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근동] 아시리아 역대 왕 목록 [4] : 신 아시리아 제국(기원전 911년 ~ 609년)
신아시리아 제국의 왕들
신아시리아 제국(Neo-Assyrian Empire)은 기원전 911년부터 기원전 609년까지 존재했던 메소포타미아의 강력한 제국이다. 이 시기는 아시리아 역사의 마지막 단계이자 가장 번영했던 시대로 평가된다.
이름 | 재위기간 | 비고 |
아다드-니라리 2세 Adad-nirari II | 911 – 891 BC (21 years) | 아슈르-단 2세(Ashur-dan II)의 아들 |
투쿨티-닌우르타 2세 Tukulti-Ninurta II | 890 – 884 BC (7 years) | Son of Adad-nirari II |
아슈르-나시르-팔 2세 Ashurnasirpal II | 884 – 859 BC (25 years) | 투쿨티-닌우르타 2세(Tukulti-Ninurta II)의 아들 아시리아의 수도를 님루드(Nimrud)로 옮겼다. 지중해(Mediterranean)까지 원정하였다. 부조(조각 벽화)를 광범위하게 사용한 최초의 아시리아 왕이다. 자연사(병이나 노환 등으로 사망)하였다. |
샬만에세르 3세 Shalmaneser III | 859 – 824 BC (35 years) | 아슈르나시르팔 2세(Ashurnasirpal II)의 아들 아시리아의 옛 국경을 완전히 회복했지만, 그가 죽은 후 다시 쇠퇴가 찾아왔다. 그는 자연사(병이나 노환 등으로 죽음)했다. |
샴시-아다드 5세 Shamshi-Adad V | 824 – 811 BC (13 years) | 샬만에세르 3세(Shalmaneser III)의 아들, 내전에서 형제인 아슈르-다닌-팔리(Ashur-danin-pal)을 물리쳤다. 바빌론(Babylon)을 정복했으나, 그의 아들 통치기에 다시 독립하게 되었다. 그는 상대적으로 젊은 나이에,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사망했다. |
아다드-니라리 3세 Adad-nirari III | 811 – 783 BC (28 years) | 샴시-아닷 5세(Shamshi-Adad V)의 아들이다. 아버지가 죽었을 당시 그는 아직 어렸던 것으로 보이며, 어머니 샴무라맛(Shammuramat)이 초기에 섭정(co-regent)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 아다드-니라리 3세(Adad-nirari III)의 말년 통치는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암흑기의 시작으로, 이 시기에는 아시리아 관리들이 큰 권력을 행사했다. 그는 아마도 자연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
샬만에세르 4세 Shalmaneser IV | 783 – 773 BC (10 years) | 아다드-니라리 3세의 아들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아 그의 최후(운명)는 불분명하다 |
아슈르-단 3세 Ashur-dan III | 773 – 755 BC (18 years) | 아다드-니라리 3세의 아들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아 그의 최후(운명)는 불분명하다 |
아슈르-니라리 5세 Ashur-nirari V | 755 – 745 BC (10 years) | 아다드-니라리 3세(Adad-nirari III)의 아들이다.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아 그의 최후는 불분명하며, 티글랏-필레세르 3세(Tiglath-Pileser III)에 의해 폐위되고 살해당했을 가능성도 있다 |
티글랏-필레세르 3세 Tiglath-Pileser III | 745 – 727 BC (18 years) | 아다드-니라리 3세(Adad-nirari III) 또는 아슈르-니라리 5세(Ashur-nirari V)의 아들로 추정된다. 아슈르-니라리 5세의 뒤를 이었지만, 그 과정은 정상적인 계승이었는지, 쿠데타나 내전을 통한 것인지 불확실하다. 그는 아시리아 제국을 다시 부흥시켰고, 근동(Near East) 지역에서 최고의 제국적·정치적 강국으로 만들었다. 바빌론을 정복했고, 자연사하였다. |
샬만에세르 5세 Shalmaneser V | 727 – 722 BC (5 years) | 티글랏-필레셰르 3세(Tiglath-Pileser III)의 아들이다. 그는 사르곤 2세(Sargon II)에 의해 궁중 쿠데타로 폐위되고 살해되었다. |
사르곤 왕조(기원전 721~609년)
사르곤 왕조는 사르곤 2세가 창건한 왕조다. 사르곤 2세는 궁정 쿠데타로 왕위를 찬탈하고 수도를 두르샤루킨으로 옮겼으며, 강력한 군사력과 행정 체제로 아시리아 제국의 영토를 확장했다. 이 왕조는 아시리아 제국의 절정기를 이끌었으나, 이후 내부 분열과 외부의 침입으로 쇠퇴했다.
