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울(Saul, BC. ?~c.1010) : 이스라엘 통일 왕국의 서막을 연 비운의 초대 왕(BC. 1030~1010년경)
- 재위 : 기원전 1030년경 ~ 기원전 1010년경
- 후임 : 이스보셋
- 부친 : 기스(Kish)
- 배우자 : 아히노암(Ahinoam), 리스바(Rizpah)
- 자녀들 :
아히노암의 자녀 : 이스보셋(Ish-bosheth), 요나단(Jonathan), 아비나답(Abinadab), 말기수아(Melchishua), 메랍(Merab), 미갈(Michal)
리스바의 자녀 : 아르모니(Armoni), 므비보셋(Mephibosheth)
![]() |
1878년에 에른스트 요세프손이 그린 유화의 일부분에서 사울이 묘사되어 있다 |
사울(히브리어: שָׁאוּל, Šāʾūl; 그리스어: Σαούλ, Saoúl; “구한/기도한”이라는 뜻)은 고대 이스라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이다. 히브리 성경과 구약 성경의 기록에 따르면, 그는 ‘통일 왕국(United Monarchy)’의 첫 번째 왕이다. 이 통일 왕국은 고대 이스라엘과 유다를 아우르는 정체였으나, 그 역사성에 대해서는 여전히 학계의 논쟁이 존재한다. 전통적으로 사울의 통치 기간은 기원전 11세기 후반으로 추정되며, 성경은 이 시기를 이스라엘 민족이 흩어진 부족 사회에서 조직적인 국가 체제로 전환되는 중대한 전환점으로 묘사하고 있다.
사울에 대한 모든 정보는 오직 히브리 성경에서만 나오기 때문에, 그의 존재와 통일 왕국의 규모에 대한 역사성은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측면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울의 삶과 죽음, 그리고 그를 둘러싼 성경적 서사는 고대 이스라엘의 초기 왕정 시대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자료로 남아 있다.
1. 성경적 기록 (Biblical account)
사울의 삶은 성경 속에서 드라마틱하게 펼쳐진다. 그의 왕위 등극부터 파멸에 이르는 과정은 이스라엘 초기 왕정 시대의 혼란과 갈등을 여실히 보여주는 중요한 기록으로 남아 있다.
가. 사울 왕의 가문 (House of King Saul)
사울은 이스라엘 열두 지파 중 하나인 베냐민 지파(Tribe of Benjamin) 출신이다. 그의 아버지는 유력한 인물인 기스(Kish)이며, 이는 사울이 결코 평범한 가문 출신이 아니었음을 시사한다. 성경은 사울을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 그보다 더 준수한 자가 없고 모든 백성보다 어깨 위만큼 더 컸더라”(사무엘상 9:2)라고 묘사하며, 그의 빼어난 외모와 건장한 체구를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외모는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카리스마와 위엄을 더하는 요소로 작용하였다.
나.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다 (Anointed as king)
성경 기록에 따르면, 사울이 왕이 되는 과정에는 두 가지 주요 서사가 존재한다. 첫째, 그는 암나귀를 찾다가 선지자 사무엘(Samuel)을 만나게 되고, 사무엘은 사울에게 은밀히 기름을 부으며 그를 이스라엘의 통치자로 지명한다. 이는 신의 뜻에 따른 지명을 의미한다. 둘째, 이후 사무엘은 미스바(Mizpah)에 이스라엘 모든 지파를 모아놓고 제비를 뽑아 왕을 선출하게 되는데, 이때도 사울이 뽑히게 된다. 그는 사람들 사이에 숨어있었지만 결국 발견되어 백성들에게 왕으로 소개된다.
그의 초기 통치는 순조롭고 겸손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암몬 족속 나하스(Nahash)가 이스라엘을 침략했을 때, 사울은 성령에 감동되어 군대를 소집하고 암몬족을 크게 무찔러 이스라엘 백성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게 된다. 길갈(Gilgal)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사울을 왕으로 다시 한번 추대하며 왕정을 확고히 한다.
