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월 29일 금요일

[단기고사] 제1편 전단군조선 : 제17세 여을

 제 17 세 여을(余乙)

―68년간 재위―

 

첫 해에 맏아들 동엄(冬嚴)을 태자로 삼았다.

 

3년에 엄년(嚴年)이 쳐들어와, 군사를 보내어 쳐서 멸하였다.

 

6년에 큰 흉년이 들어 쌓아두었던 곡식(太倉粟)을 풀어 백성들을 구제하였다.

 

7년에 임금께서 송술(宋術)에게 천하에서 제일 높은 선비는 누구냐고 물으시니, “세상에서 높은 선비가 없고 오직 고수노(高叟老) 될까 하나이다.”하였다. 임금께서 “내가 장차 불러 문의하리라.”하셨다.

 

10년 봄에 임금께서 고수노를 불러 정사(政事)를 물으니, 고수노는 대답하기를 “정사는 백성을 다스리는 도(道)입니다. 비록 한 정부 밑에 있다 해도 지방의 멀고 가까움에 따라 서로 달라, 백성의 문명과 미개한 정도가 같지 않으니 일률적으로 다스리기는 어렵습니다.

 

가령, 젖먹이는 젖이 아니면 키울 수 없고 어른은 밥이 아니면 배부르지 않으며, 노인은 고기가 아니면 영양이 부족하고, 병자는 약이 아니면 치료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각자의 정도에 합당한 정치를 하는 것이 나라를 다스려 천하를 태평하게 하는 술법(術法)입니다.

 

대체로 정치는 백성을 교도(敎導)하는 일이며 법률은 백성을 징벌하여 다스리는 것이니, 먼저 가르치지 않고 벌한다면 이것은 백성을 그물질 하는 것과 같아서, 어진이가 왕위에 있으면서 어찌 백성을 법만으로 다스리겠습니까.

 

교도하는 방법은 대략 몇 가지 있습니다. 낮은 백성은 먹고 사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항상 먹고 입는 것을 풍족하게 한 후에 예의를 가르치며 법도로써 이끌어야 하고, 서로 도와 순종하는 것이 마치 물이 낮은데로 흐르는 것과 같아서 산에는 도적이 없고 길에 물건이 떨어져도 줍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은 백성을 위한 정치입니다. 만일 백성이 늘 할 수 있는 생업(生業)이 없으면 항심(恒心)[주:恒心-늘 지닐 수 잇는 떳떳한 마음]이 없어지고, 항심이 없으면 사기(詐欺)와 도적을 마음대로 하게 됩니다. 배가 고파도 먹을 것이 없고, 추워도 입을 옷이 없으면 아무리 자비로운 아버지일지라도 자식을 기를 수 없는데, 군주(君主)가 어떻게 그 백성을 다스리겠습니까. 옛 글에 창고에 곡식이 가득 차야 예절을 아고, 옷과 먹을 것이 풍족해야 영광과 욕됨을 안다 했습니다.

 

그러므로 옛 성제(聖帝)와 명왕(明王)은 생산을 늘려 백성을 잘 살게 하는 것을 정치의 요소로 삼고, 혹 세금을 낮추며 대부(貸賦)하여 주며, 물가와 물자를 알맞게 조정하며 가축을 빌려주는 등 해야 할 일을 게을리 하지 않는 것은, 국고(國庫)를 위해서가 아니라 백성의 생활을 풍족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백성으로 하여금 정신차리게 하기를, 마치 벌통에 꿀을 넣어주는 것과 같이하여 감동되게 하면 힘든 것도 잊고 생업에 매진하게 될 것이니, 이것은 상을 주지 않고도 백성을 움직이게 하는 방법입니다.

 

그 다음 상류층 백성들에게는 민권옹호정치(民權擁護政治)를 해야 합니다. 옷과 밥으로 만족하게 여기지 않고 민권옹호로써 그 인격을 존중하여 정치에 참여할 기회를 주어, 배운 학문과 평생의 포부를 펼치게 하면, 공적인 일에 용감히 나아가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바칠 날을 손꼽아 기다릴 것입니다.

 

또 장병(將兵)을 양성하는 데는 특권을 허락하여 백성으로 하여금 그 위풍을 우러러보게 하여 사모하는 마음을 기르고, 국립장관학교(國立將官學校)를 세워 백성들에게 수업하게 하면 이것은 국방을 위한 정치입니다.

 

또 높은 관직에 있는 자는, 그 지도의 책임이 자기에게 있는 줄 알고 백성을 사랑하는 것으로 임무를 삼으면, 이것은 나를 버리고 공(公)을 받드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군관군민(君官軍民)이 일치되어 행정이 이루어지면 곧 사위일체(四位一體)의 정치시니, 항상 대세와 환경에 따라 비록 사소한 차이가 있기는 하나, 국시(國是)를 잊지 않으면 빈틈없이 완전한 정치가 되는 것입니다.“하니, 임금께서 옳다하고, 국태사(國太師)로 삼았다.)

