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3 세 아홀(阿忽)
―75년간 재위―
첫 해에 맏아들 연나(延那)를 태자로 삼고, 오한(吳漢)으로 태자태부를 삼았다.
4년에 은 나라 사절이 왔다.
5년에 중신회의를 열고 영고탑(寧古塔)으로 도읍을 옮길 것을 토의하였다.
12년에 돌궐(突厥)[주:突厥-터키계 사람들이 세운 나라] 사절이 왔는데 후하게 대접하였다.
19년에 신독(神督)의 아들이 쳐들어왔으나, 아덕(亞德)이 그의 목을 베었다.
25년에 송화강(松花江)연안의 각 공장을 수리하였다.
32년에 군관학교(軍官學校)를 설립하고, 병학(兵學)을 가르쳤다.
53년에 임금께서 영고탑을 친히 시찰하시고, 정전법(井田法)[주:井田法-고대사회에 잇었던 전제도(田制度)]을 가르치셨다.
61년에 영고탑을 다시 수리하였다.
70년에 크게 가물어 창고에 쌓아두었던 곡식을 풀어 백성을 구제하였다.
75년에 훌륭한 재상인 아덕(亞德)이 왕을 보좌하니, 나라가 태평해졌다.
76년에 임금께서 승하하시고, 태자가 왕위에 오르니 제24세 단제시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
참고: 블로그의 회원만 댓글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