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3일 토요일

메네스 [Menes, 기원전 3100년경] 이집트를 통일하고 이집트 문명의 기틀을 세우다

메네스 [Menes, 기원전 3100년경]


이집트를 통일하고 이집트 문명의 기틀을 세우다

 
기원전 4000년에 나일 강 유역에 비교적 큰 부락들이 등장했고 기원전 3500년에 이르자 작은 규모의 나라가 출현했다. 노모스라고 불리던 이 작은 나라들 가운데 북쪽의 나카다(Naqada)와 히에라콘 폴리스(Hierakon polis) 등이 유명하다. 각 노모스는 외부의 침략을 막기 위해 군대를 갖추었고 왕에 해당하는 통치자도 있었으며, 각기 토템과 휘장, 그리고 숭배하는 수호신이 있었다. 여러 노모스가 존재하던 이 시기를 고대 이집트의 선왕조 시대라고 한다.
 
각 노모스는 영토를 확장하기 위해서 전쟁을 벌였다. 그들은 사자, , 따오기 등을 표현한 각각의 토템을 앞세우고 돌도끼를 들고서 적을 공격했다.
 
전쟁이 계속되면서 멤피스를 경계로 노모스보다 규모가 큰 두 나라가 형성되었다. 바로 이집트 남쪽의 상이집트와 북족의 하이집트였다. 상이집트와 하이집트의 왕조는 서로 숭배하는 신이 달랐고 왕이 쓰는 왕관 모양도 달랐다. 상이집트는 등심초를 국가의 상징으로 사용했고 왕은 흰색 원추형 왕관을 썼는데, 이는 매의 신 호루스가 왕을 보호한다는 의미였다. 하이집트는 국가의 상징으로 파피루스 풀을 선택했고 코브라를 숭배했다. 하이집트의 왕이 쓰는 붉은색 왕관은 뱀의 신이 왕을 보호한다는 의미였다. 훗날 메네스(Menes)가 등장해 상ㆍ하이집트를 통일할 때까지 이집트에는 두 명의 왕이 존재했다.
 
상이집트와 하이집트는 서로 상대를 정복할 기회를 호시탐탐 노렸지만 두 나라의 군사력이 거의 비슷해서 섣불리 공격하지 못했다. 얼마후 상이집트의 메네스 왕이 뛰어난 군사력과 전략으로 팽팽한 긴장 상태를 깼다. 메네스는 하이집트와 전쟁을 벌여 잇달아 승리했고 북쪽으로 전진했다. 나일강 삼각주까지 정복한 그는 마침내 이집트 통일을 이루어 냈다.
 
메네스 왕은 고대 이집트 역사상 가장 신비로운 인물이다. 상이집트의 티니스(Thinis)에서 태어난 그는 이집트의 가장 남쪽 지역을 통치하는 가문 출신이었다. 이집트 남부의 국경을 지키던 그의 집안은 국경을 넘보는 외부 세력과 여러 번 전쟁을 치렀다. 메네스는 어린 시절의 이러한 경험을 통해 군대를 통솔하고 전략을 수행하는 능력을 길렀고, 이는 훗날 그가 이집트를 통일하는 데 큰 힘이 되었다. 결단력 있고 과감했던 메네스는 기원전 3100년경에 상이집트의 왕이 되었다. 그후 바로 강력한 군대를 조직해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작은 노모스들부터 차근차근 합병하며 천천히 통일의 꿈을 키웠다.
 
오랜 전쟁에 불만이 쌓인 상이집트의 백성이 전쟁을 반대하며 반란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메네스는 과감하고 잔혹한 방법으로 반란자들을 처단했다. 이렇게 해서 상이집트 내부의 분열을 확실히 제압한 그는 군대를 통솔하고 나일강을 따라 하이집트로 진격했다. 하이집트의 군대는 나일 강 삼각주까지 후퇴하면서 끝까지 반격했으나 연이어 패배했다. 하이집트의 왕은 결국 메네스에게 왕관을 바쳤다. 상이집트와 하이집트의 왕관을 모두 손에 넣은 메네스는 자랑스럽게 왕관 두 개를 한꺼번에 썼다. 이때부터 이집트에는 단 한명의 왕만 존재했고 메네스가 제1왕조의 첫 번째 왕이 되었다.
 
