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이집트] 나카다 III 시대 : 이집트 통일의 서막과 원왕조의 탄생 [기원전 약 3200~3000년]
이집트 문명의 뿌리를 깊이 탐구하다 보면, 고대 왕조의 시작점에 나카다 III기(Naqada III period)라는 중요한 시기가 등장한다. 기원전 약 3200년부터 3000년까지 이어지는 이 시기는 원왕조 시대(Protodynastic Period) 또는 제0왕조(Dynasty 0)라고도 불리며, 이집트가 하나의 통일된 국가로 나아가는 결정적인 과도기였다. 이집트 역사상 최초로 상이집트와 하이집트가 하나의 지배 아래 놓이면서, 이후 찬란한 고대 이집트 문명의 기틀을 다지게 되는 것이다.
1. 제0왕조(Dynasty 0) : 통합을 위한 움직임
이집트 제1왕조가 공식적으로 시작되기 직전의 통치자들을 일컫는 용어가 바로 제0왕조이다. 나카다 III기는 기존 선사 시대 이집트의 문화적 발전이 정점에 달하고, 정치적 통합이 급속도로 진행된 시기였다. 이 시기에 이집트는 남북으로 나뉘었던 여러 소국들을 병합하며 점차 통일된 형태를 갖추기 시작하였다.
나카다 III기에는 히에로글리프(hieroglyphs, 상형문자)가 최초로 등장하였는데, 이는 고대 이집트의 지식 체계를 기록하고 통치력을 강화하는 중요한 수단이 되었다. 또한 통치자의 이름을 나타내는 세레크(serekhs)의 정규적인 사용이 시작되었고, 이는 왕권의 상징성을 확립하는 데 기여하였다. 이집트 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것으로 알려진 파라오 나르메르(Narmer) 혹은 메네스(Menes, 일각에서는 호르-아하[Hor-Aha]를 꼽기도 한다)의 통치는 이 시대의 정점이었다. 그들은 상이집트와 하이집트의 오랜 대립을 끝내고 하나의 왕국을 수립하여 중앙집권적 통치 체제를 확립하였다.
이 시기 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표식은 단순한 이름 이상이었다. 고대 이집트 통치자들의 가장 오래된 초상화로 알려진 텔 엘-파르카(Tell el-Farkha) 유적의 조각상(나카다 IIIB, 기원전 3200-3000년경)은 당대 지배자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게 한다. 텔 엘-파르카 동부 콤 지역에서 발견된 제0왕조의 왕 이리-호르(Iry-Hor)의 이름은 초기 왕권의 형태를 연구하는 중요한 자료이다. 이런 증거들은 제0왕조가 단순한 문화적 과도기가 아닌, 정치적, 사회적으로 고도로 조직화된 통일 과정의 핵심 시기였음을 보여준다. 왕실 묘지가 처음으로 나타난 것도 이 시대의 특징인데, 이는 왕의 신성함과 권력이 사후 세계까지 이어진다는 믿음, 그리고 체계적인 장례 문화의 발전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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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 엘-파르카 동쪽 콤에서 발견된 제0왕조 이리호르 왕의 이름 |
2. 혁신적인 기술 발전(Technological Innovations)
나카다 III 시기는 정치적 통합뿐만 아니라 기술적인 측면에서도 눈부신 발전을 이룬 시기이다. 이 시기의 기술 혁신은 이후 고대 이집트 문명이 건축, 예술, 농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는 토대가 되었다.
가장 중요한 혁신 중 하나는 바로 대규모 관개 시설의 시작이다. 나일강의 범람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농업 생산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체계적인 관개 시스템은 이집트 인구를 부양하고 문명의 발전을 뒷받침하는 핵심적인 기술이었다.
금속 기술의 발전도 주목할 만하다. 이 시기에는 구리(copper)가 다양한 도구와 무기 제작에 널리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최초의 구리 무기가 등장한 것도 이 무렵인데, 이는 전쟁의 양상과 사회적 구조에 큰 변화를 가져왔을 것이다. 은(silver), 금(gold), 청금석(lapis lazuli), 그리고 파이앙스(faience) 같은 귀금속과 장식 재료들이 장신구와 의례용품에 사용되면서 미학적인 발전도 함께 이루어졌다.
건축 분야에서는 매장된 패널 건축(recessed paneling architecture)과 같은 새로운 건축 양식이 등장하였다. 이는 이집트 고유의 건축 기술과 메소포타미아 등 외부 문화의 영향이 결합된 결과로 추정된다. 특히 메소포타미아의 우루크 문화(Uruk culture)의 영향을 받아 원통형 인장(cylinder seals)이 이집트에서 사용되기 시작했는데, 이는 당시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사이의 활발한 교류를 짐작하게 한다. 또한, 굳은 모르타르(mortar)가 건축 재료로 활용되면서 더욱 견고하고 복잡한 건축물 건설이 가능해졌다.
그 외에도 나카다 III기에는 운석철(meteoric iron)을 이용한 금속 가공, 악기 제작 기술(더블 리드 악기와 리라), 그리고 세네트(Senet)와 같은 보드 게임 등 다양한 기술과 문화가 발전하였다. 이러한 혁신들은 이집트 사회를 더욱 복잡하고 발전된 형태로 이끌었으며, 다음 왕조 시대의 번영을 위한 견고한 기반을 제공하였다.
3. 장식용 화장 팔레트(Decorative Cosmetic Palettes)
나카다 III 시대의 중요한 예술적 유물 중 하나는 바로 장식용 화장 팔레트(decorative cosmetic palettes)이다. 이 팔레트들은 눈 화장 안료를 갈아 사용하던 도구였는데, 바다리 문화 시대부터 사용되기 시작하여 나카다 III기에 이르러서는 정교하고 상징적인 조각으로 장식되면서 예술적 가치를 더하였다.
이 팔레트들은 단순한 일상용품을 넘어 당시 사회의 종교적, 정치적 신념을 담고 있었다. 특히 대표적인 예시로는 전장 팔레트(Battlefield Palette)가 있다. 이 팔레트는 기원전 3100년경 나카다 III기의 이집트 통치자들이 부토-마아디 문화(Buto-Maadi culture)의 사람들을 복속시키는 모습을 담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팔레트에 새겨진 부조는 통일 전쟁의 장면이나 지배자의 승리를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되곤 한다.
이 화장 팔레트들은 고대 이집트 예술의 초기 형태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그 시대의 통치 이념, 전쟁, 사회 구조 등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는 귀중한 사료이다. 이 팔레트들을 통해 우리는 당시 이집트인들이 미적 감각뿐 아니라 자신들의 역사적 사건과 신화를 어떻게 시각적으로 표현하고 기록했는지 엿볼 수 있다. 이는 이후 고대 이집트 벽화와 부조 예술의 발전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전 단계였다.
4. 이집트 문명의 서곡
나카다 III 시기, 즉 제0왕조는 이집트 문명이 국가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 결정적인 전환점이었다. 초기 형태의 왕권과 상징 체계, 혁신적인 기술 발전, 그리고 예술과 기록의 시도는 모두 이후 수천 년간 지속될 위대한 문명의 토대를 마련하였다. 이 시기의 지배자들은 분열된 상이집트와 하이집트를 하나의 강력한 왕국으로 통합하여, 피라미드와 신전으로 대표되는 고대 이집트의 영광스러운 역사를 시작하는 서곡을 장식하였다. 이처럼 나카다 III 시대는 고대 이집트 문명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키는 데 필수적인 연결 고리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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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Wikimedia Commons | 퍼블릭 도메인(Public Dom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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