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우데발트(Theudebald, AD. 534~555) : 재위 547~555년
테우데발트
- 현대 영어로는 테오발트(Theobald)
- 프랑스어로는 티보(Thibaut) 또는 테오데발드(Théodebald)
- 독일어로는 테우도발드(Theudowald)
테우데베르트 1세와 도이테리아의 아들로, 534년부터 555년까지, 또는 547년이나 548년부터 555년까지 메츠, 랭스, 혹은 아우스트라시아(다양하게 불린다)의 왕이었다.
【기원후 534년】
- 테우데베르트 1세와 도이테리아의 아들로 태어났다.
【기원후 547년】
- 그는 즉위 당시 겨우 13세였고 병약했다. 그러나 귀족들의 아버지 기억에 대한 충성심 덕분에 그의 미성년 기간 동안 평화가 유지되었다.
- 그는 롬바르드 왕 바코의 딸이자 그의 계모인 비시가르드의 여동생인 발드라다(Waldrada)와 결혼했다. 이 결혼은 아우스트라시아와 롬바르드 사이의 동맹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기원후 550년】
- 550년, 테우데발트는 툴(Toul) 공의회를 소집했다. 테우데발트가 이 공의회를 소집한 것은 트리르의 주교 니케티우스(Nicetius)가 금지된 혈연 관계로 결혼한 프랑크 귀족들을 파문하기 시작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기원후 552년】
- 그럼에도 불구하고 테우데발트는 북부 이탈리아에서 아버지의 정복지들을 지켜낼 수 없었다. 비잔틴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1세는 552년에 나르세스(Narses)의 지휘 아래 군대를 파견했다. 고트족 왕 테이아(Teia)는 프랑크족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 테우데발트 왕은 직접적인 지원을 거부했지만, 그의 신하들인 알레만니족 족장 로타르(Leutharis)와 부틸리누스(Butilinus)가 이탈리아로 넘어가는 것을 허락했다. 아풀리아에서 굶주림이나 전염병으로 죽지 않은 프랑크족 전사들은 카실리눔(Casilinum)에서 패배했다.
【기원후 555년】
- 오랜 질병과 허약함 끝에 그는 555년에 사망했다. 그의 왕국은 결국 테우데리크 1세의 직계 가족을 벗어나 그의 큰삼촌 클로타르 1세의 왕국들과 통합되었고, 클로타르 1세는 곧 모든 프랑크인의 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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