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이집트 연대기 문제
목록들이 훼손되었거나 또는 항상 신뢰할만한 것은 아니므로, 그리고 때때로 연대가 표시된 자료의 범위가 불충분하므로, 이집트에 대한 확실하고 절대적인 연대기를 만들어내는 것은 여전히 어렵다. 기원전 1500년 이후의 시대에 대해서는 점점 의견이 일치한다. 그러나 그 이전 시대, 즉 중왕국, 제1중간기, 고왕국시대 연대를 계산하는 데는 아직도 여전히 견해가 다양하다. 이 때문에 기원전 제3천년대의 기간에 대해서는 약 50년 정도의 오차가 있을 수 있다.
역사적 관심이 특히나 두드러진 시대인 람세스 시대의, <튜린 왕 파피루스> 혹은 <튜린 연대기>로 잘 알려진 사본의 단편에는 고왕국과 중왕국에 대한 진술이 포함되어 있다. 이 문헌에는 파라오의 재위기간과 왕조가 기록되어 있고, 그 기록은 제1왕조의 1대 왕 메네스로부터 제15왕조까지 이른다.
이 외에도 우리는 이른바 “팔레르모석”에 새겨진 단편적인 비문을 이용할 수 있다. 이 연대기적 문헌은 신왕국 기간에 전(前)왕조 시대부터 제5왕조 말까지 파라오들의 재위기간과 중요한 사건들을 기록하고 있다.
이 두 문서를 바탕으로 일반적으로 제1왕조의 시작을 기원전 3000년경 혹은 조금 늦은 시기로 잡고, 제2왕조의 시작을 기원전 2350~2300년으로 잡는다. 물론 이때 이 두 자료의 모든 연대 진술이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그래서 제4왕조의 두 파리미드 건설자인 체옵스와 스네프루의 재위기간이 너무 짧게 나와 있다고 추측해볼 수 있다. 또한 상하 이집트를 “통일한” 왕이자 중왕국을 개창한 멘투호텝 2세의 등극에 관해서는 견해가 엇갈린다. 학자들이 제안하는 그의 등극 시기는 대략 2050년에서 2000년까지 이른다. 나아가 중왕국이 기원전 1800년이나 1760년에 끝났는지 아닌지는 여전히 논쟁중이다. 프랑케(D. Franke)는 가장 낮은 연대를 지지하는 반면 베커라트(J. von Beckerath)는 그 연대를 기원전 2119~1794/3년으로 잡는다.
신왕국과 그 이후 시기는 보통 마네토가 전한 왕명록에 따라 정해진다. 마네토는 기원전 3세기에 나일 강 델타 지역 세벤니토스에서 활동한 학자였다. 그의 저서는 그리스어로 발췌되거나 요약되어 아프리카누스와 에우세비오에게 전해졌다. 이집트의 파라오들을 일반적으로 30개 혹은 31개의 왕조로 나누는 것은 바로 마네토에서 기인한다. 마네토의 연대 진술은 유감스럽게도 항상 믿을만하지는 않다고 밝혀졌으며, 그래서 수정되었는데, 이 때문에 서로 다른 연대기가 나타나게 되었다. 이러한 수정은 다양한 종류의 논쟁에 의존하고 있는데, 1차적으로는 원전에서 실제로 증명된 가장 높은 재위기간에 의존하고, 또 추정된 생애를 정정할 수 있는 미라 방사선 조사에 의존하며, 파라오 재위기간의 희년 진술에 대한 조사에, 그리고 당시 국제적 교류가 잦았기에 특히 아마르나와 람세스 시대에 대해서는 시리아와 메소포타미아에서 나온 연도와 상관관계에 의존한다. 최근에는 보통 낮은 연도를 선호하여 신왕국과 아흐모세의 통치 시작을 기원전 1550/1530년으로 잡는다. 제21왕조의 연대 역시 새로이 계산되었는데, 이로써 일반적으로 제21왕조는 대략 기원전 1069~945년으로 확정되었다.