다. 예언자들 사이에 (Saul among the prophets)
성경에는 사울이 ‘예언자들 사이에’ 있었다고 묘사되는 두 가지 사건이 등장한다. 첫째는 사무엘이 사울에게 왕으로 기름을 붓고 난 후 사울이 예언자 무리들과 함께 예언하는 일이 벌어진다는 것이다(사무엘상 10:9-13). 이 장면은 사울에게 새로운 영(Spirit)이 임하여 그의 마음이 변하고 지도자로서의 권위가 부여되었음을 암시한다.
두 번째는 다윗을 잡기 위해 라마 나욧(Ramah Naioth)에 갔을 때 발생한다. 사울이 보낸 사람들이나 심지어 사울 자신까지도 그곳에서 예언하는 자들의 영에 사로잡혀 옷을 벗고 하루 밤낮을 예언하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진다(사무엘상 19:23-24). “사울도 예언자들 중에 있느냐”는 말은 조롱하는 의미로도 사용되었지만, 사울이 신적인 영감이나 통제 불능의 상태에 빠졌음을 보여주는 표현이다. 이러한 묘사는 사울의 통치가 단순히 정치적인 것이 아니라, 종교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음을 나타낸다.
라. 거부당하다 (Rejection)
사울의 통치는 사무엘에 의해 두 번에 걸쳐 신의 명령을 어겼다는 이유로 ‘거부’당한다. 이는 그의 통치가 신으로부터 버림받았음을 상징한다.
- 첫 번째는 블레셋과의 전쟁 중 발생한다(사무엘상 13장). 사무엘이 정한 날짜에 오지 않자, 초조해진 사울이 사무엘의 역할인 번제(burnt offering)를 직접 드린 사건이다. 사무엘은 이를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나이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하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나이다”라며 책망하고, 그의 왕위가 길지 못할 것이라고 예언한다.
- 두 번째는 아말렉(Amalek)과의 전쟁에서 발생한다(사무엘상 15장). 신은 사무엘을 통해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모든 것을 진멸하라고 명령한다. 그러나 사울은 아말렉의 왕 아각(Agag)과 살찐 가축들을 살려두고 가져온다. 이에 사무엘은 다시 한번 사울을 책망하며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라고 말하고, 신이 사울을 버렸다고 선언한다. 이 두 사건은 사울의 왕정의 신학적 정당성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며 그의 몰락의 원인으로 지적된다.
마. 사울과 다윗 (Saul and David)
사무엘로부터 거부당한 후, 성경은 사울에게서 신의 영이 떠나고 악한 영이 그를 괴롭히기 시작했다고 묘사한다(사무엘상 16:14). 이때 수금(하프) 연주로 사울을 위로하던 젊은 목동 다윗(David)이 등장한다. 다윗이 블레셋의 거인 골리앗(Goliath)을 물리치자, 이스라엘 백성은 다윗을 열렬히 환영하며 사울보다 다윗을 칭송하기 시작한다.
사울은 이러한 다윗의 인기에 극심한 질투와 편집증에 시달린다. 그는 다윗을 자신의 딸 미갈(Michal)과 결혼시키거나, 다윗을 전투에 보내 위험에 노출시키는 등 여러 차례 제거하려고 시도한다. 또한 직접적으로 창을 던져 죽이려 하거나 군사들을 보내 그를 쫓는 등 끈질긴 추격전을 벌인다. 다윗은 사울의 추격을 피해 도망다니면서도 두 차례나 사울을 죽일 기회를 잡았으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해치지 않겠다는 신념으로 사울을 살려둔다. 이 과정에서 사울의 아들 요나단(Jonathan)은 다윗의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조력자가 되어 사울과 다윗의 갈등을 더욱 비극적으로 만든다.
바. 길보아 산 전투와 사울 왕의 죽음
사울의 비극적인 통치는 길보아 산(Mount Gilboa)에서 블레셋 사람들과의 전투에서 비참하게 막을 내린다. 전투 직전, 사울은 신의 응답을 받을 수 없게 되자 금지된 행위인 신접한 여인(무당)을 찾아가 죽은 사무엘의 영을 불러내어 조언을 구한다(사무엘상 28장). 사무엘은 사울의 불순종을 질책하며 전투에서의 패배와 사울과 그의 아들들의 죽음을 예언한다.