통일 직후, 메네스는 강한 왕의 면모를 보여주어야 했다. 이집트를 통일했지만 삼각주 지역의 몇몇 노모스와 일부 귀족은 여전히 그를 반대하며 복종하려고 하지 않았고, 상황은 여전히 불안했다. 메네스는 그들을 잠재적인 적으로 생각하고 내버려 두었다가는 나중에 큰 문제가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저항하는 귀족들을 잔혹한 방법으로 처형했다. 히에라콘 폴리스에서 발견된 의식용 팔레트에 이에 관한 내용이 다음과 같이 매우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상이집트의 왕관을 쓴 메네스는 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지팡이를 들고 있으며, 적은 무릎을 꿇은 채 고통스럽게 죽어가고 있다. 여기에는 나일 강 삼각주의 상징인 작살이 등장하고, 상이집트의 수호신인 매가 삼각주의 파피루스 풀 위에 앉아 있는 모습도 표현되어 있다. 매는 또 예리한 발톱으로 하이집트 사람의 머리를 묶은 밧줄을 단단히 잡고 있다. 팔레트의 가장 윗부분에는 나르메르(Narmer)라고 적혀 있는데, 이는 메네스의 다른 이름이다. 가장 아랫부분에 전쟁에 진 하이집트 사람들이 허둥지둥 도망가는 모습이 부조되어 있다. 이 팔레트는 전체적으로 매의 신 호루스의 보호를 받은 메네스가 적들을 물리치고 이집트의 왕이 된 것을 표현한다.
 
팔레트의 뒷부분에 남아있는 부조도 흥미롭다. 나일 강 삼각주 지역에서 왕권을 상징하는 소의 뿔은 공격을 이겨내지 못하고 휘어졌으며, 적들은 모두 쓰러져 죽어 있다. 또 하이집트의 왕관을 쓴 메네스가 장군들과 함께 적의 시체 사이를 득의양양하게 걷는다.
 
메네스는 스스로 상ㆍ하이집트의 왕이라 불렀고, 후대 왕들도 수천 년 동안 이 칭호를 사용했다. 그는 상ㆍ하이집트의 경계가 되었던 지역에 새로운 도시 멤피스를 건설해 수도로 삼았다. 중왕국 시대에 수도를 테베로 옮기기 전까지 멤피스는 통일 이집트의 수도로서 크게 발전했다.
 
메네스는 오랜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고 잔혹하게 적들을 처단했다. 그런 동시에 온화한 포용정책을 펼치며 민심을 안정시키고 자신을 거부하는 귀족 세력을 포용하고자 노력했다. 이때 사용한 효과적인 방법이 결혼이었다. 이런 결혼은 저항 세력을 잠재우는 데 효과적인 동시에 왕권의 정당성을 공고히 하는 데에도 유리했다. 메네스 이후 새로운 왕조를 세운 왕들도 대부분 새 왕조의 정당성을 얻기 위해 이전 왕조나 왕비나 공주와 결혼했다. 예를 들어 네브카(Nebka)왕은 제2왕조의 마지막 왕 카세켐위(Khasekhemwy)의 딸과 결혼해서 기반을 다진 후 제3왕조를 열었다.
 
메네스는 나일 강을 효과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많은 사업을 벌였다. 그는 우선 제방을 세워 나일 강이 범람할 때 수도 멤피스가 영향을 덜 받도록 했고, 물이 수로에서 넘쳐흐르지 않도록 멤피스 이남의 나일 강 양 기슭에도 높은 제방을 쌓았다. 이렇게 하니 홍수를 방지할 수 있었고 농지에 물을 대는 것도 효과적이었다.
 
메네스가 이집트를 통일한 후 이집트인들은 창조력과 적극성을 더욱 발휘했다. 사회와 문화는 빠른 속도로 발전했고, 당시에 세운 정치, 사회 기구는 2000년 동안이나 별다른 변화없이 계속 유지되었을 정도로 매우 체계적이고 효율적이었다. 이 시기에는 상형 문자도 더 많이 만들어졌고 건축과 그 밖의 다양한 기술도 발전해서 이후 2000년 동안 이집트는 경제와 문화 방면에서 세계 최고의 발전을 이룩했다.
 
메네스 시대에 발생한 많은 변화는 모두 메네스가 직접 추진하고 실현해 낸 것이다. 그가 상ㆍ하이집트를 통일한 후 이집트는 문명을 더욱 발전시켜 고대 문명의 발상지 중 한 곳이 되었다.
 
맥을 잡아주는 세계사 3 - 이집트사4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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