 

18년에 고수노(高叟老)가 정법원론(政法原論) 38편을 바치니 18만언(言)인데, 임금께서 크게 기뻐하시며 국미능로 하여금 학습하게 하였다.

 

20년에 일식(日蝕)이 있었다.

 

38년에 은(殷) 나라 사절이 오니, 사신을 보내어 사례하였다.

 

42년에 나라가 태평하고 무사하니 이 때에 동등한 나라는 은 나라 뿐이며, 그 외는 모두 따르며 복종하는 나라(臣服國)이며, 그 나머지는 봉건제후(封建諸侯)들이 다스리는 나라였다.

 

하루는 임금께서 조용히 고수노(高叟老)에게 묻기를 “인생 백년이 마치 갈매기의 틈을 잠깐 지나가는 것과 같고, 백발은 누구나 다 가는 길이니, 귀하고 천한 차이가 없는 것인데 사람이 홀연이 죽으면 어디로 가게 되는가.”하니, 고수노가 대답하기를 “사람은 천지간의 하나의 물(物)입니다. 물(物)은 양(量)이 무궁하여 시(時)가 그침이 없으며, 분(分)이 같지 않으며, 시작과 마침은 고정(固定)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뛰어난 슬기는 멀고 가까운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작아도 적다고 하지 않으며 커도 많다고 하지 않는 것은, 양9量)이 무궁하기 때문이며, 옛과 지금을 증명할 수 있기 때문에 아득히 멀어도 근심하지 않으며, 어두워도 빛이 차지 않음은 시(時)의 그침이 없기 때문입니다.

 

차고(盈) 빈(虛) 것을 살폈기 때문에 얻어도 기뻐하지 않으며, 잃어도 근심하지 않는 것은 분수(分數)의 무상(無常)함을 알기 때문입니다. 항도(恒道)에 통달했기에 나도(生) 기뻐하지 않으며 죽어도 화(禍)하 하지 않는 것은, 나중과 처음이 고정되지 못함을 아는 까닭입니다.

 

사람이 아는 것을 계산하면 그의 모르는 것에 미치지 못하며, 살고 있는 때가 태어나기 전보다 낫지 않으나, 이미 태어났으니 난 자는 그 책임과 의무를 다할 제물(祭物)이며, 사람의 몸은 그 책임을 위하여 사용할 기구입니다. 책임을 다하기 위하여 그 몸을 써서 목적을 달성하면, 몸은 비록 죽으나 대아(大我)의 정신에는 해(害)가 없을 것입니다.

 

관민장병(官民將兵)은 그 한 사업을 위하여 분담한 편리한 방법입니다. 절대적인 책임으로 보면 관민장병은 서로 같은 한 몸이니 무슨 차별이 있겠습니까. 관(官)은 높고 백성은 낮으며 장(將)은 귀하고 졸(卒)은 천하다는 것은, 나라가 가난해지고 군사가 약해질 수 있는 악한 원인입니다. 옛말에 백성의 현철(賢哲)은 군주의 용렬하고 어두움보다 낫다고 하였으니, 평범한 백성이라 할지라도 의무와 책임을 다하는 자는, 군주라도 업신여겨서는 안됩니다. 그 이유는 그들에게도 절대로 존중할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자기의 책임을 다한 후에 갑자기 세상을 떠나 천궁(天宮)에 가면, 사업(事業)과 영혼이 공존하여 없어지지 않을 것이니, 어찌 인생이 잠깐 백발이 되는 것을 한스럽게 생각하겠습니까. 백발은 사업의 표증(表證)이니 사람이 할 일을 하지 않고 공연히 백발만 탄식하는 것은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그러나 전하의 위대한 공적과 대업(大業)은 우러러 하늘에 부끄럽지 않고, 내려다 보아도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습니다.“하니, 임금께서 이르기를 ”이 말은 나에게 약이 된다.“하시고 더욱 정사에 힘쓰셨다.

 

52년 봄에 임금께서 백산(白山)에 가보실 때에, 백산 봉인(封人)[주:封人-봉역(封域)을 지키는 벼슬아치]이 아뢰기를 “성인(聖人)에게 비오니, 성인으로 하여금 오래사시고 부(富)하시고 아들을 많이 두소서.”하니 임금께서 “사양하노라. 오래 살면 이웃에 욕이 되고, 부하면 많은 사람의 원한을 사게 되고, 남자가 많으면 사람의 허물을 받게 된다. 천하에 도(道)가 살아 있으면 백성과 함께 즐거워하게 되고, 천하에 도가 없으면 도를 닦고 덕을 기르다가, 늙어 세상을 뜨면 천궁(天宮)에 가는 것이 인생의 행복이라.”하셨다.

 

68년에 임금께서 승하하시고, 태자가 왕위에 오르니 제18세 단제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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