이집트의 연대기 논쟁에서 천문학적 연대는 항상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첫 번째 것은 드물지 않은 천체 현상인 신월(新月) 관측이다. 이것은 초승달이 처음 나온 날이 같은 해 몇 달 동안 연속적으로 똑같이 기록되었다면 연대 계산에 특히나 도움이 된다. 여기서 투트모세 3세의 원년(기원전 1504년, 1490년, 1479년)과 람세스 2세의 원년(기원전 1304년, 1290년, 1279년)으로 추정할 수 있는 연대가 각각 세 개 씩 나온다. 현재는 일반적으로 가장 낮은 연도르 선호한다. 두 번째 것은, 다른 날은 태양과 함께 떠올라 보이지 않다가 새해 봄 첫날에는 밤하늘에 밝게 떠오르는 별 소티스(시리우스)에 대한 기록이다. 만일 365일을 1년으로 하는 역법과 365, 1/4일을 1년으로 하는 태양력을 근거로 하면, 이른바 태양과 함께 떠오르는 이 소티스 별은 약 1460년 후에야 다시 신년 정월에 떠오르게 된다. 기원후 139년과 기원전 238년(프톨레마이오스 3세) 소티스 별에 대한 정확한 기록이 있다. 또한 파라오들의 재위년도 중 특정 연도에 이전에 소티스 별을 관측한 날짜가 나오는 기록이 있다. 만일 기원후 139년에서 거꾸로 계산한다면 통치연한에 대한 절대연도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가정된 역법과 관련하여 불확실성이 있으므로 이러한 계산결과는 여전히 논란이 된다. 게다가 대개 고대의 소티스 관찰 기록은 부정확하게 기록되어 있다. 즉 파라오의 이름이 빠져 있거나 숫자 데이터는 훼손되었고, 소티스 별이 이미 떠올랐는지 아직 떠오르지 않았는지가 확실하지 않다. 게다가 어디에서 관측하고 기록했는지도 일치하지 않는다. 관측 장소로서 멤피스, 테베, 엘레판틴이 거론된다. 관측한 곳이 하이집트인지 상이집트인지는 중요하다. 왜냐하면 멤피스에서 관측했다면 엘레판틴에서 관측한 것과 비교할 때 24년(하루 당 4년)이라는 차이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소티스 관측 연대는 연대기 논쟁에서 자신의 자리를 뺏기지 않고 있다. 예를 들면 세소스트리스 3세 재위 7년째의 것과 아멘호텝 1세 재위 9년째의 것인데, 새로운 제안으로는 이는 기원전 1855년 혹은 1830년이나 1504년에 해당한다. 이 연대는 중왕국과 신왕국 연대기에 대한 논의에서 결정적인 토대로 기능한다.
당대의 비문이 증명해주듯이 재위 순서(통치연한을 포함하여)와 동시대의 상호 연관된 역사적 자료는 이집트 연대기를 만드는 탄탄한 토대가 된다는 사실(가령 K. A. Kichen 1987)이 점점 더 많은 지지를 얻고 있다. 지금까지도 통용되는 연대, 학자들이 제안한 연대가 서로 다른 이유는 우선 중왕국과 신왕국 몇몇 파라오의 재위기간이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다음의 질문들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 투트모세 2세의 통치연한은 실제로 매우 짧았는가?
- 세멘카레가 단독 통치한 기간은 1년뿐인가?
- 세티 1세가 통치한 기간은 11년간인가, 15년간인가?
- 하렘헤브가 통치한 기간은 13년간인가, 17년간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다양한 대답에서 두드러지는 사실은 모두가 낮거나 짧은 연대기를 선호한다는 사실이다. 하여튼 기원전 1479년이나 1279년이 투트모세 3세와 람세스 2세가 즉위한 연대로 가장 가능성 있다는 것에 많은 학자들이 동의한다.
신왕국 특히 아마르나 시대와 이를 뒤이은 람세스 왕조 시대에는 동시대 사건들 간의 연관성이 증가한다. 그러나 이러한 동시대적 연관성은 대체로 한 왕의 특정 재위연도와 관련된 것이 아니라, 부분적으로 겹치는 일반적인 통치와 관계한다. 가장 중요하고 효율적인 동시대 사건들 간의 상관성은 한 파라오의 죽음 이후에 그 미망인이 히타이트 왕자와 결혼하고자 했을 때 처음 나타난다. 이 사건은 히타이트 왕 수필루리우마 1세의 재위 제6년쯤에 일어났음이 틀림없다. 기원전 1279년을 람세스 2세의 즉위 연도로 받아들인다면 람세스 왕조 시대의 동시대 사건들 간의 상관성은 이집트의 연대기보다 히타이트와 시리아 연대기에 더 큰 의미를 지닌다.
“제3중간기”(기원전 1100~650년)에 대한 키친(K. A. Kitchen)의 연구는, 비록 이 시기와 특히 제22, 23왕조에 관한 의견 차이가 전부 없어지지 않는다해도, 더 이후의 시대에 매우 중요하다. 시리아-팔레스티나와 연관해 확언할 수 있는 바는 약 2년 정도의 오차는 있지만 쇼생크 1세(시삭) 통치 시작을 기원전 945년경으로 확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르호보암 제5년에 유다에 침입했고(구약성서 열왕기상 14장 25~26절 ; 역대하 12장 2~4절 참조) 또 솔로몬의 치세 말기에 이미 통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클라아스 R. 빈호프, 배희숙 옮김, [고대 오리엔트 역사], 22-28쪽 참조
댓글 없음:
댓글 쓰기
참고: 블로그의 회원만 댓글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