예언대로 이스라엘 군대는 블레셋에게 크게 패배한다. 사울의 세 아들, 즉 요나단(Jonathan), 아비나답(Abinadab), 말기수아(Malchi-shua)는 길보아 산에서 전사한다. 사울 자신도 블레셋 궁수들에게 심하게 부상을 입고 치명적인 상황에 놓인다. 적의 손에 잡혀 조롱당할 것을 두려워한 사울은 자신의 무기 든 자에게 자신을 죽여달라고 요청하나, 그가 거부하자 스스로 칼 위에 엎드러져 자살한다. 그의 시신은 블레셋 성벽에 전시되는 치욕을 당하지만, 길르앗 야베스(Jabesh-Gilead) 사람들이 용감하게 이를 수습하여 장사 지낸다.
사울의 죽음에 대해서는 다른 서술도 존재한다. 다윗에게 사울의 죽음을 알린 아말렉 사람이 자신이 사울을 죽였다고 주장하는 내용인데, 학자들은 이를 사건을 과장하거나 자신의 이득을 취하려는 시도로 해석한다. 길보아 전투의 패배와 사울의 죽음은 이스라엘 왕국의 권력이 사울 왕가에서 다윗에게로 완전히 넘어가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2. 성경 비평 (Biblical criticism)
사울의 성경적 서사는 학자들 사이에서 광범위한 성경 비평의 대상이다. 이는 성경이 단순한 연대기적 기록이 아니라, 다양한 자료와 신학적 관점이 엮인 복합적인 텍스트임을 보여준다.
가. 텍스트 불일치 (Textual inconsistencies)
학자들은 사울의 왕위 등극과 죽음에 대한 상충되는 기록들에 주목한다. 예를 들어, 사무엘이 사울에게 은밀히 기름을 붓는 장면과 백성들이 제비를 뽑아 사울을 왕으로 선출하는 장면은 서로 다른 맥락을 가지고 있다. 또한 사울의 죽음에 대한 두 가지 버전(자살과 아말렉인의 주장)도 텍스트의 복합성을 보여준다. 이러한 불일치는 성경 텍스트가 여러 독립적인 전승들이 수세기에 걸쳐 편집되고 통합된 결과일 수 있다는 견해를 뒷받침한다.
나. 인물 묘사의 변화 (Changing portrayal)
다윗의 등장 이후 사울에 대한 묘사가 긍정적이고 유능한 왕에서 점차 부정적이고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인물로 변하는 양상도 성경 비평의 중요한 지점이다. 일부 학자들은 이러한 변화가 다윗의 왕권을 정당화하고 사울의 몰락을 신의 뜻으로 해석하려는 후대 편집자들의 신학적 의도가 반영된 결과라고 본다. 사울의 비극은 다윗 왕조의 영광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다. 어원적 불일치 (Etymological discrepancies)
일부 학자들은 사무엘의 출생 서사에 나타난 어원적 불일치가 원래는 사울의 출생을 묘사했을 것이라고 추정하기도 한다. 이는 성경 텍스트가 단순히 연대기적 사실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서사를 구성하고 편집하는 과정을 거쳤음을 시사한다. 사울은 이스라엘의 초기 왕정 체제에서 왕의 역할을 재정의하고, 왕의 불순종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보여주는 상징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3. 고전적 랍비적 견해 (Classical rabbinical views)
고전적인 랍비 문학에서 사울 왕은 복합적인 인물로 묘사된다. 그는 겸손과 능력이라는 긍정적인 특성을 지닌 왕으로 인정받기도 하지만, 특정 순간의 불순종으로 인해 왕위를 잃게 된 비극적인 인물로 주로 다루어진다. 랍비들은 사울의 겸손함을 높이 평가하기도 했다. 그는 처음에 왕이 되는 것을 망설였고, 자신의 가문을 자랑하지 않았다. 이는 그가 겸손한 마음을 가졌음을 보여주는 증거로 해석된다.
