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항복(金恒福, 1898-1970) 기독교장로. 교육가. 독립운동가. 실업가. 호는 월암(月岩)
【1898년】
- 1898년 7월 28일 평안남도 평양에서 출생하였다.
【1916년】
- 1916년 평북 정주의 오산중학교를 졸업(제8회)하였다.
【1917년】
- 1917년 일본 와세다 대학 전문부에 입학하였다.
【1923년】
- 1923년 3월 와세다대학 정경학부를 졸업하였다.
- 귀국 후 조만식 선생의 권유로 교육계에 투신하여 평양숭실전문학교 교수가 되었다.
【1928년】
- 1928년 10월부터 숭인상업학교 교장을 역임하였다.
【1929년】
- 1929년 평양 기림리(箕林里)교회에서 장로로 장립되었다.
【1939년】
- 1939년 흥사단 사건에 관련되어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1941년】
- 1941년 서대문형무소에서 석방되었다. 그후 평양부 의원을 역임하였다.
【1942년】
- 1942년 평양 고무공업회사를 창설하여 경영하였다.
【1947년】
- 해방 후 월남하여 1947년 서울에 대성섬유공업사(주식회사 독립문 전신)를 창립하였다.
【1952년】
- 1952년 대한 메리야스협회 이사장을 역임하였다.
【1955년】
- 1955년 전국 사용자 대표중앙노동위원을 역임하였다.
【1956년】
- 1956년 서울시 초대시의원을 역임하였다.
【1957년】
- 1957년 서울 상공회의소 의원, 대한상공회의소 특별위원으로 선출되었다.
【1960년】
- 1960년 사단법인 한정협회 및 포플러협회 부회장에 선출되었다.
- 1960년 동대문 휘경교회를 설립하였다.
【1964년】
- 1964년 동대문 휘경교회 시무장로로 줄곧 봉직하였다.
【1966년】
- 1966년 평양시 명예시장, 학교법인 오산학원 이사장을 역임하였다.
【1969년】
- 1969년 평양장학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1970년】
- 1970년 서울콤퓨터센타 이사장에 취임했다.
- 1970년 11월 22일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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