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2월 8일 월요일

명나라 수군 제독 진린이 명나라 만력제에게 이순신의 등용을 요청하다.

명나라 수군 제독 진린이 명나라 만력제에게 이순신의 등용을 요청하다.

 

임진왜란이 발발하고 육지에서 신나게 털리던 조선은 이순신의 수군이 남해의 제해권을 장악하면서 반격의 발판을 마련하게 됩니다. 의주까지 튀었던 선조가 애걸복걸해서 명나라가 조선을 도우러 오지만 평양성 탈환 이후에 이렇다할 전과를 올리지 못하고 왜와 화친한답시고 시간을 끌었고, 결국 정유재란으로 왜는 다시 조선을 공격하게 됩니다. 이미 원균이 칠천량에서 조선 수군을 수장시키면서 바다도 안전하지 못하다는 인식으로 바보같은 선조는 수군을 포기하고 육군과 합류하라고 합니다. 이때 신에게는 12척의 배가 있다며 싸울 의지를 보여준 이순신은 명량에서 왜를 격파하면서 다시금 바다에서 제해권을 회복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명나라의 수군이 조선으로 파견되는데 명나라 수군 제독은 진린이라는 사람으로 나름 실력은 있었지만 인성은 개쓰레기급이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진린이 이순신과 합류한다는 것은 오히려 이순신에게는 더욱 힘겨운 상황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진린이 합류했을 때, 왜적은 아직 지휘체계가 혼란스러운 틈을 타서 도도 다카토라가 약 100여척의 2만 병력으로 쳐들어 오게 됩니다. 이때 진린은 합류한 지 이틀밖에 안되기 때문에 이순신이 단독으로 출정하고 진린은 관전모드로 참전하게 됩니다. 일방적인 이순신의 승리였는데, 이 승리의 전과를 진린에게 넘겨주기도 하면서 진린의 마음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명나라 군대가 조선군을 깔보고 함부로 하는 것에 대해서 백성들과 함께 본진에서 떠나려는 척 하면서 명 해군의 지휘권까지 넘겨받아서 명나라 병사들에게도 엄격한 군율을 적용하였습니다.

 

고수는 고수를 알아보고, 선수는 선수를 알아본다고 진린은 이후 이순신에게 감화되어 이순신에게 함께 명나라로 가서 살자고 조르기도 하였습니다. 노량해전에서 적 왜선에게 포위된 진린을 구하다가 전사한 이순신을 보고 어른께서 오셔서 나를 구해주었는데 이 무슨 일이란 말입니까?”라며 통곡했고, 당시 이순신의 지휘 아래에서 대부분의 명군과는 달리 꽤나 엄격한 군율 때문에 곤욕을 치렀던 명나라 해군 장졸들도 눈물을 흘렸다고 전해집니다.

 

진린은 명나라 만력제에게 이순신을 명나라 군대를 통솔한다면 북쪽의 오랑캐를 제압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며 이순신의 등용을 요청하기고 했다고 합니다. 실제 사료인지는 모르지만, 일본의 역사서에 언급되어 있고, 완도 신문 기사로 나와 있어 소개합니다.

 

황제폐하 이곳 조선에서 전란이 끝나면 조선의 왕에게 명을 내리시어 조선국통제사 이순신을 요동으로 오라하게 하소서. ()이 본 이순신은 그 지략이 매우 뛰어날 뿐만 아니라 그 성품과 또한 장수로 지녀야할 품덕을 고루 지닌 바 만일 조선수군통제사 이순신을 황제폐하께서 귀히 여기신다면 우리 명()국의 화근인 저 오랑케(훗날 청)를 견제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저 오랑케의 땅 모두를 우리의 명()국으로 귀속시킬 수 있을 것이옵니다. 혹여 황제폐하께서 통제사 이순신의 장수됨을 걱정하신다면 신()이 간청하옵건데 통제사 이순신은 전란이 일어나고 수년간 수십 차례의 전투에서 단 한번도 패하지 않았음에도 조선의 국왕은 통제사 이순신을 업신여기며 또한 조정대신들 또한 이순신의 공적에 질투를 하여 수없이 이간질과 모함을 하였으며, 급기야는 통제사의 충의를 의심하여 결국에는 그를 조선수군통제사 지위를 빼앗아 백의종군에 임하게 하였나이다. 허나 통제사 이순신은 그러한 모함과 멸시에도 굴하지 않고 국왕에게 충의를 보였으니 이 어찌 장수가 지녀야할 덕목이라 하지 않을 수 있겠나이까.”

 

조선 국왕은 원균에게 조선통제사 지위권을 주었으나 그 원균이 자만심으로 인하여 수백 척에 달한 함대를 전멸케 하였고 단 10여 척만이 남았으며 당황한 조선국왕은 이순신을 다시 불러 조선수군통제사에 봉했으나, 이순신은 단 한번의 불평 없이 충의를 보여 10여척의 함대로 수백척의 왜선을 통쾌하게도 격파하였나이다. 허나 조선의 국왕과 조정대신들은 아직도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또다시 통제사 이순신을 업신여기고 있나이다. 만일 전란이 끝이 난다면 통제사 이순신의 그 목숨은 바로 풍전등화가 될 것이 뻔하며, 조정대신들과 국왕은 반드시 통제사 이순신을 해하려고 할 것입니다. 황제폐하 바라옵건데 통제사 이순신의 목숨을 구명해 주소서. 통제사 이순신을 황제폐하의 신하로 두소서. 황제폐하께서 통제사 이순신에게 덕을 베푸신다면 통제사 이순신 분명히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황제 폐하께 충()을 다할 것이옵니다. 부디 통제사 이순신을 거두시어 저 북쪽의 오랑케를 견제케 하소서.”

 

분명 명나라가 조선을 도와주기 위해 참전한 것은 선조의 애절한 노력의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조는 전란이 끝난 후 전란을 극복한 최고 수훈을 자신이라고 선언하는 (일종의 정신승리) 어처구니 없는 결정을 내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참전한 명의 군대는 오히려 백성들에게는 왜병들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한 명나라 장군에게 간, 쓸개를 따 떼어주고 아부하고 굽신거리는 선조와는 달리 이순신은 명나라 해군의 지휘권까지 장악하고 진린과 명나라 수군의 마음까지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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