그러나 그의 결정적인 실책, 즉 아말렉 전쟁에서 신의 명령에 불순종한 행위는 그의 몰락의 주된 원인으로 지적된다. 랍비들은 이 단 한 번의 실수가 그를 파멸로 이끌었다고 강조하기도 하며, 이는 신의 명령에 대한 절대적인 순종의 중요성을 가르치는 교훈으로 사용되었다. 일부 견해에서는 사울의 불순종이 용서받을 수 있었지만, 그의 겸손함이 너무 지나쳐 결정을 내리는 데 주저했다거나, 혹은 신의 뜻을 잘못 해석하여 불순종하게 되었다고 해석하는 경우도 있다. 사울의 이야기는 인간적인 나약함과 신의 절대적인 주권 사이의 갈등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로 남아 있다.
4. 이슬람에서의 사울 (In Islam)
이슬람 경전 꾸란(Quran)에서도 사울의 이야기가 등장하며, 그는 선지자 무함마드(Muhammad) 시대 이전의 인물로 다루어진다.
가. 이름 (Name)
이슬람 전통에서 사울은 아랍어 이름인 탈루트(Talut)로 알려져 있다. 이 이름은 꾸란에 직접적으로 언급되어 있으며, 성경의 사울과 동일한 인물로 인식된다.
나. 이스라엘의 왕으로서의 사울 (Saul as the King of Israel)
꾸란에 따르면,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을 위한 왕을 선지자에게 요청한다. 이에 선지자(이슬람 전통에서는 종종 사무엘이나 여호수아로 여겨짐)는 신의 명령에 따라 탈루트(Talut)를 왕으로 지명한다. 백성들은 처음에 탈루트(Talut)가 부유하지 않고 고귀한 혈통이 아니라는 이유로 그의 왕권을 의심한다. 그러나 선지자는 신이 탈루트(Talut)에게 지식과 체력을 주었음을 강조하며, 왕권이 신의 뜻임을 역설한다.
탈루트(Talut)는 군대를 이끌고 강력한 적(블레셋, 성경의 골리앗에 해당되는 잘루트(Jalut)가 적의 장군)에 맞서 싸우게 된다. 꾸란은 탈루트(Talut)가 그의 군사들에게 시련을 주어 물을 마시지 못하게 한 일과, 소수의 믿음을 가진 자들만이 함께 싸워 결국 승리를 거두는 과정을 묘사한다. 이 전투에서 다윗(Daud)이 잘루트(Jalut)를 죽이며 영웅으로 떠오르는 이야기도 꾸란에 포함되어 있다. 이슬람 전통에서 탈루트(Talut)는 신에게 선택받은 정당한 왕이자, 적을 물리치고 믿는 자들을 이끈 지도자로 묘사되며, 그의 이야기는 신의 명령에 대한 복종과 믿음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데 사용된다.
5. 역사성 (Historicity)
사울과 그가 다스렸다고 전해지는 이스라엘 통일 왕국의 역사성은 학계에서 오랜 논쟁의 대상이다. 이 논쟁의 핵심은 히브리 성경 외에 사울의 존재나 그의 통치 규모를 직접적으로 뒷받침할 만한 고고학적 또는 문헌적 증거가 현재까지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가. 증거의 부재 (Lack of extra-biblical evidence)
고대 근동 지역의 다른 왕국들에 대해서는 종종 당대 문서, 기념비 비문, 또는 유적 발굴을 통해 역사적 증거가 확인되곤 한다. 그러나 사울 시대(기원전 11세기 후반)에 대한 이러한 형태의 외부 증거는 현재까지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학자들로 하여금 성경에 묘사된 사울의 존재와 통일 왕국의 규모가 후대의 종교적 또는 정치적 목적에 의해 다소 이상화되거나 과장되었을 수 있다는 의문을 제기하게 한다.