이름 | 재위기간 | 비고 |
사르곤 2세 Sargon II | 722 – 705 BC (17 years) | 티글랏-필레셰르 3세의 아들이라고 주장했으나, 이전 왕실과의 실제 혈연 관계는 논란이 있다. 그는 궁중 쿠데타로 샬마네세르 5세로부터 왕위를 빼앗았다. 아시리아의 수도를 두르-샤루킨(Dur-Sharrukin)으로 옮겼다. 아나톨리아에서 타발(Tab al)과 싸우다 전사했다. |
센나케립 Sennacherib | 705 – 681 BC (24 years) | 사르곤 2세의 아들이다. 아시리아의 수도를 니네베(Nineveh)로 옮겼다. 장남 아르다-물리수(Arda-Mulissu)에게 살해당했는데, 아들이 권력을 차지하려 했기 때문이다. |
에사르하돈 Esarhaddon | 681 – 669 BC (12 years) | 센나케리브(Sennacherib)의 아들이다. 센나케리브가 아르다-물리수(Arda-Mulissu)에게 살해된 후, 에사르하돈(Esarhaddon)은 형제와 6주간의 내전을 벌인 끝에 왕위를 차지했다. 그는 아시리아를 역사상 최대 규모의 제국으로 이끌었다. 평생 병마에 시달렸으며, 이집트 원정을 떠나는 도중 자연사했다. |
아슈르바니팔 Ashurbanipal | 669 – 631 BC (38 years) | 에사르하돈의 아들이다. 아슈르바니팔의 형제인 샤마쉬-슘-우키니는 바빌로니아를 물려받았으나, 기원전 652년에서 648년 사이의 내전 후 아슈르바니팔이 남부 지역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했다. 일반적으로 마지막 위대한 아시리아 왕으로 여겨진다. 생존 기록이 부족해 운명은 불확실하지만, 아마 자연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
아슈르 에틸-이라니 Aššur-etil-ilāni | 631 – 627 BC (4 years) | 아슈르바니팔의 아들이다. 남아 있는 기록이 부족해 그의 운명은 불확실하다. |
신-수무-리시르 Sîn-šumu-līšir | 626 BC (3 months) | 유력한 내시 궁정 신하이자 장군이다. 아슈르에틸일라니 왕 재위 시기에 영향력이 컸으며, 신-샤르이슌 왕 즉위 후 반란을 일으켰다. 바빌로니아 북부만 지배했다. 아시리아 역사상 왕위를 주장한 유일한 내시였다. 신-샤르이슌에게 패배했다. |
신-사르-이쉬쿤 Sîn-šar-iškun | 627 – 612 BC (15 years) | 아슈르바니팔의 아들로, 아슈르에틸일라니 사후에 왕위를 계승했다. 니네베가 함락될 때 바빌로니아인과 메대인 군대에 의해 살해되었다. |
아슈르-우발리트 2세 Aššur-uballiṭ II | 612 – 609 BC (3 years) | 신-샤르이슈쿤의 아들일 가능성이 있다. 메대인과 바빌로니아인에 맞서 하란에서 저항을 조직했다. 전통적인 아수르에서의 대관식(왕위 계승식)을 치를 수 없어 공식적으로는 왕세자 칭호를 가지고 있었다. 하란 공성전에서 바빌로니아인에게 패배했으며, 그 이후의 운명은 알려지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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