월 27일 금요일

임시정부의 김일성 암살 미수 사건 [1946년 3월 1일]

소련 측은 194612, 4, 5일의 3차에 걸쳐 조만식에게 새로 수립될 정부의 대통령 자리까지 제시하면서 모스크바 협정을 지지할 것을 요청했다.
 

# 조만식을 설득하는 소련측과 북한의 지도부

 
김일성도 12월 말 빈번하게 조만식을 방문하였으며, 조만식의 오랜 제자인 최용건은 19번을 찾아가 설득하였지만 조만식은 끝내 모스크바 의정서에 대한 지지를 거부하였다. 조만식은 결국 15일부터 연금 상태에 처하게 되었다.
 

# 조만식과 김구의 비교

 
[박명림은 남한에서 조만식에 비유될 수 있는 사람은 김구일 것이나, “이승만의 반탁이 반공과 연결된 것이었다면 김구의 반탁은 임정 헤게모니 장악과 직결된 것이었다고 지적하면서 조만식과 김구의 차이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정치적 부활과 생존의 무기로 활용하려 한 한민당과 친일파를 제외하더라도 이승만의 것이 반공주의와, 김구의 것이 정권장악과 연계된 것이라면 반탁민족주의의 전형은 조만식이 가장 가까웠다. 그는 대통령을 제의받았음에도 탁치를 거부하였다. 김구가 임정의 법통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탁치를 거부하였을는지에 대해서 우리는 확언할 수 없다. 당시의 자료들이 말하는 바에 따를 때 김구는 임정 법통을 인정받았다면 탁치 결사반대를 거둬들였을 것이다.”]
 

#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 사실상의 단독 정부

 
조선 점령군사령부는 28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를 발족시켜 북한에서 사실상의 단독 정부로 기능케 했다. 위원장에는 김일성, 부위원장에는 김두봉, 서기장에는 강양욱(김일성의 외할아버지의 6촌 동생으로 목사)이 선출되었다.
 

# 김일성에 대한 폭탄테러 미수사건

 
194631,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는 평양역 앞에서 31운동 27주년 기념식을 열었는데, 여기서 김일성에 대한 폭탄테러 미수사건이 일어났다. 집회가 진행되는 도중 연단을 향해 수류탄이 던져졌는데, 집회의 경비를 담당한 소련군 부대장 노비첸코 소위가 수류탄을 되잡아 던지려다가 그의 손에서 폭발한 것이다. 노비첸코는 이 폭발로 오른팔이 잘려나가고 한쪽 눈을 다치는 중상을 입었지만, 김일성은 무사했다.
 

# 임시정부와 백의사

 
이 테러 미수사건은 임시정부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던 염동진이 이끄는 백의사(白衣社)라고 하는 전문 테러단체가 김구와 신익희의 지시에 따라 저지른 것이었다. 백의사는 3명의 테러 요원을 평양에 보냈는데, 그날 폭탄을 던진 사람은 남한에서 올라가나 김형집이라는 열여덟 살 소년이었다. 나머지 요원들은 최용건과 김책의 집에도 폭탄을 던졌으나 성공하지 못했고, 강양욱의 집에 던진 폭탄은 강양욱의 아들과 딸을 죽게 만들었다.
 
암살단은 임정 내무부장(신익희) 명의로 215일에 발급된 승차편의 공여에 관한 의뢰장과 신임장을 갖고 있었다. 이 테러가 임정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는 증거를 확보한 북한은 김구와 더불어 이승만을 격렬하게 비난하였다.
 

# 김구와 이승만을 비난하는 북한측

 
만고에 용서할 수 없는, 조선민족을 조선놈 자기들 손으로 살해하는 팟쇼테로강도단의 철천의 죄악은 조선민족과 국가를 사랑하는 인민의 가슴속에 영영히 씻을 수 없는 슬픔과 원한과 분노를 남기고 있다. 팟쇼테로강도단은 어디서 왔으며 누구의 도당들이냐?”
 
북한은 김구와 이승만을 조선 봉건세력과 외국 팟쇼세력과 제국주의 잔재세력 친일파의 삼위일체이자 이완용을 배운 조선의 매국노로 규정짓는 강한 적개심을 드러냈다.
 
- 강준만, 한국 현대사 산책ㆍ1940년대편 제1], 228-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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