나. 고고학적 시사점 (Archaeological implications)
일부 고고학자들은 사울 시대에 해당한다고 추정되는 중앙 산악 지대(이스라엘 왕국의 핵심 영토)의 발굴 결과가 성경에 묘사된 것만큼 거대한 통일 왕국의 흔적을 보여주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이 시기의 사회가 아직 대규모 도시화나 복잡한 행정 체제를 갖추기보다, 주로 부족적 특성을 지닌 소규모 촌락 단위로 구성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따라서 사울이 실존 인물이었다 하더라도, 그는 성경에 묘사된 ‘왕(king)’이라기보다는 ‘부족 연맹의 수장(tribal chieftain)’에 가까운 인물이었을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다. 학파 간의 논쟁 (Scholarly debate)
이러한 문제들로 인해 학자들 사이에서는 ‘최대주의자(maximalist)’와 ‘최소주의자(minimalist)’로 대변되는 입장 차이가 존재한다. 최대주의자들은 성경의 서사를 기본적으로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고 고고학적 증거의 부재를 자료 부족의 문제로 보며, 아직 발굴되지 않았을 가능성을 열어둔다. 반면 최소주의자들은 성경 외적인 증거가 없는 한, 성경 서사를 있는 그대로 역사적 사실로 간주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취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울의 이야기가 고대 이스라엘의 민족적 정체성과 왕정의 기원에 대한 중요한 종교적, 문화적 서사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6. 심리학적 분석 (Psychological analyses)
사울 왕의 성경적 서사는 현대 심리학적 관점에서도 흥미로운 분석 대상이다. 그의 행동 변화와 몰락 과정은 인간의 심리, 특히 권력과 상실감, 정신 건강의 연관성을 탐구하게 한다.
가. 우울증과 편집증
성경은 사울이 사무엘로부터 거부당한 후 “악한 영(evil spirit)”에 사로잡혀 괴로워했다고 묘사한다(사무엘상 16:14). 이는 현대 심리학에서는 우울증, 불안 장애, 또는 정신병적 에피소드와 같은 정신 질환으로 해석될 수 있다. 다윗의 인기가 높아질수록 사울의 질투심은 극대화되었고, 이는 편집증적인 증상으로 이어져 다윗을 끈질기게 추격하고 죽이려 하는 행동으로 나타난다. 그의 변덕스러운 기분 변화와 통제 불능의 분노 표출은 정신 건강 전문가들에게는 전형적인 ‘기분 장애(mood disorder)’나 ‘정신병적 증상(psychotic symptoms)’의 양상으로 분석되기도 한다.
나. 지도자의 부담과 심리적 압박
사울은 부족 사회에서 왕정 국가로 전환되는 혼란스러운 시기에 초대 왕으로서 막대한 부담감을 안고 있었다. 블레셋의 위협, 이스라엘 부족들의 통합, 그리고 신의 대리인으로서의 역할 사이에서 그는 엄청난 심리적 압박을 경험했을 것이다. 특히 신과 사무엘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인식이 그의 자존감을 무너뜨리고 절망감에 빠지게 하여, 결국 통제력을 상실하고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는 원인이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의 삶은 지도자의 자리에서 겪는 심리적 고통과 책임의 무게를 보여주는 사례로 해석되곤 한다.
결론 : 이스라엘 왕정의 비극적 서막
사울은 고대 이스라엘 통일 왕국의 초대 왕이자, 비극적인 운명을 맞이한 인물이다. 그의 삶은 겸손과 능력으로 시작하여 질투와 편집증에 휩싸여 몰락하는 과정으로 이어진다. 성경은 그를 통해 신의 명령에 대한 순종의 중요성과 불순종의 결과를 보여주는 동시에, 인간적인 나약함과 권력의 어두운 이면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사울의 역사성은 여전히 학계의 논쟁 대상이지만, 그를 둘러싼 성경적 서사는 유대교와 기독교, 이슬람 전통에서 중요한 신학적, 도덕적 교훈으로 활용된다. 그의 비극적인 최후는 이스라엘 왕국의 권력이 다윗에게로 넘어가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으며, 그는 강력한 다윗 왕조의 탄생을 위한 교두보 역할을 수행한 셈이다. 이처럼 사울의 이야기는 단순히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과 권력의 역학, 그리고 신앙적 의미를 되새겨보는 중요한 역사적, 심리학적, 신학적 탐구의 대상이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
참고: 블로그의 회원만 댓글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