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3월 22일 화요일

[006] 고대 이집트 역사 - 신왕국(제18왕조) [약 1540~1070년]

[006] 고대 이집트 역사 - 신왕국(18왕조) [1540~1070]
  
15세기 중반 이집트 신왕국

  
신왕국은 제18왕조의 첫 번째 왕인 아흐모세로 시작되는데, 이로써 이집트 역사에서 찬란한 시대가 열린다. 기원전 15세기 특히 투트모세 3세 치세에 대제국은 가장 넓은 영토를 차지했다. 아마도 제4폭포(와왓 및 쿠시)까지 이르는 상하 누비아가 제국에 속했을 것이며, 아시아로는 중부 시리아까지 제국이 확장되어 우가리트, 아무루 및 카데시와 국경을 같이 했다.
 
조형미술과 수공업은 가장 높은 수준에 도달했다. 이에 대한 예로서 조각, 벽화, 투탕카문의 무덤에서 나온 아주 다양한 종류의 예술적인 물건들을 들 수 있다.
 
신왕국의 건축은 에크나톤의 새 수도인 아케르아톤, 델타 지역의 람세스 왕조의 저택인 피 라메세(구약성서 출애굽기에 나오는 람세스의 집인 피 라메세는 오늘날 칸티르라는 지역의 유적이다), 누비아에 건축된 요새들, 그 가운데 무엇보다도 요새 부헨, 그리고 다수의 신전을 통해 알 수 있다. 카르나크에 있는 아문 신의 제국 신전에서 가장 큰 건축 공사가 이루어졌는데, 이곳에서는 새 기둥으로 둘러싸인 내실과 탑문(塔門)이 항상 반복해서 건축되었고 오벨리스크가 세워졌다. 이외의 중요한 신전이 룩소르, 솔레브, 아부심벨에 건축되었다. 왕들은 자기 자신을 위해 장제전(葬祭殿0을 세웠는데, 이들 중 데이르 엘 바흐리에 있는 하트셋수트의 것이 가장 유명하다. 테베에 있는 아멘호텝 3세의 신전은 정확히 말해 멤논 거상만 남아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종교 영역에서의 변화인데, 이 변화는 아멘호텝 4(에크나톤)가 장려한 아톤 제의에 의해 일어났다. <사자의 서>라는 문학형식이 가장 고전적 형태를 갖추게 되었고, 파피루스나 가죽에 쓰인 기록이나 또는 그 기록에 대해 묘사한 그림이 죽은 자와 함께 무덤에 안치되었다는 것 또한 중요하다. 이후 많은 제의가 저마다 특유한 형태를 갖게 되었다. <숨겨진 방의 문서>(Amduat)가 유행하게 되었는데, 이 문서에서는 지나칠 정도로 대중적인 된 저승 인도자의 특징이 점점 그 표준적인 형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이들 문헌 외에 <문의 책>이 널리 퍼졌는데, 이 책은 태양이 밤에 지하세계를 여행하고 다시 하늘에 나타나는 것을 다루고 있다. 태양 또는 레 하라흐테, 레 아툼 혹은 아문 레로 불리는 태양신은 높이 숭배되었고, 제의에서 이 신이 지닌 아주 두드러진 역할을 반영하고 있는 태양찬가 속에 그리고 죽음과 저승에서의 삶과 이승에 대해 가졌던 표상 속에 이러한 숭배가 표현되었다. 아멘호텝 4세가 다스리는 동안 태양신 숭배는 태양을 신의 유일한 현현으로 간주함으로써 마침내 절정에 달했다. 고전적인 중기 이집트어로 쓰인 문헌과 나란히 특히 람세스 왕조 시대에는 세속문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그 가운데 이집트 일상어로 쓰인 사랑의 노래와 이야기들이 생겨났다.
 
신왕국시대의 이집트처럼 거대한 왕국은 효율적인 정부조직에 의존했다. 이 정부의 중심지는 테베였는데, 이곳에는 파라오 다음으로 가장 중요한 인물인 재상이 살고 있었다. 여기에는 또한 아문 레의 가장 영향력 있는 대사제와 이집트에서 가장 부유한 신전의 가장 높은 지위의 통치자와 재정, 곡물, 건축 활동 및 기타 업무에 대한 감독을 맡은 수많은 하위 관리가 살았다. 누비아에서는 쿠시의 왕자라는 칭호를 지닌 총독이 통치했다. 테베와 사카라에 있는 관리들의 묘는 왕과 아주 가까이 있는 이들 왕국 관리들이 얼마나 부유하고 중요하며 충성스러웠는지에 대한 인상을 전해준다.
 
신왕국 시대에는 정책을 담당하고 있는 계층의 힘뿐만 아니라 군대의 힘도 점점 증가했다. 군대는 누비아를 마주해 있는 남쪽 지역과 군대 본영이 자리하고 있는 멤피스가 속한 북쪽 지역에 집중해 있었다. 이곳에서 왕자들은 무기 다루는 법을 배웠고 문헌전승으로는 “(전쟁의 신인) 몬투의 일을 익혔다. 메다무드와 토드에 에 있는 이 신의 성역들은 특히 투트모세 3세 이래 특별한 주목을 받았다. 기원전 14세기 말경에 하렘헤브라는 한 장군이 왕위에 올랐는데 당시 그의 부관이었던 한 인물이 람세스 1세라는 이름으로 그를 이어 즉위했다.
 
이집트가 이방의 영향에 대하여 점점 더 개방적이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제국의 영토는 광대했고 국제 관계는 증가했기 때문이다. 외국 물품, 군대, 사신, 영주들이 이집트로 엄청나게 몰려들었다. 전쟁포로들 가운데 하나인 아피루도 팔레스티나에서 잡혀왔으며 이집트 신전에 양도되었다. 하지만 아시아인은 높은 관직에 나아가는 데 성공했다. 외국에 대한 관심이 증가했는데 이는 멀리 떨어져 있는 푼트(소말리아)로의 무역원정을 묘사한 하트셉수트의 장제전 벽화에 그림으로 잘 표현되어 있다.
 
이집트의 종교에 미친 와국의 영향도 명백하다. 그래서 수많은 시리아-팔레스티나의 신들이 이집트에서 숭배되었다. 예를 들면, 힉소스 시대에 이미 세트와 동일시 되었던 바알, 무엇보다 전쟁의 여신으로 간주된 아스타르테/아나트, 아멘호텝 2세 시대에 특히 전쟁의 신으로 그리고 후에는 카드슈와 함께 의술의 신으로 숭배된 레셰프, 그 이름 때문에 하르마키스 호론 제의에서 스핑크스와 연관을 갖게 된 호론, 멤피스의 프타와 동일시된 예술의 신인 코샤르, 카드슈로 불리고 다산의 여신으로 숭배된 (니네베)의 아셰라와 이슈타르가 있다.
 
클라아스 R. 빈호프 지음, 배희숙 옮김, [고대 오리엔트 역사], 164~167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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